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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llaㅡ별꽃 Jun 26. 2022

신사와 아가씨(2)

물벼락과 쌍화탕


명동에 있는 주거래은행인 상업은행(우리은행) 외환 파트 이대리와 상담 약속이 잡혀 있었고, 서소문에서 북창동을 지나 소공동 지하상가를 걷고 있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탓인지 후텁지근한 공기에 숨이 막히는데  지하상가 바닥에 파동이 일정도로 퉁퉁 튀는 노랫소리에 발걸음이 멈추었다.

돌아선 그대 등에 흐르는 빗물은 빗물은
이 가슴 저리도록 흐르는 눈물 눈물
초라한 그대 모습 꿈속이라도
따스한 물가에서 쉬어 가소서

배철수가 부르는 '빗물' 이란 노래였다. 기타만 잘 치는 줄 알았던 그의 목소리에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득한 외로움이  묻어났고 노래 가사는 서울살이가 고달픈  그녀에게 하는 말 같았다. 다음날 당장 무교동 레코드 가게 할아버지에게 녹음을 부탁했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후로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빗물' 노래는 그녀의 최애청곡이 되었다,


대문이 열림과 동시에 그녀는 벼르고 있던 고모와 눈이 마주쳤다.  조금 늦었다고 저리도 경악에 가까운 표정에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불거진 걸까. 두 방망이로 내리치듯 심장은 벌렁벌렁 난리인데 그녀의 고모는 초능력을 발휘한 듯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날아더니 받아둔 물통을 번쩍 들고 녀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그리고는 물통 가운데를 잡고 오른발을  뒤로 한 발짝 빼더니 온 힘을 다해 물을  던졌다.  녀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는데 꿈이었나 파도처럼 출렁이며 쏟아진 물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니 이놈의 계집애가 대체 행동을 어떻게 하고 다녔기에 남자가 대문 앞까지 쫓아오게 만드는 거야 엉? 그리고 댁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쫓아와요. 또 한 번 쫓아오면 그땐 구정물을 뒤집어 씌울 거니까 명심해요. 알았어요?!! 리 안 들어오고 뭐해!!"


귀신인가 대체  여기까지 어떻게 따라온 걸까. 의상실 뒷문으로 도망치듯 뛰어왔는데 떡하니 그녀 뒤에 서 있었다니.   신사는 물을 뒤집어쓰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정중히 사과를 하 아가씨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너무 야단치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는 양복에 묻은 물을 털 생각도 안 하고 골목로 사라졌다.  쾅!!쇳소리를 내며  잠기는 대문 소리가 폭탄 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녀는 밤늦도록 고모 부부에게 갖은 잔소리를 들어야 했고,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억울하다며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서러움이 복받친 그녀는 울다 흐느끼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내일 표 내고 엄마한테 간다며 보따리를 싸는데, 그녀가 안쓰러웠는지 두 부부는 달래기 시작했다.  험한 세상이고 도둑놈들이 많아서 한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네가 잘못되면 엄마 얼굴을 어떻게 보냐며.


그럭저럭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고  그녀의 뜀박질도 멈추었다. 아직도 낮엔 매미가 밤엔 귀뚜라미가 계절의 경계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맹렬히 울어대는데, 타고난 약골인 그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걸리던 고뿔에 걸리고 만다. 퇴근 후 버스에서 내려 쿨럭거리며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는데


"아가씨, 지난번에 나 때문에 많이 혼났죠? 미안합니다. 아픈 것 같아서 약 좀 샀어요. 약 먹고 이불 뒤집어쓰고 땀 좀 흘려요. 푹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뜨끈한 쌍화탕과 알약이 든 종이봉투를 건네고 사라진 남자는 지난번 그 신사였다. '내가 아픈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는 얼결에 받아 든 약봉투를 움켜쥐었고 봉투는 바스락 소리를 내 쌍화탕에 달라붙었다.

#사진ㅡ인터넷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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