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설정이 성과를 좌우한다
영화 <노량>을 보면 철군 길이 막힌 고니시 유키나가는 명나라 제독 진린에게 뇌물로 '수급'을 보낸다. 잘린 머리가 어떤 가치를 지녔기에 그랬을까?
중세 전쟁까지 수급(首級)은 전과를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내가 적병 몇을 죽였다'는 징표가 됐다. 가져간 머릿수만큼 보상받게 되니 실제 전장에선 부작용을 낳게 됐다. 실제 민간인 수급을 베고 전과를 과장하거나 죽은 아군의 수급을 가져오기도 했다. 진짜 문제는 전투 중에 나타났는데, 한참 격전 중에도 일부 병사는 자신이 죽인 적병의 머리를 챙기는 데 정신이 팔려 전투는 뒷전인 경우가 생겼다.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수급이란 단어가 생겼난 배경을 살피면 그렇다.
등급을 나타내는 '급(級)'이 '머리 수(首)'와 합쳐진 연원은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적의 머리 하나당 작위 한 등급씩을 올려줬기 때문에 가져온 머릿수는 작위의 등급과 같은 뜻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진나라 병사들에겐 수급이 절실했기에 진나라와 싸운 적은 항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어차피 포로가 되어도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을 알아서였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수급의 중요성(?)은 조선, 왜, 명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왜 입장에서 전과를 증명하려면 본국으로 수급을 보내야 하는데, 부피가 크고 운송이 쉽지 않아서 나중에는 코와 귀를 베어 보내게 된다. 조선 백성 중 일부는 자기 코와 귀를 내어 주고 연명한 사례까지 나왔다.
이같이 수급을 전과로 인정하던 관행을 타파한 이가 '이순신 장군'이다. 그는 수급이 아니라 격침한 배 숫자로 전과를 측정했다. 그래서 휘하 장졸들은 전투 그 자체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또한 이처럼 전과의 판단 기준을 수급이 아닌 격침된 적선의 수로 전환한 것은 조선 수군의 전술 변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조선 수군은 백병전을 의도하지 않았다. 평생 전쟁만 하던 왜적에 비해 조선의 검술은 한참 뒤처졌다. 그래서 화포를 이용해서 원거리 격퇴를 노렸고, 벨 수 있던 수급은 격침되거나 반파되어 전투 능력을 상실한 왜군이었다. 즉, 불리한 난전(亂戰)이 벌어지는 상황을 그는 원치 않았다. 이에 반해 '원균'은 수급을 중시했다. 이는 조정에서 공적을 살필 때 수급을 많이 가져온 장수를 더 치하했기 때문이다. 아래위가 제대로 정렬되지 않는 목표 관리라 할 수 있겠다.
대부분 기업이 신년 목표를 수립했을테고 이번 달에는 단위별로, 개인별로 목표를 확정 짓게 된다. '수급'처럼 목표 달성을 증명하는 수단이 목표를 흔드는 현상이 실제 많이 일어난다. 단순히 매출액 달성만 목표로 삼거나 결과의 질을 따지지 않는 '노력했다'는 식의 목표 설정은 달성 여부와 관련 없이 부작용을 초래한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운에 따른 매출이라든지, 시도한 횟수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으면 조직이 지향하는 성과에 근접하지 않았음에도 달성됐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의미 있는 질적 변화보다 얄팍한 기준을 통과할 꼼수만이 득실거리게 되는 것이다. 이를 봤을 때 이순신 장군의 혜안은 어디까지였는지 실로 경이롭지 않을 수 없다.
일본에 있는 귀무덤, By Epachamo - Own work, CC BY-SA 4.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301472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