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인한 가정보육 3주차.
아이를 어린이집 보내면서부터 프리랜서로 일하며 재택근무로 글도 쓰고, 필라테스도 다니고, 여러모로 안정되었던 나의 일상들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대신 밀도높은 육아를 감당해내야 하는 엄마로서의 삶만 남아, 가정보육 초반에는 마음이 어려웠다. 내 아이인데 내가 키워야지 누가 키우나하며 정신승리를 하다가도 이내 내 한계들을 마주하며 그 상황에서 아이에게 꼭 그렇게 반응해야 했을까, 자책하고 후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눈떠서부터 잠들기까지 하루 12시간을 아이와 함께한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잠시만 자리를 떠도 엄마- 부르며 쫓아와 내가 하려던 일을 훼방놓으려는 아이에게서 잠깐만 떨어져 멍 때려보는 게 정말 간절한 바람이었다. 아이가 밥 투정을 하며 열심히 차려준 밥을 입에 넣는 족족 뱉을 때마다, 이젠 말로 나랑 제법 실갱이하다가 뭔가에 심통이 나서 물건을 집어던질 때 훈육을 하는 것도 내 맘 같지가 않다. 타이르거나 호되게 야단을 치다가도 지금 훈육을 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한번 더 참아주었어야 하나, 이 나이 때 다 이러는 걸 내가 너무 과민반응하는 걸까 오만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정답이 없고 뚜렷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엄마로서의 삶이 막막하다 싶다가도 그림자처럼 내게 따라붙는 딸아이를 보며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엄마의 존재란 얼마나 절대적인가 깨닫게 된다.
낮잠을 길게 자지 않는 아이라 밤에 일찍 잠들어야 약속된 마감을 지키며 일을 할 수 있는데, 밖에 잘 나가지 못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은 아이는 평소보다 쉬이 잠들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함께 누워 어르다가, 토닥여주다가, 자꾸만 고개를 드는 마음속 조바심을 못 참고 큰소리를 내기도 한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와 남은 두어시간동안 글이라도 수월하게 써지면 좋으련만. 종일 소진된 에너지는 집중력마저 흐려놓아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아 제출해야하는 글 수를 여러번 조정해야했다.
육아에만 매몰되지 않으려고, 무언가를 생산해내는 기쁨과 육아와 일을 함께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도 누리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내 손으로 아이도 키우고 적은 돈이나마 벌고 싶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아이에게 언성을 높일 때마다 이게 누구를, 무엇을 위한 걸까 싶은 생각이 자꾸 고개를 든다.
종일 종알거리는 아이의 말에 하나하나 눈맞추며 대화도 많이 해주고, 몸으로 마음으로 많이 놀아주었던 어느 날. 아주 어릴 적부터 23개월이 된 지금까지 밤마다 읽어주던 책을 덮고 수면등을 끄고 나란히 누웠다. 아이가 자기 자리에 누웠다가 갑자기 나에게로 굴려와 품에 폭 안긴다.
"아, 엄마냄내(냄새)"
품에서 코를 킁킁하던 아이가 짧은 팔을 뻗어 나를 감싸안아준다.
그 순간 안정을 얻고 싶을 때마다 파고들던 그 옛날 우리 엄마 품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아침에 문득 엄마에게 와락 안겨 엄마 냄새를 한참 맡고 싶은 날이 있었지. 늘 사랑으로 받아주던 엄마였지만, 엄마가 안아주지 않을 때면 엄마 방 침대에 들어가 엄마의 실크 잠옷이라도 부둥켜안고 엄마 냄새를 킁킁거리던 날이, 나도 있었다.
해인이에게도 나는 그런 엄마라는 걸. 아직 많은 게 불안하고 홀로 온전치 못한 작은 존재에게 나는 어쩌면 온 세상이고, 온 우주라는 걸... 나를 감싸안은 아이의 작은 손이 말해주고 있었다.
많은 걸 해주는 엄마는 못되더라도 아이가 안고 싶을 때 늘 그 자리에서 품을 내어주는 엄마라도 되어보자고 다짐하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