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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니날다 haninalda Apr 26. 2020

무향의 아침-드라마<미생>OST 이승열 '날아'

아틀리에 가는 길 풍경



그런 아침이 있습니다.


존재의 무중력

호흡의 무기력

생각의 무사고


그냥 마냥 힘에 부치는 날이 있습니다.


무얼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싶고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던질 힘도 없고

나 빼고 세상 사람들이 다 잘 살고 있는 것만 같은


나...

잘 살고 있는 걸가...

여기 멈추어져 있는 게 아닐까


이대로

괜찮은걸까...


그런 질문들마저도 떠올릴 힘도 없는

그러나 딱히 피곤하지는 않은

아무렇게나 뜨는 인스타그램 돋보기 페이지를, 다른 이들의 포스팅을 하릴없이 내려보기만 하는

읽는 것도 아닌 그냥 넘기는 행위를, 안구를 통해 무언가를 보기만 하고 있는 그런 아침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의뢰받았던 향수 창작작업을 모두 다 마쳤습니다. 수십번의 조향 작업, 블러터와 피부 위 잔향 확인, 지인들을 초대한 시향회를 통해 나와 다른 피부타입을 가진 분들에게 착향 확인 작업, MSDS(화학물질정보)정리작업, 원가 계산, 전자 세금계산서 발행, 일정 확인 등.


하나의 작업이 끝나고 난 다음 날.


후련함이 들 만도 한데,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가야하는 작은 퍼퓨머리를 운영하는 지라 스케쥴이 빡빡하게 차 있어야 마음이 좀 편안해집니다.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제품들도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로 예정되었던 기업강의들, 프라이빗 워크샵, 브랜드 행사 등이 모두 취소가 되어버리니 불안감이 넘실넘실 제게로 찾아옵니다.


사실 이미 불안합니다.


내가 아닌 코로나, 대북상황, 불황에 대한 두려움 등 다양한 대외적인 이유들로 마음이 불편해지나 봅니다. 저만 그런 거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싶다가도 이번에는 내 안의 문제들을 들춰보게 됩니다. 내 선택이 맞긴 한 걸까. 부정적인 말들로 잘 안 될 거라고 말하던 그 사람들이 어쩌면 맞았던 것은 아닐까...하고요. 그러게 온 몸이 굳은 채 앞으로 나가기는 커녕 내일에 대한 희망을 그려보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그런 아침이 있습니다.  

 

그런 아침에는 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향의 아침


심지어 공기의 온도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청량함도 시원함도 후덥지근함도...


거리를 걸어도 향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핀 꽃, 세상 무심하게 새롭게 돋아난 잎들도 아무런 향분자를 발산하지 않는 듯한 그런 아침이 제게도 찾아옵니다.


그렇게 향을 느낄 수 없는 날


마치 애완견이 불안장애행동으로 써클링(빙빙 도는 것)을 하듯 기억에도 안 남을 인스타그램 보기를 하는 증세를 보이는 내 자신을 인지할 때, 제가 듣는 노래가 있습니다.  


드라마 <미생>OST

이승열 '날아'


https://youtu.be/ZfGzXCUqlJg





드라마 <미생> 캡쳐화면





"거기서 멈춰있지마

그곳은 네 자리가 아냐

그대로 일어나 멀리 날아가기를


얼마나 오래 지날지

시간은 알 수 없지만

견딜 수 있어

날개를 펴고 날아"



이 노래는 명백하게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힘찬 기운을 줍니다.

강요하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따뜻하고 따스하게

욕심없이 순수하게


술맛 좀 아는 사람들에게 다시 힘차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날 힘을 줍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고

불안해하고 있어도 좋고

두려워해도 좋다고

그러나 멈춰있지는 말라고

그 불완전함

그 불안함

그 두려움

그대로 가지고 다시 한번 날아가자고


지금 그저 잘못된 곳에 있는 거 일 수 있으니 괜찮다고 그렇게 힘을 줍니다.


내가 날아가지는 못하더라도

내 안의 무겁게 가지고 있는,

가지고 있어봤자 아무 도움되지 않는 불안, 두려움, 걱정들이라도 날려보내버립니다.


승리할 거 없는 일상에

정신 승리라도 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견딜 수 있게 해줍니다.

비록 그 언제가 될 지는 모르더라도

그 언제가 되어 날아갈 그 날의 나를 떠올리면서요.


그런 힘을 가진 노래입니다.




아틀리에 가는 길 풍경




아틀리에로 가는 길에 커다란 헤드폰을 끼고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날 아침은 무향에서 생생한 향기를 가진 아침으로 변화합니다.




다시 향이 납니다.

새롭게 날아갈 힘을 줍니다.

그렇게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을 갖게 해줍니다.


오늘 아침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날아'를 들어야하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 붙이는 말씀


저만 이 노래를 그렇게 느낀 건 아닌 듯합니다. 인스타 스토리로 노래 추천을 받았을 때, 추천받은 노래 중 한 곡이 바로 이 곡이었습니다. 출근길에 들으신다면서 힘을 내게 해주는 그런 노래라는 말씀과 함께 추천해주셨던 곡이었습니다.


세상 모든 이를 위한 출근요


오늘 하루도 향기로운 하루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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