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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18. 2015

귀양살이

방콕 작업실에서 귀양살이

최근 몇 달 이렇게 주야장천 일만 해야 하는 시기에는 집에 갇혀 지내는 내가 마치 벌을 받고 귀양살이를 온 죄인처럼 느껴진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안락한 내 집에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저 멀리 외딴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 기분이다. 


요즘 같은 여름에는 뜨거운 햇볕 때문에 암막커튼을 걷을 수도 없으니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없다. TV도 없고, 음악을 들으며 일하는 타입도 아니니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움직이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고 내가 치는 키보드 소리를 제외하면 간간이 에어컨 소리와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다. 이럴 때는 타자 소리가 큰 기계식 키보드를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  대화할 사람이 없으니 사람들 말소리도 들을 수 없고 하품할 때나 아니면 내 목소리도 들을 일이 없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취미는 아직 없다.) 


먹을 것을 사러 나가는 때가 아니면 외출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최근 한 달간은 교통비가 0원이다. 한 달째 교통수단을 이용한 외출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외출은 약 한 달 반 전에 참석한 독서모임 2개가 전부다. 그나마 커피숍에 가서 두세 시간 있다 오는 게 바깥바람을 쐬는 유일한 시간이다. 가서 일을 하거나 글쓰기만 하다 오는 것에 불과하지만. 어쨌든 몇 달째 이렇게 집에서 일만 하니 답답하다. 


혼자 있으니 마인드 컨트롤도 쉽지 않다. 마음을 다잡아도 계속 무너지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어렵다. 눈에 잘 띄는 공간에 무수한 다짐과 목표를 써가며 자기암시를 해보지만 피곤하고 지칠 때는 다 무용지물이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다. 새벽에 정신줄 놓고 멍 때리다가도 책상 옆에 붙여놓은 메모를 보다 보면 정신이 번쩍 들 때도 많다. 하지만 이번 작업만 끝나면 다 뜯어버릴 생각이다. 


직접 체험이 줄어드니 간접체험이라도 해야 건만 그것도 어렵다. 여유가 없으니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화장실에 가거나 커피숍에서 잠깐 틈날 때 몇 장씩 읽는 게 고작이다. 정신이 황폐해지는 기분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당연한 거다. 그나마 글을 쓰는 이 시간이 유일하게 위로가 된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좋다. 옛날에 귀양살이 간 선비들도 글을 많이 썼다는데 바로 나와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어서 귀양살이를 끝내고 뭍으로 나가고 싶다. 머지않았다. 고지가 코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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