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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Sep 18. 2015

새벽 1시 그대가 마감하는 시간

누구에게나 마감은 있다

우리 동네에 2층짜리 스타벅스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탐앤탐스를 뻔질나게 들락거렸다. 이유는 단 하나, 그곳이 우리 동네에서 가장 큰 커피숍이기 때문이다. 원두의 종류나 커피의 맛, 서비스의 질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저 눈치 보지 않고 3시간 이상 앉아서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조용하고 넓은 커피숍이 필요했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탐앤탐스는 최적의 장소였다. 


사실 우리 동네에는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커피숍이 많다. 오피스텔을 나와 정면으로 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앞에 할리스와 투썸플레이스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그리고 할리스 왼쪽으로 정확히 열다섯 걸음만 가면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이는 홀릭 커피(HOLIC COFFEE)가 폰트와 색깔까지 할리스를 따라 한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이다. (심지어 영업시간과 종업원의 앞치마 색깔까지 똑같다!) 그리고 홀릭 커피 건물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각선 방향으로 ‘커피 볶는 집’이 보이고, 거기에서 5분만 더 걸으면 숙박업소 건물에 딸려 있는 작은 커피숍이 음산한 분위기를 발산하며 영업 중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피스텔을 중심으로 바로 오른쪽 코너를 돌아 시장 입구로 가면 최근에 오픈하여 아메리카노를 1000원에 할인 판매하는 ‘커피에 반하다’가 나오고, 시장 쪽으로 가지 않고 오른쪽으로 난 길을 쭉 따라간다 해도 야외 테이블이 눈에 띄는 ‘이데야’가 나온다. 그 밖에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언급하지 못한 커피숍과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커피숍을 다 합친다면 반경 1킬로미터 내에 스무 개 정도의 커피숍은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커피숍 천국이다. 그들의 치열한 경쟁구도를 보더라도 가히 ‘커피숍 백가쟁명 시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나의 선택은 오피스텔 건물 뒤쪽의 걸어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탐앤탐스였다. 


넓은 공간 외에도 탐앤탐스의 또 다른 장점으로는 적당히 맛없는 커피와 눈에 띄지 않는 위치, 늦은 마감 시간을 꼽을 수 있다. 이 정도는 돼야 작업장으로써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다. 단골이 많지 않아 적당히 비어 있는 테이블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이 안정된다. 물론 점심, 저녁의 붐비는 시간대에는 그곳도 꽤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단점이 많은 커피숍이지만, 모든 것을 커버할 만한 비밀병기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센스 있는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친절한 훈남 바리스타(여자 알바생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를 고용해 여성 고객들의 마음을 훔치고, 요일마다 기상천외한 이벤트로 큰 웃음(정말 큰 웃음)을 선사한다.  ‘남장한 여자, 여장한 남자는 아메리카노 1+1’, ‘주문할 때 윙크하면서 웃으면 500원 할인’, ‘바리스타와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기면 무료 사이즈업’, ‘한복 입은 여자가 주문하면 20% 할인’ 등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이벤트 문구는 내일의 이벤트는 뭐가 될지 궁금하게 만들 정도다. 


나는 보통 늦은 밤, 집에서 일이 잘 안되거나 정신을 환기시키고 싶을 때 노트북을 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10시 이후의 커피숍은 언제나 한산하다. 나처럼 혼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만이 띄엄띄엄 섬을 이룬 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집중이 잘 된다. 그렇게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고개를 들면 어느새 시간은 새벽 1시에 가까워져 있다. 새벽 1시, 커피숍이 마감하는 시간이다. 마감을 앞둔 직원들은 12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주방을 정리하고 반납함에 쌓여 있는 종이컵과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한다. 12시 30분에는 본격적으로 바닥을 쓸고 테이블의 열을 맞춘다.(매일 해서 노하우가 쌓여서 그런지 정말 칼같이 맞춘다.) 하지만 내가 있는 테이블은 절대 건들지 않는다. 그 정도로 서비스 정신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이쯤 되면 나도 그들의 움직임을 소리로 확인하며 컴퓨터를 정리한다. 12시 30분쯤에 나가줄(?!) 때도 있지만, 괜히 끝까지 있어보고 싶을 때가 있다. 도서관에 마지막까지 남아 최후의 일인자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뭔지 모를 성취감을 이곳에서 재현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어쩔 때는 고의가 아니라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몰입해 작업하느라 새벽 1시가 되기도 한다. 


새벽 1시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움직임은 분주해진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가 몇 번이나 내쳐지고, 테이블 정리가 끝나면, 12시 55분 -커피숍에 울려 퍼지던 음악이 꺼지고 직원들이 한 곳에 모여 잠시 이야기꽃을 피운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왔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얘기하며 마지막 손님을 곁눈질한다. 그리고 나도 그들을 곁눈질한다. 드디어 새벽 1시 -그들은 마지막까지 내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영업시간이 언제까지라고 알려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진상 손님을 쫓아낼 수도 있건만, 아직까지 한 번도 쫓겨나 본 적은 없다. 결국엔 내가 알아서 일어난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테이블을 정리하고 최대한 정중하게 “수고하세요.”를 외치며 출입문을 연다.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진짜 비결이구나. 그들은 나의 마지막 인사에 90도 인사로 답례한다. “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허리에는 여전히 그날 하루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검은 앞치마가 둘러져 있다. 적당히 맛없는 커피와 눈에 띄지 않는 위치를 커버하는 것은 재밌는 이벤트와 늦은 영업시간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마감! 마감에 있었다. 사람이든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 마감을 잘해야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인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지막 모습이 개차반이면 영원히 개차반으로 낙인찍히는 수가 있다. 신속하고 체계적인 뒤처리와 끝까지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자세. 그들의 새벽 1시 마감을 지켜보며 나의 마감을 돌아본다. 나도 신속하고, 체계적이고, 끝까지 본분을 다하는.... 그런 마감을 해야겠다. 마지막 손님이 나간 것을 확인할 때까지 절대 앞치마를 풀지 않는 그런 마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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