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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준 Oct 05. 2020

내가 살아낸 오늘이 소설의 모티브가 될 수 있다

알베르 카뮈 <페스트>를 읽고. 

1947년 오리저널 초판본 표지 디자인이라며 구매욕을 자극한 더스토리 출판사 버전을 인쇄본으로 구매했는데 읽는데 흐름이 뚝뚝 끊겨서 리디북스에서 평점과 후기를 비교해 민음사, 김화영 역본을 다시 구매해 봤다. 역시 외서는 번역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 기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입에는 실패했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나랑 안 맞든지, 프랑스 문학이 나랑 안 맞든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으려면 글이 이렇게 어려워야 하나, 잠깐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지'를 가지고 읽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소설가가 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 우선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튼 닥치는 대로 읽을 것, 조금이라도 많은 이야기에 내 몸을 통과시킬 것, 수많은 뛰어난 문장을 만날 것, 때로는 뛰어나지 않은 문장을 만날 것.' 굳이 소설가 지망생이 아니라도 적용될 이 훌륭한 조언에 비추어본다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고전 한 권을 다 읽었다, 추석 연휴 기간에 완독했다는 희열을 얻었으니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던. 그러나 거기서 끝난 것은 아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책보다 더 훌륭하고 중요한 발견은 번역자 김화영의 작품 해설에 있었다. 마치 국어 교과서의 참고서를 읽는 듯한 매우 훌륭한 정리와 해석을 김화영은 책 말미에 실어놓았다. 꼭 읽어보시라. 오히려 흥미로웠던 것은 작가가 이 작품을 쓰게 되었던 모티브 또는 작가 노트였다. 이 소설의 실제 모티브가 되는 시점과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였다. 그가 경험한 것은 페스트 혹은 그에 견줄 수 있는 바이러스 창궐이 아닌 전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등장하는 전염병을 그대로 전쟁으로 치환해도 이 작품의 스토리는 자연스럽다. 역시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단순히 전염병 자체가 아니라 전염병과 같은 제2, 제3의 페스트가 세계에는 이미 만연하다는 것을 작품 속에서도 언급한다. "내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 이 책은 한 번 읽는 것보다 두 번, 세 번 읽는 게 더 좋을 책이다. 훌륭한 통찰이자 이 작품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관은 재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건과 상황에 대해 인간이 할 수 있는 반응이다. 누구는 도피하고자 할 것이고, 누구는 초월하고자 할 것이며, 누구는 저항하려고 할 것이다. 신문기자 랑베르는 적극적으로 도피를 추구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었으므로 그를 비난할 수 없다. 신부 파늘루는 전염병은 신의 심판이라는 성직자의 전형적인 메시지에 충실하다. 그러나 페스트의 고통에 몸부림차다가 억울하다는 듯 절규하며 죽어가는 어린아이를 직면하고는 태도가 바뀐다. 이 아이의 죽음은 모든 사람의 태도를 하나로 수렴시켜 버린다. 저항. 어떤 가치관을 가졌든, 어떤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졌든 어린아이의 죽음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인간인 우리 모두는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저항의 편에 섰다고 해서 모든 인간이 해방을 경험할 수 없다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래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산다. 그러므로 이 역시 인간적이다. 죽은 자는 죽어서 잊지 말아야 할 이정표를 만들고 산 자는 살아서 기록하고 전파한다. 그리고 더러는 단편적인 사건들을 모아서 인간 문명이 음미하고 복기해야 할 위대한 정신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가 그 한 사례다. "행동이 그 형식을 찾아내고 최후의 말들이 발음되고, 존재들이 존재들에 어울리고, 삶이 송두리째 운명의 모습을 띠는 그 세계가 바로 소설이 아니겠는가. 소설의 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수정에 지나지 않는다.(<반항적 인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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