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트 vs 소보로

by 스텔라의 별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은 폭신할 것 같아서 골랐는데 눌러보니 깊이가 얕군.


반면 박완서 님의 책을 읽다 보면 엄마와 대화 나누듯, 또는 옆집 언니와 이야기 나누듯

꾸밈없이 소박하지만 책 마무리에 가면 가슴이 덜컹 쿵 하고 내려앉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책을 덮고 나도 그 여운이 참으로 오래가 깊은 웅덩이에서 못 나오는 경우가 많다.


책만 이런 걸까?

우리 주변에 온갖 것들이 그러하다.


얼마 전 아이 간식으로 비싼 디저트 선물을 받았다.

디저트가 무슨 선물이겠냐만은 요즘은 디저트 가격이 식사가격을 웃도는지라

눈요기로도 가격으로도 선물하기에 제격이다.

그래서인지 눈요기에 넘치게 신경을 쓴 쿠키와 타르트는 입으로 들어가기가 민망하게 정성스럽다.

어쩌면 우리가 내는 정성값은 맛이나, 건강, 재료값보다는 겉으로 휘감은 비주얼 값이 더 큰 것 같다.

식탁 위에 마침 내가 먹던 곰보빵이 있었는데 빵 위에 올라간 노란 소보로를 보자니 왠지 소보로가 가엽다.

소보루는 자기 맛을 다하기 위해 그저 소보루만 뒤집어쓰고 있는데 마치 식탁 위 다른 디저트들이 못난이라고 놀리며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난 소보로를 한입 베어 물었다.

계란맛과 단맛 그리고 적당히 구워진 고소함이 느껴져 음미하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왜 그거 드세요?" 한다.

"엄마는 소보루가 더 좋아!"라고 했더니 아들은 촌스러운 엄마가 이해 안 간다는 듯 썩소를 짓는다.


외출을 하고 돌아오니 식탁 위에 먹다 남은 디저트들이 널브러져 있다.

"아들 왜 다 안 먹었어?"

"엄마 달아도 너무 달아요. 버터가 너무 많아서 속도 안 좋아요"

난 처음부터 소보로 편이었을까? 갑자기 소보로가 일어나 "야호!" 하는 것 같다.


소보로의 역사를 보니 일본의 귀족층이 좋아했던 유럽식 베이커리로 1910년대 만들어졌다고 한다.

모양도 맛도 변함없이 100년을 이어가고 있다니 새삼 놀랍다.

1931년 태어나 2011년 타계하신 박완서 님의 수많은 글들이 아직도 여러 독자층에게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끊임없이 빨려 들어가는 깊이 있는 글과 맛

유행은 바람처럼 휩쓸려 갈 수 있지만 그 무엇에도 휩쓸리지 않는 것들은 모두 깊이가 다르다.

볼거리 먹을거리 읽을 거리등등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만들고 누군가는 추천하고 이렇게 돌고 돌아 사라지고 생겨나는 세상.

흉내낼 수 없는 깊이 있는것들이 더 소중해지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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