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감는다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면과 연관 짓는다. 하루 24시간 중 눈을 감고 있는 동안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바로 수면이긴 하다.
널리 알려진 명상을 처음 시작할 때 초심자들 대부분 눈을 감으면 잠 속으로 빠져든다. 현대인들의 자율신경계의 불균형 속에서 의식을 붙잡고 있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밖으로 향하는 의식패턴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금과 같은 정보화 사회 속에서 의식의 방향을 내면화 하는 것이 갈수록 힘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눈을 감고 의식을 놓아버리면 대부분 잠으로 빠져든다. 뇌파도 실제 수면파형으로 변화한다. 의식을 놓아버리면 수면상태로 가버리는 나의 뇌, 그렇다면 반대로 할 때는 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얼마 전 ‘나 혼자 산다’라는 방송에서 마마무 화사가 컴백을 일주일 앞두고 연습 도중 허리 부상을 입고서, 걷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소파에 누운 채 안무를 이미지 트레이닝 하는 장면이 나왔다. 경험으로 어느 정도 느꼈으리라 기대가 되지만, 그러한 상상훈련은 실제 영향을 미칠까.
이미지 트레이닝은 스포츠계에서 실제 적지 않게 활용된다. ‘한판승의 사나이’로 유명했던 이원희 선수를 기억하는가. 2004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유도 금메달까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해 낸 그에게는 독특한 훈련법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원희 선수의 심상훈련 장면 (출처=KBS)
그는 하루 종일 틈틈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매트에 앉아 홀로 상념에 잠겨 있는듯한 이원희 선수를 본다면 십중팔구 이미지 훈련 중일 것이다. 남들이 보면 앉아서 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가만히 앉은 그의 뇌 속에서는 시합영상이 쉴 틈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상대선수가 어떤 기술로 들어올지, 그때 나는 어떻게 대처할지 끊임없이 그린다. 바로 머리 속에서 상대 선수와 실제 시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잠잘 때에도 유도 하는 꿈을 꾼다니, 그는 무의식중에도 홀로 훈련에 몰입할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예전에 해본 것을 다음에 하게 되면 익숙함을 느낀다. 뇌의 입장에서 보면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인데, 상상에 의한 것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생생하게 입력된 정보라면 뇌는 실제와 거의 마찬가지로 기억한다.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바깥에서 들어온 정보와, 뇌 속에 저장된 정보가 결합된 형태로 정보처리가 이루어진다. 상상이든, 현실이든 뇌는 정보를 입력하고, 처리한다. 그리고 필요한 시점에 뇌 속에 저장된 정보를 출력해 현재에 대응한다. 뇌 입장에서는 저장된 정보를 출력할 뿐이므로, 현실 속에서 처음 접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뇌는 처음이 아닌 셈이다.
미국 클리블랜드병원 신경과학자 광 예 박사는 ‘마음을 이용한 근력 키우기’란 연구결과를 저명학술지에 게재한 바 있다. 피험자는 팔을 특정한 부위에 올려놓은 후 마음속으로만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상상 훈련을 했다. 각 훈련 시간은 10~15분 정도로, 총 50회 정도를 반복하면서 매 10초 정도씩 마음속으로 명령을 내렸다.
4개월간의 훈련을 거친 결과, 젊은이와 노인들 모두 15% 정도의 근육이 강화된 결과가 나타났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한 근육강화방법이 아니라, 두뇌에서 근육으로 전해지는 신호를 ‘상상’의 힘으로 가능케 한 셈이다.
몸을 단련함으로써 근육이 강화되는 방식이 아닌 그 근육을 단련하는 고등의식을 상상을 통해 강화하는 것이다. 상상이란 정신적 작용이 육체의 변화를 초래하게 하는 것이다. 상상의 힘을 얘기한다고 해서 실제 몸을 쓰는 것을 게을리 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검색을 하고 사색을 하지 않는 시대, 눈을 감고 단 5분만 있어보자. 외부의 자극적이고, 단편적 자극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다보니 요즘 많은 청소년들은 눈을 감으면 불안정한 뇌파가 나오는 경도 적지 않다.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눈을 감는 것은 찰나의 순간이지만, 뇌에게는 커다란 변화를 야기 시킨다. 인간의 신체는 기본적으로 오감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인다. 그 정보는 몸 전체에 뻗어있는 감각수용기를 통해 뇌에 종합적으로 모이는데, 오감 중에 가장 큰 영역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시각'이다.
무려 외부정보의 70~80%를 인간은 시각을 통해서 받아들인다. 실제로 뇌에서 시각영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많을 뿐 아니라, 그 체계 또한 치밀하게 발달되어 있다. 시각영역은 뇌의 뒷면 아래 부분인 '후두엽(Occipital Lobes)'이라 부르는 영역에 자리하는데, 이 영역은 보는 것과 색깔, 모양, 움직임 등 보이는 것을 해석하는 역할을 한다.
후두엽이 시각정보가 들어와서 처리를 하는 곳이라면, 외부세계의 정보가 들어오는 첫 관문은 역시 양쪽 눈이다. 정확히 얘기하면 수정체와 망막이다. 렌즈역할을 하는 수정체를 통해 망막에 상이 맺히고, 망막에 있는 시세포는 전기신호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눈을 감는다는 것은 인간이 받아들이는 가장 큰 정보창구인 시각정보를 차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눈이 보는 것이 아니라 뇌가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은 외부세계의 정보를 뇌로 보내는 관문이지, ‘본다’는 기능은 결국 뇌가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눈여겨볼 것은 우리의 뇌가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눈을 통해 외부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에 시각중추를 비롯해 관련 영역이 활성화 되지만, 상상을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상상을 할 때면 더 강하게 활성화 된다. 눈이 아닌 뇌가 본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눈을 감는 이 단순한 행동 하나가 뇌에게는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셈이다.
뇌 영역별 실제 시각과 상상의 차이 [출처] Ganis et al, Brain areas underlying visual mental imagery and visual percep
상상은 인간이 가진 커다란 자산이다. 잘 활용하면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술가들에게 있어 상상은 그들이 가진 최고의 무기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에게는 현실이라는 것이 그들이 그리는 머릿속 상상의 영감을 투영해 놓는 것뿐일지 모른다.
이미 나의 뇌 속에서는 다 이루어져 있는 것을 살아가는 세상 속에 보이는 것으로 내어놓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세계가 99%이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책을 읽을 때 머리 속에 그 책의 스토리가 영상으로 펼쳐지는 것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가. 마치 그 책 속 내용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히 나타나는 것을 겪어본 적은 없는가. 어떤 작가는 글을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단지 표현하는 것일 뿐이라 했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무한하고 경이롭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 중 인간만큼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인간에게 있어 '상상'이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상상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창조성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이룩한 문명이라는 것 또한 그 상상에서 출발했다. 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뇌 속에서 비롯되었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것, 창조성의 발현은 바로 상상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검색이 일상화되고 상상이 결핍되는 시대, 하루 10분은 눈을 감아보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