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책.
말랑말랑해는 기분을 간만에 느끼고 싶어 읽은 한국 소설이었는데 생각보다 어두운 소재들이 많았던 단편 모음집. 각자의 블랙홀이 있다는 '블랙홀', 껐다 켰다 상황에 맞게 잘 스위치를 키라는 '스위치', 그리고 '날마다 만우절'. 끝에 세 단펴을 읽기 전까진 책 자체는 전반적으로 좀 아쉬울 뻔 했다.
어둡지만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보면서, 생각보다 나만 답답하다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겠구나 모두의 고통을 내가 알아채지 못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 또한 날마다 만우절이라 생각하며 웃어넘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 누가 보면 어때. 나는 창피해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여름방학 때는 누구나 물놀이를 하는 법이니까.
- 그렇게 애를 써서 나는 그냥 어른이 되었다.
- 그러면 미운 사람도 좋은 사람도 모두 사라지고 단순한 마음이 된다고 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712548
다섯번째 책.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완독하기 어려웠을 책. 내가 당연하다고 바라보던 시각들을 편견이었다는 팩트 폭행을 읽는 내내 확인당한 책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다수'에 대한 착각과 '평균'에 대한 착각. 누군가 과반수 이상은 그렇다고 말하고, 다수가 그렇다 하면 믿곤 했는데, 그것이 49%와 51%의 차이일지에 대한 깊은 생각까진 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평균에 대한 부분도 좀 팩트폭행으로 와닿았는데, 평균이라는 편견에 치우쳐 분산에 대한 고민까지 해보지 않았던 나의 부끄러움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착각에 대한 생각이 생각보다 위험하고 무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꽤 오래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와닿는 부분이 많았던 책.
그러나 독서모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너무 반복적인 이야기가 많았어서, 좀더 챕터를 줄이고 간소하게 서술했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읽는다고 바로 시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100으로 바라보던 시각을 90으로라도 바꾸어 볼 수 있길 바라며.
- 사람들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추측하고, 학습할 때 끊임없이 그리고 직관적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참고한다. 그래서 세계관이 잘못되면 체계적으로 잘못된 추측을 내놓는다.
- 평균 비교를 조심하라. 분산을 살펴본다면 겹치는 부분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둘 사이의 간극 따위는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 공포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위험이 지금은 국제적 공조 덕에 우리에게 가장 적은 해를 끼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 '다수'에 주의하라. 다수는 절반이 넘는다는 뜻일 뿐이다. 언급한 다수가 51%인지, 99%인지, 그 중간쯤인지 질문하라.
- 사실충실성은 많은 것이 변화가 느린 탓에 늘 똑같이 보일 수 있다는 걸 알아보는 것이고, 비록 사소하고 느린 변화라도 조금씩 쌓이면 큰 변화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 수치를 보되, 수치만 봐서는 안 된다. 세계를 수치 없이 이해할 수 없지만, 수치만으로 이해할 수도 없다. 진짜 삶을 말해주는 수치를 사랑하라.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594377
여섯번째 책.
작년에 너무 고전을 멀리했어서 올해는 그 스타트를 끊어본 ‘노인과 바다’.
엄청난 울림이 있기보다는 여러 역경을 무덤덤하게 이겨낸 끈기있는 노인의 많은 독백들이 기억에 남던 책이었다. 책을 읽고서 발제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난 무언가를 위해 놓치지 않고 끈질기게 도전했던 적이 언제였나, 라는 생각을 해보니 굉장히 꽤 오래 전이었다는 생각에 부끄럽기도,무언가 현실에 순응해버린 내가 좀 슬프기도 했다.
노인의 행동 중에 가장 좋았던 부분은 현재 할 수 없는 것에 한탄하지 말고,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해보라는 독백이 굉장히 와닿았던 것 같다. 하나의 책을 읽고도 다양한 해석을 한 틈새 사람들 덕에 독서 후가 더 좋았던 책.
- 하지만 뭔가 방도가 있을 거야.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많으니까.
-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억지로 펴고 싶지 않아. 저절로 펴져서 원래대로 돌아오게 내버려두자.
- 과거에 이미 수천 번이나 증명해 보였다는 사실은 그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는 지금 이 순간 그걸 다시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언제나 매번 새로 처음 하는 일이었고, 그 일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과거를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 오래가기에는 너무나 좋은 일이었어, 노인은 생각했다.
-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어." 노인은 말했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 지금은 없는 걸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걸로 뭘 할 수 있을지 그거나 생각하도록 해.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864472
일곱번째 책.
읽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되었는데, 마음이 답답한 시기가 되어서야 겨우 마무리 지은 책.
이전에 책 제목만 보고 너무 극단적이라 피했는데, 이 후 작가님의 책을 보고 너무 좋아서 읽게 되었다. 중간에는 철학적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책이 나를 읽는 듯한 혼란에 어려웠지만 초반과 끝은 좋았던 문구가 많이 남는 책이었다.
매일을 죽음을 떠올리며 맞이하는 태도에 대해서, 그리고 행복의 지속보다는 중간중간 맛보는 행복의 소중함을 언급한 게 좋았다. 책을 읽으면서 당장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냥 가족들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것. 생각보다 거창한 게 아니면서도 그 소박한 것을 지켜내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돈룩업'도 생각이 났다.)
무엇보다 인간은 힘들어하면서도 정치, 사회적인 소속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바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는 말도 굉장히 기억에 남았다. 현재의 나에게 와닿는 말이었기에. 코로나 시국에 오랜만에 연락이 닿은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가 '별일 없어. 그래서 참 심심한데, 생각해보면 이게 가장 좋은 안부인데 말이야.'라는 이야기였다. 이 책은 결국, 이 소소하고도 별일 없는 일상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허투루 보내는 우리를 꾸짖는 책은 아니었을까. 여러모로 어렵디 어려운 올해의 일곱번째 책이었다.
-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을 직면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잠시 후 모두 죽는다고 생각하면, 자신을 괴롭히던 정념으로부터 다소나마 풀려날 것이다.
- 소소한 근심에 인생을 소진하는 것은, 행성이 충돌하는데 안전벨트를 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을 바라다보면, 그 덧없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따라서 나는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 1분이 60초라는 것도, 한 시간이 60분이라는 것도,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도, 열두 달이 지나면 한 해가 저문다는 것도,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의식도 모두 인간이 삶을 견디기 위해 창안해낸 가상현실이다. 인간은 그 가상현실 속에서, 그렇지 않았으면 누릴 수 없었던 질서와 생존의 에너지를 얻는다.
- 우리는 태어나고, 자라고, 상처 입고, 그러다가 결국 자기 주변 사람의 죽음을 알게 된다. 인간의 유한함을 알게 되는 이러한 성장 과정은 무시무시한 것이지만, 그 과정을 통해 확장된 시야는 삶이라는 이름의 전함을 관조할 수 있게 해준다. 그 관조 속에서 상처 입은 삶조차 비로소 심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된다. 이 아름다움의 향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시야의 확대와 상처의 존재다.
- 실로 대학 시절이 진행되는 동안은 무슨 시간이 흐르고 있는지 모른다. 때로는 아직 도래하지도 않은 파국을 걱정하느라 목전의 즐거움을 놓쳐버리기도 한다. 미래에 대해 불안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심스러운 나머지, 젊음이라는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리도록 바라보고만 있기도 한다. 그 불안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은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졸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 하지만 신기루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붙들어맬 수 있는 목적이랄지, 질서랄지, 위계랄지, 자기만족이랄지, 의미랄지 하는 것들을 가지게 된다. 의미를 추구하는 이러한 해석행위는 우리가 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인간이 존재하는 기본적인 양식이어서, 이러한 해석의 오라를 떠난 인간의 삶은 좀처럼 가능하지 않다.
- 왜 해석을 하지 않고서는 못 견디겠는가?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쓸쓸해서 해석을 하고, 초조해서 해석을 하고,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 해석을 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불안해서 해석을 한다.
- 그러한 자기 위안들을 통해서, 자기가 부여한 의미들을 통해서, 이 황량한 세계를 그나마 살 만한 곳으로 만든다.
- 즉 예술의 인간에 대한 궁극의 공헌은, 만들어내거나 향수하기 위해 사들인 예술품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그러한 예술품을 만들거나 향수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고양된 자신의 생 자체에 있다.
- 책은 인류가 발명한, 사람을 경청하게 만드는 정말 많지 않은 매개 중 하나죠. 그렇게 경청하는 순간 우리가 아주 조금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겁니다. 자기를 비우고 남의 말을 들어보겠다는 자세요.
- 질서를 싫어할 수는 있지만 그것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려운 게 인간의 조건이라면, 우리는 어떤 질서를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 인간 사회에서 권력은 불가피하다. 그렇다면 무작정 싫어할 게 아니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 찰나의 행복보다는 차라리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원한다고 했다. "'소소한' 근심을 누리는 건, 그것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4298049
여덟번째 책.
코로나로 인한 방콕모드는 이렇게 나의 독서량을 폭풍적으로 늘려준다 (이번달 책을 대체 몇 권 읽은 것이냐...)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라 언젠간 읽어봐야지 했다가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되어 읽었는데 너무 가벼운 웹 소설 느낌이라 솔직한 말로는 내 취향은 아니었다. 최근 유사한 소재의 책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아마도 위로, 라는 부분에 대한 현대인들의 필요성과 공감이 많아져서인 듯.) 유사한 주제를 다룬 책들 중에서는 아직까지도 내게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베스트로 손꼽힐 만큼 재미있었다. 그래도 작가가 불편함, 편의점, 위로, 노숙자 라는 소재를 참 잘 엮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올해의 여덟번째 책.
- 시현은 개인의 꿈이 외교 문제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자 비로소 자신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 황의 삐꺽대는 소리는 스스로가 폐기물임을 증명하는 듯했다.
- 신분증을 다시 만드는 순간 나는 다시 살아야 할 것이고, 제대로 살게 된다면 또다시 고통받을 것이 분명했다.
- 물건이든 돈이든 충전을 하고 떠나는 인간들의 주유소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세상의 기준에 맞추려 했고, 그것이 그녀를 살아남지 못하게 만들었다.
- 다들 너무 자기 말만 하잖아. 세상이 중학교 교실도 아니고 모두 잘난 척 아는 척 떠들며 살아. 그래서 지구가 인간들 함구하게 하려고 이 역병을 뿌린 거 같아.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926010
이번달 읽은 책들 중 소설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지만, 독서 모임 덕에 평소에 읽지 못할 두꺼운 책도 읽게 되었다. 독서 모임이 여러모로 좋은 것은 내가 평소에 읽지 않았을 책들을 이렇게 접하게 만들어주어서 유익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이번 달에는 한 권의 책에 집중하기 보다는 시기에 따라 여러 권을 동시에 읽었다. 예를 들면, 자기 전에는 힐링이 되는 책을. 읽기 어려운 책은 실내 자전거 운동을 하면서 보기도 했고. 그러다보니 여러모로 독서량이 늘었다. 아마도 코로나로 인한 나의 방콕 생활이 한 몫을 했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