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velvetmandarine Nov 01. 2015

7th jeju

제주도 푸른밤


03:00 p.m. 7th jeju


오후 비행은 조금 지쳤다. 꾸역꾸역 일을 마치고 정신 없이 공항으로 달려온 탓도. 에어플레인 모드 해제에 기다렸다는 듯이 메신저 알람이 울려대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쓰윽 확인하고는 오-프. 다시 내 세상이다. 일곱번째 제주, 시작합니다.



06:40 p.m. 식샤를 합시다


이런 곳에 식당이 있단 말이지? 골목은 점점 더 깊어졌다. 꼭 카모메 식당이 생각나는 여기였다. 저녁 식사는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다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떠나오는 날까지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그리고 마치 어제 만난 사람들 같아 놀랍기만 했다. 꽤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켰는지 사진 속 나무 식탁은 모두 다른 색을 가지고 있었다. 조근조근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그들이 참 예뻐보여 사진에 담아내기 바빴는데. 문득 이번 여행에서는 어느 때보다도 부지런히 사람들의 표정을 기록하리라 다짐했다.


#모닥식탁


09:50 p.m. 세화의 밤 1



조용한 게스트하우스 안뜰에서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다. 이 노래는 애덤 버전이 좋아. 마지막에 키이라가 저 아저씨랑 어떻게 되었더라? 어느새 begin, again 은 국민 영화가 되어있었다. 바쁜 서울의 밤은 잊은지 오래였고 제주의 아침을 생각하니 다들 몹시 설레는 모양이다. 잠들기 어려웠던 그 밤.


#광스쿡스게스트하우스


10:20 a.m. 세화의 아침


안개로 가득한 제주는 처음이었다. 한 시간이 채 안되 섬은 바다 너머의 하얀 물방울들로 뒤덮였다. 풀밭도 돌담도 안개의 일부분이 되었고 살갗에 와닿는 축축한 느낌마저 제주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참 행복한 아침이었다.



03:40 a.m. 안녕 바다


중문을 향해 달리다 다른 바다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도착한 표선의 바다는 조금 놀라웠다. 너무 잘 가꾸어진 정원 같았으니까. 덜 다듬지 그랬어. 반듯한 현무암 계단을 내려와 발을 담구어본다. 다행히 잔잔한 물결과 모래는 그대로였다. 떠내려온 해초 조각들이 발에 걸렸다. 점점 더 깊이 그리고 더 멀리. 한참을 걸어나갔지만 수면은 여전히 무릎을 멤돌았다. 이른 여름 방학을 즐기러 온 아이들과 함께 배경이 되어간다.


#표선해비치해변


04:30 p.m. 참 멋진 사람


실은 잘 몰랐다. 제주가 고향인 작가겠거니, 갤러리 앞마당이 참 예쁘구나. 사진 앞에 서기까지 무얼한건지 참 무지하기 짝이 없었다. 오름 위에 뜬 달을(또는 해를) 발견하고는 마음 속에 소용돌이가 일었다. 복잡했던 숙제의 해답을 찾은 순간이었고 부끄러우면서 감사했다. 이렇게나 멋진 분을 이제서야 알게되다니. 순수했던 제주와 오름의 순간을 기록하고 있었던 어떤 이가 있었고 그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다. 김영갑 선생님을 그리워하기로 했다.

#두모악김영갑갤러리


06:30 p.m. 볕 좋은 오후


종달리에 위치한 작은 책방은 그야말로 선물 상자였다. 마감 30분 전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섰지만 책방 안은 여유로웠다. 뭐가 그리 급해요 천천히 놀다가세요 라고 속삭이듯. 이 작고 귀여운 공간에 빼곡히 쌓인 책들과 제주가 담긴 아트웍 앞에 우리는 마치 장난감 코너에서 무얼 골라야될지 모르는 아이들 같았다. 책방을 벗어날땐 엽서 몇 장과 도톰한 종달새 인형을 꼭 쥐고 있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짠 바다 향이 가득했던 종달리는 여전히 아기자기한 동화속 마을이었다.


#소심한책방


10:10 p.m. 세화의 밤 2


깜깜한 세화의 밤이었다. 한참 새것이 더해져가는 이곳이었지만 밤에는 불빛이 많지 않았다. 맥주 몇 캔과 함께 나누던 수다는 둘째날에도 이어졌다. 마지막 캔을 비우고서는 주섬주섬 잔돈을 챙겨 동생과 밤길을 나섰다. 목표는 식료품 가게. 지름길은 몇 개의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추는 골목을 지나야만 했다. 길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검둥개 한마리가 우리를 발견한다. '귀여운 녀석'이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해. 이내 무서운 눈을 하고선 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일단 후퇴, 돌아가는게 어때?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어받고는 뒤로 전진이다. 한참을 돌아 걷는데 어이쿠 저멀리서 또 까만 형상이 나타난다. 졌다. 그래 이구역은 네꺼야.



11:00 a.m. 반짝반짝 작은 장


이른 아침부터 스쿠터며 작은 트럭들이 세화 해변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손꼽아 기다리던 벨롱장이 열리는 날이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정시가 되자 등대 주변은 젊은 작가와 셰프와 음악가들로 북적거렸다. 타지의 미식가들 덕분인지 시식 코너가 단연 인기다. 우리도 그 틈에 껴 마른 귤 조각을 아그작 씹어보는데 어머 이건 다르잖아. 천원 몇 장을 고민도 없이 꺼낸다. 구경에 심취해 셀러들의 어마어마한 손재주를 단 한 컷도 남기지 못한건 실수. 벨롱벨롱이 가장 좋아하는 '반짝반짝'의 제주어라는건 여담.


#벨롱장


12:20 p.m. 평평해서 평대리


큰 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을 때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이 툭하니 던지신 한마디였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이보다 더 또렷한 설명이 어디 있을까. 날은 후텁지근했고 곧 빗방울도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이었지만 평평한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길 사이마다 새단장을 마친 제주의 가옥들을 훔쳐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안은 다르지만 겉모습은 시골스러움 그대로가 너무 닮았던 나머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던 식당 옆집으로 들어가 엉뚱한 메뉴를 주문할 뻔 하기도. 밥 한끼를 뚝딱하고는 평대리의 바다로 향한다. 모자를 꼬옥 붙잡고 있어야 될 만큼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에메랄드 빛은 어느 바다보다 짙었고 온몸으로 맞는 바람은 곧 다가올 한여름의 제주 날씨를 알리는듯 했다.



02:30 p.m. 숲으로


바람은 더 세차게 불었다. 비자 나무의 잎들이 서로 부딪치며 숲을 거대하게 만들었다. 숲이 깊어질수록 크고 멋진 비자 나무들이 반겼다. 작고 여린 잎들이 자라고 자라 천년의 숲을 만들었단다. 언제 내렸을지 모르는 빗방울들을 잔뜩 머금은 길은 초록의 빛과 대비되어 보드랍고 따뜻해 보이기까지 했다. 걷고 또 걸으며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내본다. 어린 시절의 추억, 사소한 습관, 해내고 싶었던 일들 그렇게 서로를 숲처럼 깊이 알아간다.


#비자림


06:30 p.m. 바이바이 제주


아쉬운 시간이 다가온다. 늘 그렇듯 다음을 기약하는 장소는 공항 근처의 바다에서. 비행기가 끊임 없이 제주의 하늘을 가로질렀고, 점이 되어 사라질때까지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첫날의 다짐처럼 앨범 속은 행복한 사람들의 순간들로 가득했다. 나와 너와 우리로 인해 채워질 또 한 장의 제주 일기를 기대하며. 굿바이 제주!


#150611 #6월의제주

작가의 이전글 6th jej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