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플리트비체 Plitvice
사람 성향을 도시와 자연에의 자향으로 이분한다면 나는 다분히 자연을 택하련다. 서울 4대문 한복판에 살면서 자연이 좋다고 이야기 할 때면 살아보지 않아 그런다는 타박을 받는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에도 자연을 성애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그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오롯한 '일체감' 때문이다. 옛 선인들이 지향한 '물아일체'의 뜻으로 그 의미를 대신해본다. 또한 일체의 기쁨은 놀랍게도 생택쥐베리의 <인간의 대지> 구절 속에서도 발견된다.
[물아일체]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
이처럼 나에게 있어 삶의 기쁨이란 그 향기롭고 뜨거운 음료의 첫 한 모금 속에, 우유와 커피 그리고 밀이 뒤범벅됨에 압축되어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평온한 목장, 이국적인 목장, 수확물 등과 일체감을 느끼고 그리하여 온 대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 많은 별들 가운데 우리 손이 미치는 범위에 존재하고 새벽 식사로 맛있는 냄새가 나는 밥 한 그릇을 차려주는 별은 오직 하나, 지구 뿐이다.
<인간의 대지>, 생텍쥐페리
온 대지와 하나가 되는 느낌, 자연이라는 객관과 나라는 주관이 일체되는 순간은 오로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능하다. 두 번째 여정인 플리트비체는 사뭇 오랜만에 그 일체의 기분을 선물해줬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 밥벌이까지 하고 있지만 이따금 도시의 공기는 감당하기에 몹시 버겁다. 도시의 성질은 파편적이며 관계의 점성마저 약하다. 이웃의 개념마저 사라져버린 도시는 늘 고독하고 사람들은 파편 속의 일부로서 외로움을 견디어간다. 그게 현재 우리, 도시인의 숙명이다.
플리트비체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온 작은 민박집은 인간의 대지 한 가운데에서 나를 맞이했다. 대도시는 끝없는 빌딩들이 공간을 절단하고야 만다. 불과 이틀 전까지 절단된 공간 사이 8평 남짓한 보금자리를 트고 생을 이어가던 내게 돌연 나타난 들판의 수평선이란. 굳이 활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기분일 터. 나는 자연을 몹시 사랑한다. 자연의 고요와 풍요로움은 이 공간의 온전한 일부로서 나를 받아들이게 한다. 그 순간 나는 오롯이 자연 속에 정박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