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elina Oct 15. 2019

걷는 사람? 강한 사람!

하정우가 말하는 루틴의 힘

책을 이것 저것 사서는 금방 질려버려 좀처럼 완독은 하기 힘든 내가 배우가 쓴 책에 이리 몰입될 줄 몰랐다. 글을 잘 써서? 물론 그것도 그렇다. 그러나 더 강력하게 나를 책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 힘은 공감이었다. 나의 뼈를 때리고, 반성하게 하고, 깊이 공감하여 나를 돌아보게 했다. 유-명한 작가들이 쓴 수많은 자기계발서보다도 더 강력하고 묵직했다. 화려하고 멋지기만 한 삶을 살고 있을 것 같은 연예인이 쓴 책이 말이다.



그 어떤 유명 작가가 쓴 책보다 몰입도가 높았던 책, 『걷는 사람, 하정우』



걷기는 그 어떤 운동보다 하기 쉽다. 그냥 걷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인지 사서 고생하듯 일부러 걸으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요즘 유행하는 전동킥보드만 봐도, 사람들이 얼마나 더 간편하고 빠르게 이동하고 싶어하는 지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걷는 사람이란 일종의 '수행자' 같다.



러닝머신 위로 올라가 전원 스위치를 켜고 다리를 움직여본다. 한 걸음 내디디면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게 되고, 그 걸음이 다음 걸음을 부른다. 일단 몸을 일으키는 것. 다리를 뻗어 한 발만 내디뎌보는 것. 단순한 행동은 힘이 세다. p.159



생각이 복잡할 때 몸을 움직이면 개운 해 질 때가 있다. 특히 긍정적이지 않은 고민이나 생각이 많은 사람일 수록, 몸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 여기서 약간 더 부정적인 사람은 "그건 알아. 하지만 그래봤자 잠시만 잊게할 뿐 해결은 되지 않지" 라고 반응할 것이다. 물론 그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생각의 꼬리에 꼬리를 이어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없다. 최소한 뇌를 좀 쉬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공기를 마시고 움직이다보면 마음이 가라앉기도 한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일 수록 스스로 만든 루틴이 안 잡힌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빼고는 책 읽기, 글쓰기, 운동하기, 하다못해 집청소 빨래까지 정해 둔 루틴이 없다. 할 때쯤 됐는데, 해야 되는데 하다가 벼랑 끝까지 몰릴 때까지 머릿 속에 미묘한 스트레스로 남겨뒀다 처리하곤 한다. 문제는 하고 나면 정말 별 것 없고 금방 끝나는 일이라는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와 절망 속에 있을 때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때로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노력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고 의심한다. 어쩌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도 모른 채 힘든 시간을 그저 견디고만 있는 것을 노력이라 착각하진 않는지 가늠해본다. p.285



걷는게 생각보다 힘든데, 솔직히 헬스장 가기 위한 내적갈등의 고통에 비하면 1/10도 안 된다. (헬스장 가지 않을 합리적 사유가 얼마나 많이 존재하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생보'란 생활 속에서 걷는 활동을 말하는데, 예를 들면 나처럼 회사와 집을 걸어다니는 식이다.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약 30분, 보통 걸음으로 약 40분 거리. 출퇴근 모두 걸어다니면 하루에 약 7천보가 나온다. 


이게 생각보다 억울하다. 1만보쯤 걸은 것 같은데 이것밖에 안 되다니. 그래서 1만보를 채우려면 동네를 30분 정도 더 걸어야 한다. 즉, 내 기준에서 1만보를 채우려면 최소 하루에 1시간 반은 걸어야 한다는 뜻이다. 헬스장 가서 30분만 운동해도, 1시간 반 걸은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몸을 단련시킬 수 있을테다. 그럼 뭘하나 가질 않는데. 걷기가 효율이 낮다해도 헬스가기는 10배는 더 귀찮으니 이게 더 나은 계산아닐까.



동네 한 바퀴 돌고 사람도 구경하고. 나름 재미가 쏠쏠하다



그밖에 헬스장보다 걷기가 좋은 이유가 또 있다. 사람과 장면을 볼 수 있다. 몇 달 전 이사온 동네는 그야말로 번화가다. 이사오기 전에는 모임, 데이트, 쇼핑을 할 때나 오는 곳이었다. 어느날 문득,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데 그 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조금 생경 해 졌다. 동네 마실하고 있는 나를 스쳐 바쁘게 걸어가는 무리들. 한껏 꾸미고 팔짱을 낀 연인들 혹은 어색하게 걷고 있는 소개팅 남녀들. 


그들을 보며 나를 본다. 지나가는 남녀를 보며 3초 안에 저들은 연인인지 썸인지 방금 만난 소개팅 남녀인지 알아맞춰본다. 다소 이상한 예시를 왜 드나 싶겠지만, 이 경험을 통해 숨막히게 앞만 달려가는 삶 속에서 잠시 관찰이란 걸 하게 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그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고, 어떤 대화를 하고 어떻게 걷는지 본다. 



이동을 위해서가 아닌 '걷기' 그 자체를 위해 걸으면, 사람과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가끔 평일에 연차를 내고 오전에 여유롭게 카페를 가면 주변을 괜히 돌아본다. 이 시간에 카페에 있는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일까 하고. 혹은 출근시간에 지하철을 타면, 늦을까 헐레벌떡 뛰어가는 인파들 사이에서 여유롭게 걸으며 그들을 관찰하게 된다. 걸으면서 사람들을 보면 그런 느낌이다. 남이지만 나를 보는 것 같은.






연예인을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하정우는 내공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보고 느꼈다. 진부하지만, 배우가 아니었어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한 살 한 살 먹을 수록 '우직함'의 힘에 대해 높이 사게 된다. 팝팝거리는 온갖 뉴스들과 수많은 자극들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에서 우직함을 갖기란 더 어려울 것이고, 때문에 더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걷기는 단순하지만 그 우직함을 온전히 담아내는 루틴이자 수행이다. 스스로 칭찬에 인색하고, 언제나 생각이 많지만 정답은 없어 고민하는 여러 '동지'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