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수많은 변화 속으로.
주인님, 음 링링이다.
링링. 몇몇 사람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기상청에서 근무하신 분이라면 특히 더 기억하지 않을까.
2019년 가을 태풍 이름이 링링이었다.
식장에서 제안받은 두 개의 결혼식 날짜 중 7월은 여름 장마가 걱정되어 당당히 9월로 날을 잡았는데
웬걸. 가을 태풍이다.
결혼식날 서울을 강타할 거라는 태풍 링링의 위력에 식 전날에 취소를 고려하고
결혼식날 메이크업샵 창문 너머로 부러질 듯 휘청이는 나무를 우려스럽게 쳐다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 날 양가 아버님들은 덕담에서 "태풍에도 불구하고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셨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과 함께 한 결혼식이 끝나고 하객분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한 친구가
"나중에 애기 생기면 태명 링링이로 하면 되겠다." 하고 흘리듯 말했고
그게 현실이 되었다.
물론 남들에게 피해를 주라는 건 절.대. 아니고 -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라 달라는 의미로 결정한 것.
이렇게 시작된 우리 주인님, 링링 군과의 인연은 수많은 변화로 이어졌다.
그중 가장 큰 세 가지.
#하나, 배고프면 씅쟁이 돌변.
밥 챙겨 먹기 귀찮아 대충 먹어서 남편 구박을 달고 살던 사람.
그게 나였다. 과거형. 이젠 아니다.
화가 난다. 진심으로 화가 난다.
임신 초, 만두전골을 사러 가는 길 차 안에서 '배고프다'는 말을 가벼이 여겼던 남편.
도착지를 2분 앞두고 결국 편의점에 차를 세웠다.
잔뜩 뿔이 났던 표정이 2분 동안 젤리 하나를 오물거리며 풀려 내렸던 그 날의 기억.
연애를 합쳐 9년의 시간 동안 배고파서 화난 걸 본 적이 없던 남편은 그 날을 아직도 되새김질하며
이후 '배고프다' 한 마디에 진돗개 1호 발령,
냉장고 문을 들썩이는 모습에 진돗개 2호를 발령.
분주히 그 순간의 내 선호도를 조사한다
#둘, 시나브로 증발한 체력.
매일매일 약속이 채워져 있어도, 하루에 두세 개 약속이 있어도 거뜬히 즐겼던 체력.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에너지를 쏟아내고 집에 와도 팔팔했던 체력.
어디로 갔는가.
집에 손님이 와서 4시간 대화만 나눠도 체력 추가 보충 필요.
오랜만에 출근하고 돌아오는 길은 말할 기운도 없이 체력 방전.
언제 일어났는지 무관하게 오후 2-3시만 되면 낮잠 시간. 그것도 한 번 자면 기본 2시간.
처음에 임신일까 게슴츠레 의심한 것도 지나치게 늘어난 잠 때문.
#셋, 질척거림 끝판왕
날씨는 겨울인데 내 마음은 가을인냥.
품고 있는 주인이 있어 내 몸 하나에 사람은 둘이건만 뭐 이리 외로운지.
남편이 옆에 있다가 어딘가 가기라도 하면 '어디가?'
남편이 10초 눈에 안 보이면 '뭐해?'
(오해할까, 우리 집은 진공청소에 3분 걸리는 크기)
남편이 퇴근을 늦게 하면 울적.
남편이 일 보러 나갔는데 늦어지면 울컥.
남편이 조금이라도 나한테 무관심하다 생각 들면 심통심통왕심통.
눈물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흘러내려 둘 다 당황케 하기 일쑤며
퍼져오는 외로움에 스스로도 갸우뚱하면서 입을 삐쭉거린다.
남편은 회사에는 팀장님이, 집에는 김상사님이 계신다고 하곤 한다.
원래 1주일에 한 번씩 성실하게 하려고 했는데.
그 성실함을 지닌 사람들이 새삼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워 보일 정도로
나의 게으름은 주 1회 글 1편을 허하지 않는다.
김상사님 눈치 보며 지금도 현란한 마우스 질을 하고 있는 남편님.
내 질척이는 마음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 양해 부탁드려요. 찡긋.
근데 그 현란한 마우스 질 언제 끝나나요? 지금 심통심통왕심통 모드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