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링이를 만나고 겪은 감정의 소용돌이.
작년 11월 중순. 임신이라는 걸 깨닫고 출근하던 때.
하루는 퇴근을 하고 텅 빈 집에 와서
2시간 동안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거실에 누워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다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눈물이
어느새 숨도 못 쉴 정도로 꺽꺽대는 격한 울음으로 흘러갔던 2시간.
"쌤 내년에 3학년 담임하세요! 우리 반 담임해요!"
"내년에 3학년 도덕도 하실 거죠? 아싸!"
2학년 수업도 없을뿐더러 코로나 때문에 자주 오지도 않는 애들이
학교에서 우연찮게 마주치면 쪼르르 달려와 쫑알쫑알하던 말들.
나 또한 그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뻤기에.
올해 3학년 담임이 꼭 하고 싶었다. 3학년 도덕 수업을 많이 하고 싶었다.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며 할 3학년 생활지도계까지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처음 임신을 생각했을 땐 임신=비담임을 연결 짓지 못했다.
그리고 그 둘을 연결 지을 수 있었을 땐 아기를 미루기엔 아쉬운 내 나이가 걸렸다.
그래도 '내년엔 3학년 담임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맴돌았을 땐 링링이가 이미 나와 함께였더라.
처음 만나게 된 아기는 행복이었고 기쁨이었다.
그러다 출근을 했는데
심히 체력이 떨어지는 내 몸뚱이에 대한 속상함과
내가 원하는 대로 재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는 답답함과
지금의 아이들에게 딱 한 달 전만큼의 관심을 쏟지 못하게 된 미안함과
간절한 마음에 일찍이 선수 치듯 읊조렸던 3학년 담임을 못한다는 서글픔이
얽힐 대로 얽혀 눈물로 쏟아져 내렸었다.
(초반에 몸상태가 불안정하여 누워만 있으라는 권고를 받았었다.)
또 그 울음이 혹여나 쪼그마한 아기에게 잘못된 영향을 줄까
미안함이 솟구쳐올라 그렇게나 미안하다 사과를 하면서 더 울었었다.
몇 주를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함께 했고
결국 이 모든 서글픔은
평소 같은 몸과 체력으로 아무 걸림 없이 출근하는 남편에게 화살로 돌아갔었다.
함께 아이를 낳는 건데 나만, 나만, 왜 나만 이라는 억울함이 날 날카롭게 만들었었다.
12월 중순까지, 한 달 정도 이런 감정이 섞여 지냈던 것 같다.
자신의 일을 격하게 사랑하고 아끼는 임산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지 않았을까.
이제는 내 상황을 온전히, 잘 받아들였다.
모든 선택에는 기회비용이 있는 법이니까.
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3월이 되고 학교에 가면 또 한 번 빈 공간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학교 아이들과 잘 지낼 방법을 찾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비담임으로 새롭게 즐길 준비를 하고 있다.
"어쩌지, 미안. 나 내년에 비담임이야. 그래도 도덕에서 볼 수 있음!"
개학이 다가오고 수업 영상을 만들다 문득
작년 11월의 내가 느꼈고
다음 주 3월을 내가 느낄
약간의 허한 감정이 아른거려 써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