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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Apr 05. 2024

결핍에 대하여

그것은 진짜 결핍이었을까.

며칠 전에 우연히 지인을 만나서 밥을 먹다가, '우리 시누이는 1년에 무슨 해외여행을 3번이나 가요. 그건 너무 과하지 않나?'라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작년에 해외에 3번 다녀왔는데 뜨끔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다는 소리가 '그 집은 부부가 사이가 안 좋은데, 그런 결핍 때문에 그렇게 해외를 쏘다니는 거다. 나는 그런 결핍이 없으니 집에 있어도 행복하다'라는 얘기를 하는데 이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린가 싶다가 갑자기 그 '결핍'이라는 단어가 내 뇌리에 꽂혔다. 


나는 최근 결핍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나에게 결핍은, 남편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내가 생각하던 이상적인 모습과 상당히 거리가 있고, 나는 항상 그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에. 남편이 뭘 해도 화가 났다. 집에 와서 누워있어도 화가 났고, 뭐라고 얘기를 해도 화가 났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하지 않아서 화가 났고, 발음이 좋지 않은 둘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모습을 봐도 화가 났다.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나를 보며 어쩌면 남편도 본인의 '결핍'은 아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남편은 감정 표현에 서투르다. 남편의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 엄마는 평생 헌신적인 어머니이고 감정표현에 솔직하시다. 상황이 힘들지만 힘들다고 얘기 안 하겠다고 말하시는 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의 일들을 엄마에게 재잘거리는 것이 일상이었던 사람이고, 남편네 집은 대화가 없는 것이 일상이고 정말 필요한 말만 부모에게 나누던 사람이다. 시아버님과 시어머니 두 분의 대화를 들어봐도 서로 말씀은 하시지만 감정에 대한 공유는 전혀 없다. 그렇게 30년 동안 자란 남편과 10년 동안 살면서, 아직도 남편의 표현법을 이해 못 하고 그것을 되려 나의 '결핍'으로 여기고 있다면, 나는 이 결혼에서, 그리고 내 인생에서의 패배자가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내가 남편에게 몹시 화가 났을 땐 남편도 나에게 화를 낸다. 내가 남편에게 친절하게 대할 땐 남편도 친절하다. 남편에겐 나의 감정이 투영된다. 남편은 내가 화가 나 있다고 화난 티를 팍팍 내고 있으면 그걸 달래줄 수 있는 능력을 배운 사람이 아니다. 남편에게는 '내가 이런 일이 있어서 화가 나네?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 해결책을 물어볼 때 비로소 생각 회로가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렇게 10년 동안 치열하게 싸우면서 알게 된 진리이니, 결혼 10년 차를 맞이하여 이제는 남편을 나의 '결핍'이라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남편과 평화롭게 공존하며 노후를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볼 시기이다. 적어도 귀찮아서 이혼을 포기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그런데 암튼 시누이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서 그게 결핍이라 해외에 3번 다녀온 거라 생각한 그 지인의 논리가 굉장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의 결핍이 바로 해외여행을 못 간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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