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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Dec 02. 2023

너도 나도 잘못한 것은 없어

잘못된 태도가 있을 뿐

이번 주는 남편이 계속 늦었다.

그는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에 칼퇴를 하고 온다 해도 8시 즈음이 되니, '일찍' 온다는 말이 무색하지만, 그래도 '일찍' 온 날은 아이들에게 얼굴이라도 잠깐 비춘 날과 그렇지 않은 날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아이들은 아빠가 '일찍' 오더라 해도 아빠와 함께 자려고 하진 않는다.

그래도 남편이 '일찍' 오는 날에는 내가 9시 타임 요가 클래스를 갈 수 있는 정도는 되니, 그것도 감사한 일이긴 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남편이 늦게 오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도록 마음을 정리했다.

내가 뭐, 애 둘 볼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없다고 딱히 무서운 것도 아니고, 어쨌든 그는 씻고 잠시 자려고 집에 오긴 오니까. 다만 아들 둘을 혼자 끼고 재우는 시간까지 집안일도 하고 먹이기도 하고 첫째 숙제도 시키고 또 말과 인지가 느린 둘째를 끼고 공부도 시키고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9시 정도 되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 느껴진다. 게다가 작년에 지금 하는 모든 일 플러스 학교 업무에 문제집 집필 업무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올해의 일상은 정말 여유롭다.


그런데 문제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나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 책을 읽히고, 남편은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남편은 나와 정리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물건을 착착 쌓아야 하고, 매트 사이사이에 먼지가 없어야 하는 게 남편의 방식이라면, 나는 항상 집에 있고 아이들 물건을 꺼냈다 넣었다 하니 크기 대로 정렬 하지 못한 채 그냥 쌓아두기도 한다.

남편은 오늘 거기에서 폭발했다.

도대체 왜 정리를 이런 식으로 하냐는 거다.


나는 요즘 허리가 아프다는 남편을 배려해서 평일에도 부재했던 그에게 토요일 오전에는 한의원에 가라고 했다. 심지어는 우리 동네에서 유명하다는 한의원까지 알아내서 거기로 가라고까지 해줬다. 그런데 남편은 나에게 그런 사소한 것에 폭발한 것이다. 일주일 만에 가족이 다 같이 하는 한가한 오전인데 말이다.


분위기는 싸해졌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았다. 아니, 생각해 보니 첫째는 읽던 책을 들고 깔깔거리고 있었으니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이런 일이 너무 흔해져서 아이들은 눈치조차 보지 않는 듯하기도 했다.

나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둘째를 데리고 문화센터에 갔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현기증이 나는 것이 아닌가.

분노였다.

나는 분노에 못 이겨 공황증세가 올 것 같았다.

남편에게 카톡을 했다.


내가 남편을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남편이 평일에 없어서 내가 모든 걸 혼자 다하려고 하니 집이 잘 정리되어 있을 리 있냐. 고작 그런 걸로 화내는 네가 너무 어이없다.


남편은 빠르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정리도, 빨래도, 할 때 제대로 하면 이렇게 까지 엉망이진 않을 텐데 그게 너무 아쉽다고 했다.

사실 그렇긴 하다. 첫째는 양말을 뒤집어 벗어놓는다. 바지와 팬티를 한꺼번에 벗어 뒤집어 놓는다. 나도 요가바지를 벗을 때 꾸길 꾸길 뒤집어 벗는다. 둘째가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양말을 그대로 빨래통에 넣는다. 그건 우리 각자가 고치면 좋을 습관이긴 하다.


하지만 남편이 그런 태도로 그렇게 반응한 것은 나빴다. 주말에 잠깐 가사 도와주는 하숙생 주제에 화까지 내는 건 염치가 없지 않은가.




사실 오늘 놀랐던 것은, 내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전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딴 새끼랑 사는 거지?'가 기본 기조였다. 그래서 자괴감에 빠지고 우울에 빠졌다. 우울은 또 다른 우울한 생각을 불러오고 그렇게 하루를 망쳐버리는 게 일쑤였다.


오늘은 달랐다.

나는 분노가 스멀스멀 솟구쳐 올 때 왜 분노했는지 정확하게 워딩을 했고, 남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남편도 그렇게 화낸 건 미안하다고 한 것과 동시에 왜 화를 내게 되었는지를 얘기했다.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남편과 나의 가장 큰 잘못은

바로 태도 아닐까.

너도, 나도,

여전히 미숙하니까.


오늘부터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태도를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 더 고민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남편도 그 고민을 함께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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