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라고 말하지 마세요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늪

오늘도 어딘가에서는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회의가 열리고 있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거나, 해야 할 일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회의가 열립니다.

이왕 시작한 회의이니 참석자들은 서로 의견을 냅니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이것부터 해야 한다, 저것부터 해야 한다, 내가 해야 한다, 당신이 해야 한다 등 많은 말이 오갑니다.

물론 일방적인 지시로 가득 찬 회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걸 회의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적어도 일하는 사람이라면 뭐라도 해보기 위해 회의를 하니까요.

#"그것도 중요하다. 나중에 하자" 

의지가 모이게 되면 방법이 생겨나고, 여러 방향의 길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지금 '무엇을 먼저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팀의 성과를 좌우하는 일입니다.  

이때 리더가 나서서 결정하곤 합니다. 리더의 책임입니다. 명확한 목표 설정을 통해 팀의 역량을 하나로 응집시킵니다. 물론 모든 리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책임을 전가하는 리더도 많습니다. 

게다가 모든 팀이 리더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최근의 프로덕트는 독자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뭉친 팀이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팀의 특징은 모두 리더이자 팀원으로서 행동하고 수행합니다.

여기서 많은 충돌이 발생합니다. 각자 판단하기에 모두 중요한 일이니까요. 이런 상황이 되면 데이터에 기반한 근거를 대는 쪽의 주장이 이깁니다. 혹은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길 겁니다.

이때 다른 팀원을 설득시키기 위해 아주 많이 쓰이는 말이 '나중에'입니다. 그 순간 조직은 '프로크라스티네이션(Procrastination)'에 빠지게 됩니다.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은 '앞으로(forward)'를 뜻하는 접두사 pro-, '내일의(of tomorrow)'를 뜻하는 단어 crastinus가 합성한 단어입니다. 즉,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룬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연행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Photo illustration by Kiet Phan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늪

프로크라스티네이션, 즉 연기 행동은 개인, 팀, 그리고 조직 전체의 생산성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주요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작업 지연
2. 스트레스 증가
3. 자원의 비효율적 사용
4. 목표 달성 실패
5. 품질 저하
6. 직무 만족도 감소
7. 협력의 저하

하지만 우리는 우선순위의 행동을 정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순위의 액션을 미룬 것일 뿐입니다. 이게 문제가 될까요?

네. 문제가 됩니다. '나중에' 해야 할 액션이라고 명명한 순간부터 그 조직은 지연행동의 늪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연구에서는 이전에 했던 것보다 더 못할 것을 회피하거나 실제 능력이 없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나중에'로 미루는 행태가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즉, '나중에'라는 건 정말 나중에 하겠다는 의도와는 달리 지금 하지 않겠다는 변명이 담긴 지연행동인 것입니다. 

'왜 나중에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분석으로는 스틸 피어스의 <Psychological Bulletin>의 연구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연구는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기저에 업무 혐오, 업무 지연, 자기 효능감, 충동성뿐 아니라 성실성, 자기 통제, 산만함, 조직화, 성취동기 등의 측면이 작용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통해 '나중에'라는 말을 자주 나오는 조직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중에'라는 말의 의도가 모두 지연행동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걸 에둘러 설득하기 위한 배려의 용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리스트가 투두리스트가 될 수도 있죠.

그러나 이미 '나중에'라는 단어를 꺼낸 순간, 프로크라스티네이션의 늪에 빠지는 것입니다. '나중에'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 순간 그 일은 달성할 수 없는 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