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봄을 형용해온 단어의 본질을 찾는 글 터
찬란하다.
'찬란하다'를 소리 내 읊조려 보자.
단어 자체가 어색하지는 않지만 요즘의 언어로 들리진 않는다.
그래도, 겨우내 '쓸쓸하고 찬란한 神, 도깨비'라는 드라마로 접하거나
불완전한 상태에서 소생되는, 어리고 여린 단어로 사용되면서,
'청춘, 봄'과 같은 단어들을 수식하는 일에 흔히 쓰여왔기 때문에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로 다가온다.
찬란한 것이 진정 찬란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찬란하다'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 보려 한다.
찬란하다의 본연의 의미
'찬란하다' 이 단어는 2가지 정도로 해석한다.
1. 빛이 번쩍거리거나 수많은 불빛이 빛나는 상태.
2. 감정 따위가 매우 즐겁고 밝다.
직역을 하면 우리가 지금까지 써오던 의미보단
훨씬 밝은 느낌을 가지고 있다.
찬란하다의 현재 풍기는 의미
'찬란함'을 사전적 의미로 연상하여 색으로 빗대어 볼 때,
[금빛, 은빛, 은하수]를 연상케 해야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찬란함을 색에 비유하자면
[ 빛에 바래진, 채도가 한참 낮은 ] 그러한 색으로 채색된다.
본연의 의미가 이토록 아름 다운 것을 듬뿍 담았는데,
'왜 과거의 향기만 풍겨지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청춘, 그 찬란함에 대하여.
찬란하고 슬픈 봄.
위와 같은 문장들에서 결코 어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문장들이기 때문에.
위의 문장에서 얻는 '찬란함'이란
지금, 순간, 당장 현재에 반짝 빛나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을 벗어난 과거의 빛에 대한 의미를 얻는다.
찬란하다 그 의미는 그저 매우 반짝이고, 즐거운 상태나 감정 그 순간이었어야 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과거를 안아버렸다.
본래 의미와는 달리
찬란하다는 단어는 결국 과거를 삼켰고.
우리의 뇌리에 맴돌고 있다.
그리고 특히 청춘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 찬란하다는 단어를 쓰면 어딘가가 항상 아리다.
뜨거운 지금의 순간을 형용하기보다,
뜨거웠던 찰나,
이미 지나가버린 순간이라는 것을 직시하게끔 만들어준다.
(필자는 '찰나'라는 단어도 순간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지만 좀 더 과거를 안고 있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찬란'의 의미를 다시 찾으면서,
'청춘'이라는 의미도
'봄'이라는 의미도
그저 그대로 빛나는 것으로만 기억해나가기로.
우리의 청춘과 봄에 대하여 '찬란'을 외친다.
짜릿하게 찬란한 지금의 청춘에 대해서 말이다.
찬란함을 채색하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