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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Jan 06. 2023

책방지기 서가 (1)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내가 꿈꾸는 책방이란 무엇일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과연 무엇을 위해 오는 걸까


여행작가로 10년쯤 살다가 이 삶이 익숙해졌을 때 독립출판을 시작했고, 어느 날 갑자기 책방지기가 되었다. 어떤 사람은 삶의 목표를 향해 차곡차곡 인생을 쌓아간다면, 나는 애초에 목표나 꿈이 없이 즉흥적인 삶을 산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인생이 여행작가의 길로 자연스럽게 이끌었고, 맘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독립출판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책방은 왜 갑자기 하고 싶었을까. 그 이유를 어쩌면 책방 안에서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책방을 열었다. 그리고 딱 10년만 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10년이면 이 삶을 충분히 살아볼 것 같았다. 10년 중 벌써 5년이 지나고 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찾았을까?


“안녕하세요. 여기는 책방입니다. 날씨가 좋으면 손님이 없고, 비가 오면 손님이 없고, 더우면 손님이 없고, 추우면 손님이 없는데, 오늘도 책방 문을 활짝 열려 있습니다. 나는 아마도 어제 당신이 읽지 않은 글을 팔아요. 나는 아무래도 내일 당신이 읽을 글을 써요. 겁먹지 말고 들어오세요.” -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뒤표지 중


처음 6개월은 쉽지 않았다. 여행작가로 떠도는 삶을 살던 내가 어떤 공간에 오픈과 마감 시간을 정해 놓고 출근한다는 것이 특히 어려웠다. 게다가 무슨 요일과 몇 시에 주로 손님이 있을지 알지 못해 초반에는 휴무 없이 긴 시간 영업했다. 과연 이렇게 잡일만 많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른 채 시간만 보내야 하는 건가 꽤 마음속이 시끄러웠는데 그때 우연히 커다란 곰인형을 만났다. 그리고 곰인형 덕분에 책방의 색을 찾아갔다.


내가 팔고 싶은 책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들은 이곳에 꿈을 꾸기 위해 찾아온다는 것, 이곳에서 오래전 잃어버린 감정을 찾길 바란다는 것, 그저 여행하듯 낯설지만 편안한 장소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곳과 가장 잘 어울리면서 잃어버린 것을 찾을 수 있으면서, 오래 사랑받을 수 있는 어떤 책을 만들기로 했다. 이곳엔 곰인형도 있고, 다락방도 있고, 커피와 술과 고양이와 은은한 조명과 가끔 사람이 있었으니 글의 배경이 되기에 충분했다.


“가장 빛나는 별도 어둠 속에 묻혀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어둠이라 믿는 것은 사실 내가 눈을 감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짝이는 별이 떠 있어도 그 별을 볼 수 있는 건 오직 나뿐이다. 내 의지뿐이다.” -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본문 중


책방지기의 서가를 훔쳐 보고 싶을 때, 책방지기가 왜 책방을 꾸렸는지 궁금할 때… 아니, 사실은 책방을 기웃거리는 당신의 마음속 이유를 알고 싶을 때 이 책이 적당하지 않을까. 이 책은 책방을 환상적으로 묘사하지 않았고, 책방지기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곰돌이’라는 알바생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독자들은 스스로 ‘곰돌이'에게 감정이입을 해 책방의 일 년을 머물다 간다. 


책방지기와 손님이 꿈꾸는 책방의 모습은 다르지 않을 거고, 책방지기가 매일 책방으로 출근하는 이유와 손님들이 시간이 나면 책방에 오고 싶은 이유가 다르지 않을 거다. 무엇이 되었든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삶은 소란스럽지 않고 잔잔하다. 가끔 감정이 어지럽게 흐트러질 때가 있다가도 ‘책방’에 있으면 다시금 마음이 정돈된다. 그러나 책의 주인공인 곰돌이는 달랐다. 책방은 곰돌이에게 어지럽고 이해할 수 없는 공간이다.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일터일 뿐… 망해도 그만이고 손님이 많으면 오히려 피곤한데, 손님이 없어도 너무 심심해 지루한 곳이다. 때려치우고 싶다가도 별거하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는 책방에 계속 출근한다. 하기 싫다면서 사장이 시키는 작은 업무를 해냈다. 그런 시간이 차츰 쌓이다 보니 어느덧 일 년이 지났다.  


우리는 누구나 곰돌이처럼 살고, 곰돌이를 꿈꾼다. 빈둥거리는 삶을 좋아하다가도 지루한 것은 싫고, 소란스러운 것을 싫다면서도 소심해 누가 먼저 말을 걸어주길 바란다. 한 걸음을 떼면 열 걸음은 수월하고, 하루를 버티면 한 달은 금세 흐른다. 한 걸음씩, 하루씩… 감정에 따라 삶을 충실히 살다 보면 어느새 삶은 변할 거다. 무언가 이룬 것이 없어도…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도… 마음이 단단해진 것만으로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책방지기님이 쓴 책 중에 가장 추천하는 책이 뭐예요?”


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이곳에서 파는 책 중에 ‘책방지기’가 쓴 책을 궁금해했고, 어김없이 <있잖아, 다음에는 책방에서 만나자> 책을 권한다. 아마도 책방이 이제 막 익숙해지던 때 일 년 동안 차곡차곡 쌓은 원고로 만든 책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책을 읽고 잃어버린 소녀 시절의 나를 발견했어요.”라고 말하는 독자들이 많은 이유가 더 크겠지. 아무도 읽어 주지 않고, 누구도 공감해 주지 않는 책을 권하기란 쉽지 않으니까. 이 책을 꼭 이곳에서 만나지 않아도 좋다. 어디선가 우연히 찾아간 동네 책방에서 만나도 좋겠고, 어떤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때문에 보석 같은 동네 책방을 발견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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