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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선 Apr 10. 2024

동네책방 책방일기 #61
어떤 환불에 관하여

여기, 위태롭게 서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한 발을 뗄까 말까 고민한다. 이런 기로에선 늘 어느 쪽도 좋을 것이 없다. 감정만 상할 뿐.


때때로 어김없이 어떤 마음들은 그동안의 긴 노력들을 허무하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들은 오래 가슴속에 남아 삶을 흔든다.


"몰랐어요. 환불해 주세요."


작은 동네책방에서 운영하는 모임들은 늘 소규모였다. 소규모라는 건 몇 명의 인원이 신청하면 마감이 된다는 말이고, 뒤늦게 알게 되면 신청할 기회조차 없다는 말이다. 그런 모임들을 자주 하고 싶지만 작은 책방의 특성에선 자주 할 형편이 안된다. 공간과 시간에 많은 제약이 있기에.


그나마 온라인 모임은 공간 제약이 없어 다규모의 인원으로 진행하고 있지만, 관리 인원이 혼자라서 이조차도 최대한의 인원을 정해놓을 수밖에 없다. 감당할 만큼만 딱.


매번 여러 이슈가 생기는 모임은 <30일 매일 글쓰기>였다. 두 달 전에도, 이번 달에도 무려 6일 차 되는 날에 환불 요청이 있었다. 이번 달 신청자에게 신청 후 곧바로 환불 관련 규정을 안내하고, 모임 당일에 톡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 안내와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문자로 수차례 안내를 했다. 신청 때 안내를 놓칠까 봐 톡톡 메시지를 반드시 확인해 주시라며 동의까지 받았던 터라 당연히 확인했어야 하는 문제다. 게다가 신청서에도 신청 안내 게시글에도 신청 후 보내는 안내 메시지에도 온통 환불 관련으로 어떠한 사유로도 불가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환불불가 사유는 이렇다.

(1) 30일 중 28일 이상 글쓰기에 성공한 분들에게 소책자와 경품, 그리고 포인트 지급을 해주는 모임

(2) 못하는 분들의 참가비를 잘하는 분들에게 제공해 주는 시스템


게임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동전을 넣는 순간 내가 그 게임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돈을 환불받지는 못하는 것처럼 이 모임도 시작하면 모든 퀘스트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성공인 그런 모임이다. 그러니 환불이 어려울 수밖에. 


그렇다고 엄청나게 많은 비용을 받지도 않는다. 참가비는 2만 원. 2만 원의 비용으로 30일 동안 매일 글을 써서 인증을 하면 되는데, 그중 28일 이상 인증에 성공하면 소책자 + 새벽감성 출판사 출간 도서 1권을 지급받고, 30일을 모두 채우면 소책자 + 도서 1 + 10,000원 적립금을 받는다. 소책자 제작 비용만 인당 15,000원이 발생하기 때문에... 하신 분들 입장에선 뭐 이리 많이 주냐며, 남는 것이 있냐고 묻는다. 남는 것이 아주 없을 수 없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환불하면 이제부터가 마이너스가 되는 게임이다. 그러니 더더욱 환불에 민감할 수밖에. 손해 보기 싫어서가 아니고, 이 모임을 지속하기 위해서 말이다.


"앞으로 다시는 저희 책방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조건으로 환불해 드릴게요. 단, 네이버페이 수수료 등이 발생하였으므로 10% 제한 금액을 환불하겠습니다."


이런 블랙컨슈머들에게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냥 상대하지 않는 것. 이참에 진상 한 명 걸렀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뿐이다. 더 나은 프로그램으로 그런 사람들이 아쉽게 만들면 될 뿐. 어차피 돌고 돌면 이 프로그램보다 나은 것을 찾긴 어려울 텐데...? 그냥 열받게 하는 것이 젤 좋다. 문자도 차단, 블로그 댓글 남기는 것도 차단. 모든 걸 차단했다. 앞으로 다시는 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비용 환불이 더 중요한 분들과는 앞으로 안 보고 사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이번달도 환불금으로 18,000원이 빠졌다.


빠져나간 통장 잔고를 보며 지난날이 떠올랐다. 지난 2월에 글쓰기를 하다가 6일 차에 환불을 요청한 사람이 있었는데, 안된다고 했다가 난리가 나는 바람에 환불을 했던 적이 있었다. 고맙게 받겠다고 하고는 다음 날 책방에 꽃배달을 시켰다. 그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났다. 고작 2만 원 받아 가더니 이 꽃은 훨씬 비쌌겠구나. 어차피 쓸 돈이면 환불이나 받지 말지. 아님 책을 사던가. 꽃을 보면 내가 방긋방긋 웃으면서 너무 행복해요! 이런 결말을 원한 것인가. 최악이었다. 


혹시나 설마, 또 꽃을 보내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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