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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 Sep 28. 2015

역경과 고난, 그리고 위대함

고난과 역경 속에서 열정은 그 가치를 발휘한다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가고 잘 익은 과일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해지는 가을입니다. 이 무렵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격언은 바로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라는 것이지요. 

"와인은 너무 어려워요."

 와인 초보자들이 내게 호소하는 가장 흔히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와인 초보자이건 수십 년을 와인을 마신 사람이건 아마 대부분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일 것입니다.와인은 마시면 마실수록, 알면 알수록 아는 것이 늘어난다기보다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 지를 깨달아간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거의 10년이상을 와인을 마시며 강의를 해 왔던 제게도 와인은 아직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은 분야입니다. 그렇게 와인의 세계는 넓고도 무한한 정보의 바다라 할 수 있지요. 특히 와인을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빈티지(vintage)입니다.


 와인은 맥주나 일반 술에 비해서 생산연도의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봄에 서리가 많이 니렸는지, 여름에 충분한 햇살을 많이 받았는지, 수확기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다양한 기후적인 요소에 따라 포도의 수확시기도 달라지며 이에 따른 와인의 맛도 달라지게 되지요. 그래서 그해의 날씨가 좋았던 해의 와인은 몇 배로 가격이 치솟고, 날씨가 좋지 않았는 해의 와인은 가격이 내려가기도 하여 똑같은 와이너리의 같은 와인인데도 빈티지에 따라 가격도 맛도 다 다른 경우가 많지요. 

 와인 생산자의 기술보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고자 하는 프랑스 와이너리의 경우는 칠레, 호주 같은 신세계 생산국가들에 비해 격차가 더 심한 편이지요. 작년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여름은 예년보다 낮은 기온으로 포도가 잘 익지 않아 와인생산자들의 애간장을 타게 했으나 다행히 평소보다 높은 온도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가을로 인해 '위대하진 않지만 꽤 괜찮은 빈티지'의 와인이 생산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부르고뉴 지역의 고급 와인을 생산하는 그랑크뤼급 포도밭들은 날씨의 영향을 덜 받았으나 수확량이 줄어 와인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었죠. 2년전 필자가 방문했던 10월경은 날씨가 좋았던 해라면 이미 수확이 끝났어야 하는 시기였지만 좋지 않았던 날씨로 인해 아직도 수확을 채 시작도 하지 않은 포도밭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일조량이 충분치 않을 때에는 풍부한 아로마와 적정당도를 맞추기 위해 수확시기를 늦춥니다. 그래서 경험이 많고 정성 들여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에서는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잘 대처해가면서 좋은 빈티지와 다름없이 좋은 와인들은 생산해 내기도 합니다. 9월말인데도 좋지 않은 날씨로 인해 수확도 채 시작도 하지 않은 포도밭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일조량이 충분치 않을 때에는 풍부한 아로마와 적정당도를 맞추기 위해 수확시기를 늦춥니다. 그래서 경험이 많고 정성 들여 포도를 재배하는 와이너리에서는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잘 대처해가면서 좋은 빈티지와 다름없이 좋은 와인들을 생산해 내기도 합니다. 좋지 않은 올해의 날씨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다른 해에 비해 퀄리티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질 것인지에 관해 와이너리 오너들에게 물었습니다. 상당수에 해당하는 많은 와이너리 오너들이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기후가 좋아서 포도가 잘 익은 해에는 누구라도 힘들이지 않고 좋은 와인을 만들 수 있다. 전반적으로 다 좋은 포도로 만들기 때문에 굳이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쉽게 좋은 와인을 만든다. 하지만 좋지 않은 해일수록 좋은 해에 비해 훨씬 더 심혈을 기울여 만들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품질이 좋은 해보다 더 개성 있는 와인을 생산해낸다. " 마치 사람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나면 보다 인생의 깊이가 깊어지듯 와인도 그러한가 봅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유명하여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사지도 못한다는 전설의 와인. 로마네 꽁띠의 밭을 찾아갔을 때는 마침 수확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포도밭에 그럴싸한 이름표도 붙어있지 않아 헤매다가 포도밭에서 수확을 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일꾼 한 사람을 붙들고 로마네 꽁띠의 밭이 어디인지를 물었습니다. "당신이 서 있는 바로 그 자리 돌담 너머가 로마네 꽁띠의 밭이다."라고 대답했던 허름한 옷차림의 그 일꾼은 바로 다름 아닌 그 유명한 '로마네 꽁띠'와이너리의 주인인 '오베르 드 뷜렌(Aubert de Villaine)'이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와인 마니아들의 로망인 와인을 생산하는 그는 다른 일꾼들과 다름없이 농군의 옷차림에 긴 장화를 신고 수확을 진두지휘하며 함께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태도로 자연환경에 순응하며 함께 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한 태도로 자연환경에 순응하면서도 세심한 정성을 들여 만드는 와이너리 오너들의 자세. 사실 저는 그다지 작황이 좋지 않은 올해에 만들어낼 그들의 와인이 좋은 빈티지의 와인보다 더 기대가 됩니다. 바로 이런 겸손한 자세로 더 심혈을 기울여 와인을 만들어낼 것이분명하기에 그들의 정성이 좀 더 많이 깃든 개성진 와인을 맛보고 싶은 저의 실험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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