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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진 Nov 30. 2021

당신을 건너 여기, 인디아 3

과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귓구멍에선 벌통을 걷어찬 듯 웅웅 요란스런 굉음이 빼곡히 울려댔고 부릅뜬 시아엔 볼록렌즈와 오목렌즈가 번갈아 끼워지는 듯 주위 사물이 일시에 들이쳤다 삽시에 멀어졌다. 혼백이 달아난 얼굴을 하고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걸음을 옮겨 뭄바이 국제공항을 나서자 새카만 어둠과 극렬한 대비를 이루는 새하얀 치아가 가파르게 번뜩이면서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언어를 신들린 기관단총처럼 무차별 난사하고 있어 버스에 눌린 듯 머리가 지끈거리고 장기의 위치가 뒤바뀐 듯 속이 울렁거리며 혈액이 후진하는 듯 손발이 저려왔으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공황이란 건가, 길게 끌 것도 없었다.

 

 

일순간 압도되었다.

 

 

망연자실, 금단현상으로 제정신을 내려놓은 마약중독자처럼 어리둥절한 채 뭐가 뭔지도 모르고 공항광장을 뒤덮은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 떨궈져 있자니 어느 순간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대단히 감당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들었다는 어림짐작이 점차 기정사실로 굳어져 캄캄절벽, 어깨는 허리 아래로 추락하고 머리통이 가슴팍으로 꺾어졌다. 대체 뭘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생각 같아서야 걱정 마요, 공항 가면 한국인들 다 만나게 돼 있어요, 그 특유의 히멀건한 표정으로 안심하라던 시인 J(본명 조병준)의 멱살을 소환해 뒤흔들고 싶었으나 불안 초초 신경쇠약의 삼단콤보가 맞물려 심장을 옥죄는 통에 호흡마저 여의치 않았다. 무슨 인공호흡기라도 된다는 듯 뻑뻑 줄담배를 태워가며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는 한편 연신 씨부렁씨부렁 혼잣말을 해대다 바스락하는 기척에 귀청이 바락 곤두섰다. 오래지 않을 시간이 끝나지 않을 것처럼 연타 스트레이트를 날리며 거칠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뫼비우스의 띠를 회전했다.

 


뭄바이행 비행기에 올라타기 이전 방콕 수완나폼국제공항을 고장난 도마뱀처럼 사방팔방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아니, 어쩜 그렇게 기발하게 멍청할 수 있지? 환승해야할 비행기가 늦었다고 기다려줄지 알았다니, 환승이란 말 그대로 갈아타는 것인데, 고로 그 비행기와 이 비행기는 따로국밥인데, 내가 무슨 아시아정상회담에 참석하는 외교안보수석도 아닌데 뭐 할 일이 없어 나를 기다리고 자빠져 계시겠냐고! 혼신의 씨팔조팔을 뱉어가며 경유지 대기시간이 두 시간인데 애당초 출발이 두 시간 늦어버렸건만 태평하게 수작질이나 일삼던 스스로에게 저주를 퍼부어대는 가운데 이미 지불한 항공료는? 예약한 호텔은? 환불이 되긴 해? 뭐라고 말해? 기브 미 더 머니 그래? 각종 암담한 우려에 시달리며 이리저리 휩쓸리다 어디선가에서 울리는 잃어버린 아이를 찾습니다 풍의 영진 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방송과 함께 배정좌석에 안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된 줄 알았다. 스튜어디어스에게 갈라진 논바닥 같은 표정으로 맥주를 부탁해 다급히 벌컥거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틀어놓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모피어스가 빨간 약 줄까 파란 약 줄까, 네오를 시험하는 장면에 심취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제부터 낙원이 열릴 줄 알았다. 다시 말해 그토록 바짝 얼어 정신분열을 앓을 줄 개구리손톱만큼도 상상하지 못했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머릿속 혼선을 잘라내며 추락한 어깨를 끌어올리고 꺾어진 머리통을 제자리에 끼워 맞췄다. L양이 알려준 대로 프리페이드택시란 걸 타고 예약해둔 호텔로 가자고 하면 된다. 도착하면 위스키를 나발 불고 자빠져 자면 된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 이건 내 낮술친구인 뒷집 박영감도 할 수 있고 나만 보면 인사 꾸벅하고 뭐 안 사주나? 하는 눈빛으로 올려다보는 박영감의 아홉 살짜리 막내손자 놈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고로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결론내리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런 걸 바우처라고 했지, 아마. 어디 가냐는 물음에 마나마호텔! 행선지를 답하고 값을 지불하자 2135가 찍힌 종이쪼가리 한 장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2135만 타면 된다. 그런데 이 망할 놈의 2135는 보이지 않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나를 향해 갈고리 같은 미소를 낄낄 흘리며 다가온 2185가 고객과의 약속을 뒷간 휴지조각 취급하는 그런 개자식일랑 집어치워버리고 3자를 8자로 고치자고, 그럼 내 택시를 탈 수 있다고. 그리고 가자고.

 

 

Sure Why Not! 그렇게 과감하게 외칠 수 없었다. 녀석을 따라갔다간 실종자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이 될지도 모른다는 방정맞은 우려가 앞장섰다. 평소 간뎅이를 집에 놓고 왔다는 듯 더럽게 호쾌한 척하고 다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어울리지 않게 신중해져야 했다. 그저 그 빌어먹을 놈의 2135를 울화통이 터지고 애간장이 타들어가도록 찾아다니며 아니, 이 자식이 지금 손님하고 눈이라도 맞은 거야 뭐야! 씨부렁거릴 뿐 달리 방도를 마련할 수 없었다. 밤은 더욱 내려앉았다.

 






 


아 나, 진짜 돌아버리겠네 싶을 무렵 무척이나 답답한 얼굴을 착용하고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등장한 택시기사를 향해 만나서 반갑다고, 이렇게 반가울 수 있냐고 태극의 기상이 담긴 뒤돌려차기로 죽탱이를 날려버리고 싶었지만 호텔로 입성하는 일이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보다 시급했으므로 뒤틀린 심사를 꾸욱 누르며 공항을 빠져나와 죽일 듯이 클랙슨을 울려대는 도심으로 내달리길 얼마, 뭐야 저, 저건? 숨이 헉 떨어지며 그야말로 충격적 장면을 마주해야 했으니 왜 들은 바가 없으랴, 인도 뭄바이에는 동양최대의 슬럼이 똬리를 틀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머리로 아는 지식은 실체를 목도하는 데서 오는 충격을 오십 원어치도 감내하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


 

일촉즉발, 당장 내일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존립이 위태로운 폐건물들과 파죽지세, 구름을 가를 듯 치솟는 신축빌딩들이 극렬한 대비를 이루는 가운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찔러봐야 알 것 같은 메마른 육신들이 헤아릴 수 없는 수치를 이뤄 여기저기거기와 그 너머에 벌러덩 드러누워 야밤의 어둠과 한기에 뒤섞인 와중 그들과 허공의 경계엔 한 장의 거적때기만이 덧씌워져 가냘픈 최후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대지를 베개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라는 낭만적 수사를 대입시켰다간 뭐 이 새끼야? 울분에 찬 몰매를 맞을 것 같은 참담한 광경 속에 세상모르는 아이들만이 천방지축 앞뒤 없이 뛰어다니고 있어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난감하던 차, 정말이지 이건 또 뭐라니? 생선 썩는 듯 역한 냄새가 사방에서 기습해와 가뜩이나 복잡한 속사정을 더욱이 휘저어놓으니 이거야 원.

 


“마인딥 아 스뫀(Mind if I smoke)?”

진통제를 찻듯 담배가 당겨와 의견을 구했더니 웃는 듯 마는 듯 화장실에 가고 싶은 듯 모호한 표정으로 애매하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안 된다는 건지 뭔 말인지 모르겠다는 건지 확신이 안 서 재차 물었다. 천천히 명확하게.

 

“우드 유 마인드 이프 아이 스모크(Would you mind if I smoke)?”

반응은 다르지 않았다. 태우지 말라는 대꾸가 없었기에 의문은 후자로 기울었으니 삼차 물었다. 간단명료하게.

 

“스모킹 파서블?”

이에 인도인 특유의 발음으로 기다렸다는 듯 답이 왔다.


“포씨블 포씨블!”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걸까? 과연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녀석이 택시기사의 일반적인 업무를 엄정히 준수하여 이 내 죄 많은 몸뚱이를 예약해둔 호텔에 문제없이 인수인계해준다면 나는 요금의 두 배를 내리라 다짐하고 마치 관심법이라도 구사한다는 듯 눈알을 부라리며 전후좌우를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연신 담배를 뻐끔거릴 때였다. 룸미러를 통한 녀석의 눈동자가 수시로 뒷좌석의 나를 향했다가 곧장 정면으로 내빼길 반복했다. 그 수상쩍은 기미에 두려움이 엄습하자 인도 대도시 곳곳에서 벌어졌다는 온갖 불유쾌한 사건사고들이 무리 지어 떠오르며 목덜미가 뻣뻣해졌다. 라이터를 재그시 감싸 쥐고 주먹을 꽉 오므렸다.

 


줄곧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으슥한 골목을 내달리는 동안 분위기 참 좆같네 어쩌네 구시렁대며 담배 한 개비를 더 입에 물려던 차, 일순 녀석과 나의 시선이 룸미러에서 딱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끼익 택시가 급정거하고 뒷좌석의 양옆으로 번뜩이는 무언가를 오른손에 쥔 큼지막한 덩치 둘이 합승에 대한 일말의 양해도 없이,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작정 문을 열어젖히려는 순간, 쾅! 두발의 진격을 몸소 체험한 문짝이 시원스레 열리는 것과 함께 충격을 전달받은 덩치 하나가 바닥을 나뒹구는가 싶더니 금세 오뚝이 정신을 발휘해 벌떡 일어서려는 시점에 빡! 무모한 도전정신이 어떠한 참사로 연결되는지를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로우킥 한방을 턱주가리에 시원하게 선사하곤 끽 소리도 없는 대자 취침모드로 안내한 뒤,

 

 

연이어 달려드는 움직임을 이미 간파했기에 속히 대응하려 했으나 후려치거나 내빼거나를 택일하여 실행하기엔 양자 모두 설핏 늦어버린 타이밍인지라 부득불 마주 끌어안고 바닥을 똘똘 구르며 이런 씨발 놈이 어쩌고저쩌고해대며 오늘 씨바, 아주 그냥 죽네 사네 마네 해대는 구강액션과 더불어 녀석의 상판을 향해 나의 면상을 통해 주거니 받거니 권커니 자커니 두 주먹의 능란한 협연을 구사하고야마는 그런 살벌한 해프닝은 그저 초보여행자의 과대망상에 그치고 말았다. 불필요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의 음험한 눈빛은 한 마디 요청으로 이어졌다.

 

 

“미, 씨가렛, 원.”

 

번역하자면 야 이 자식아, 너만 피우지 말고 나도 하나 줘보세요 되겠다. 무가치한 공상에 정면반박을 선언하는 녀석의 한마디는 본래의 호기를 돌려주었기에 한 개비를 주고 다시 한 갑을 건네며 It's yours. 너 피워.

 

 

다변하는 아시아 국제정세를 논할 수도 없고 해서 어리바리 사방팔방 기웃거리며 근데 이놈의 택시들은 왜 죄다 사이드미러가 없는 걸까? 간혹 있는 놈들은 왜 접고 다니는 걸까? 의문하는 사이, 클래식한 모양에 노란색과 검은색을 혼용한 뭄바이 택시는 Hotel Manama라고 쓰인 마나마 호텔에 도착했다. 바우처와 함께 팁으로 100루피를 건넸다. 따블로 주겠다는 초심은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으니 이는 그깟 몇 백 루피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렇게 터무니없이 후한 팁은 결국 이국여행자들을 향한 극단적인 바가지와 비극적인 칼부림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라는 개소리는 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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