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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진 Nov 30. 2021

(방콕) Where is Chai? 3




(Flapping Duck 1)




Where is Chai는 기다란 복도형 거실과 그 끝에 놓인 1평 남짓한 테라스라고 부르기는 참으로 뭣한 1평 남짓한 바깥 공간이 단연 인상적이었다거실엔 무위를 예찬하며 걷어놓고 개지 않은 빨래처럼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작자들 태반이었고 거실 끝과 연닿은 테라스에선 한갓진 음주와 나른한 흡연이 적극 성사되었다나태와 활기가 필연처럼 맞물려 불가분의 양면을 구성하는 듯 극히 자연스러웠다.



낡은 건물과 하얀 내벽은 정겹지만 허름하고 그에 걸맞게 숙박요금 또한 조촐했다화려했던 옛날 같은 건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는 듯 남루는 태생적이라 읽혔다소속 식당과 투어 프로그램은 완연히 부재했고 투숙객에 대한 상업적 체계 역시 경쟁사회의 치열함 대신 두루뭉술한 인간미가 서렸다여러모로 단기투어보다는 장기여행이반듯한 캐리어보다는 너절한 배낭이 적격이었다장기여행자이지만 캐리어를그것도 시선이 쏠리는 꽃무늬 캐리어를 끄집는 나는 그 가운데 다소 이질적이었다그건 H역시 마찬가지였다때로 불필요하게 세련되었다더군다나 H는 Where is Chai에 묵지도 않았다.



주로 동남아에서 성행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장롱에 처박히거나 걸레로 존재를 전이하는 화려하고 조잡한 원피스는 여타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모가지에 둘러진 엔틱한 목걸이가 그를 보필했다아저씨우리 지금 시장 가는 거거든요 라며 수트 입은 나를 타박하던 그날엔 단정하지만 화려한 투피스를 입어 남 말 할 처지가 아님을 증명하던 H...... 가느다랗지만 또렷이 꺼풀지고 물기 적절한 눈매가 먼저 와 닿았다모난 곳 없이 동그스름한 얼굴은 균형이 좋았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태웠는지 얼룩 진 곳 없이 까무스레한 피부는 세련에 섹시를 더했다길이 늘씬하다거나 볼륨 두텁다거나 하는 쪽은 아니었지만외려 설핏 마른 기운이 있었지만 그것에 다른 여지를 상상할 순 없었다그것이 어울렸다. 헌데 왜일까? 필요 이상으로 과감하고 시원스레 젖히는 웃음은 드물게 호쾌하기도 했으나 과장된 기색이 역력했다예상외로 얇지 않고 맑지 않은 목소리는 그 웃음과 더불어 연극적 요소를 부각시켰다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었다.







 

(Flapping Duck 2)



여행자들 간 결속력을 남다르게 하는 Where is Chai에선 함께 만든 식사가 자주 이뤄졌고 내가 당도한 그날의 메뉴는 내가 꺼내놓은 오뚜기 카레로 결정되었다그러나 그 저녁 나는 거기에 있지 않았다그 맞은편 Flapping Duck라는 인터네셔널한 숙소에서 매양 그렇듯 밤낮을 모르고 퍼마시며 하루의 마지막을 서둘러 끌어당기고 있었다마음 없는 회향에 임박했으니 과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아무런 대책도 마련되지 않는 서른일곱의 향후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궁구해도 좋으련만그 막막함에 목이 막히고 눈이 흐릴 법도 하건만...... 글래머러스한 독일 아가씨의 허벅지는 머리를 베고 눕기에 안락했다이따금씩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는 그 손길이 성령인 듯 충만했다간간이 H가 떠올라 눈에 밟히곤 했지만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복무했다만취하여 복귀한 야밤끝내 사람이 어쩌고저쩌고 중얼중얼하는 한소리를 들었다말투에 싹수가 없었다근 20년 만에 여자에게 듣는 반말지거리였다.



임마담이라 불리는 Flapping Duck 2의 사장호르몬 주사를 끊었는지 여성성이 적잖이 결여된 트랜스젠더 언니는 그 거리골목의 퇴락에 근사하게 부합했다일면 원색적이고 한편 낭만적이었다거기 평상 같은 좌석에 누워 책을 읽는 척 그야말로 몰아치는 우기의 방콕을 감상하며 맥주를 마시던 아침,



바깥 조도가 낮아 실내 전등이 불 밝힌 가운데 빠이 산골짜기에서 공중천을 기막히게 타던 실비아간밤의 음주에서 다시 만난 그 프랑스 아가씨는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울 그림을 그렸고 다른 두엇은 잡담을또 다른 두엇은 포켓볼을 진행시켰다시기를 웅변하는 빵빵한 빗소리 사방에 깔려 선풍기 소음을 삼켰으나 그 바람은 까 젖힌 웃통에 맞닿으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지난밤을 통과해 새아침으로 이어지는 술기운에 이 낙락한 풍경을 잊지 못하리라 생각하는 사이사이 탁탁경쾌하게 부딪치는 포켓볼 소리가 평온을 배가시키는 동시에 도전의식을 권장했다.



한 게임 해봐그러나 딱히 유혹적인 상대가 없어 바짝 붙어있는 Where is Chai로 뛰어 선착순 1명을 공개 모집했다아니나 다를까 대저 자빠져 누워 만고에 일 없다는 듯 시큰둥한 와중,


그래한 게임 하지 뭐.


딱히 내켜서 하는 건 아니라는 뉘앙스를 공개적으로 품은 하나의 목소리가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타이밍을 명확히 낚았다느릿하게 몸을 일으키는 모습에 씨익미소가 돋아 올랐다.



H와 함께 재차 폭우를 뚫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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