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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Apr 17. 2021

한국 기획자가 베를린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취직하기

한국에서만 일한9년 차PM의 베를린 이직 도전과 성공기

한국에서만 일한 9년 차 PM의 베를린 이직 도전과 성공기 가장 첫 번째 글.

솔직히 1년 정도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오퍼를 받았고, 그것도 하나가 아닌 3회사에서 Senior Product Manager position으로 오퍼를 받았다(!)


이번 글은 실질적인 지원-면접-합격 과정보다는 그 '이전'에 어떠한 사전 준비를 했는지 먼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PM커리어고민,해외 취업,이직,정보 공유 및 네트워킹 Inspired_PM 채널 조인은 여기서...



그런데 왜 베를린으로?

베를린에 로망이 있다거나 한 건 아니었다. 6-7년 차쯤 PM으로서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어떻게 다음 커리어를 이어가고 싶은가, 등의 답 없는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었고 무엇보다, 좀 '크게' 놀고 싶었다. 당시에 있었던 스타트업에서 너무 배울 점도 많았고 아직 PM으로서 한참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그리도 그 스케일이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그래도 힘들게 겨우 1년 반이지만 영국에서 석사도 하고 왔는데, 취직해보지도 못하고 돌아온 것에 대한 미련. 그리고 한국에서만 PM 커리어를 이어가기 뭔가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6-7년 차쯤에, 스타트업에 있을 때 해외 여러 기업들을 우후죽순 지원해 보았는데, 면접의 기회를 1번 얻을 수 있었던 게 독일 베를린의 딜리버리 히어로였다. 그러나 처참히 1차에서 광탈해버렸다...


그게 그래도 희망의 씨앗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아래와 같은 기준들로 내가 일할 수 있는 도시를 찾아보았다.


1) Job 비자를 외국인에게 쉽게 내주는 나라

2) 너무 이방인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다국적 문화를 가진 도시

3) 영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나라 (시간이 상대적으로 덜 걸리는 나라)

4) 기회가 많고, IT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도시

5) 도움받을 지인이 있는 도시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드니, 도쿄, 싱가포르, 베를린, 런던... 몇 개의 도시들로 좁혀졌는데, 5개의 조건을 모두 높은 점수로 만족하는 나라는 베를린이었다.



사전 준비의 시작 - 외국계 이직

준비의 시작은 지금 다니는 외국계로의 이직으로부터다. 그러니까 2년 전부터 준비한 셈이다. Product Manager로서 나는 제대로 사수를 가진 적이 없었다. 해외 PM들처럼 일하는 지인도 없었다. 한국형 서비스 기획자들만 주변에 넘쳐났다.

예를 들면 '기획서' '장표'를 실제 업계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조차 몰랐고 그걸 어떻게 찾아야 할지 깜깜했었다.


또한 글로벌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나는 글로벌로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조차 일한 경험이 없었다. 글로벌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야 했다. 바로 해외 취업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한국에 있는 외국계 입사다.


문제는, 본사가 아닌 '지사'에서 product manager를 뽑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한자리가 나온다고 해도, 이미 해외에서 일하다 들어온 PM이 자리를 차지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조금 우회했다. '제휴 연동 매니저' 포지션을 H사에서 뽑는 것을 보았고, 제휴 연동 매니저이지만 H사가 한국에서 큰 편이므로 제품 기획에도 많은 제안과 인사이트를 주길 원하는 포지션이었다. 그렇게 일단은 한국에서 호주와 미국이 본사인 외국계 회사에 입사했다.


사전 준비의 시작 - Product Manager 타이틀 쟁취

나는 H사의 '제휴 연동 매니저' - api 등 연동을 서포트하는 project manager로 입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H사'가 'K사'에 인수 되었단다. 나는 'K사'는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듣보잡' 회사였는데.

그런데 사실 이건 굉장한 행운이었다. 찾아보니 미국이랑 유럽에서 엄청 큰 항공 서치 플랫폼이다. 호텔 vertical 쪽을 강화하기 위해 인수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나는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유럽과 미국 쪽에서 유명한 프로덕트고, 그 회사에 있다는 건 이직할 때 나에게 유리하니까.


첫 몇 달은 적응하느라 시간이 갔고, 'H사'의 PM이 호주에 있어서 그와 자주 이야기하면서 connection을 만들었다. 그에겐 'H사'를 'K사'로 마이그레이션 해야하는  큰 과제가 있었고, 'H사'가 한국에서 많은 수익을 내는 만큼, 나는 한국 오피스의 의견과 우선순위를 전달 및 제안하며 마이그레이션 프로젝트에 점점 더 관여해 나갔다. 그는 참 나이스하고 열린 사람이라 우리는 좋은 협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가 덮쳤다


하루아침에 그가 메신저에서 사라졌다. Lay off -구조조정에 정리해고돼버린 것. 나는 APAC (asia-percific) 지역에 남은 유일하게 프로덕트 매니징을 경험해본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H사' 마이그레이션 project를 떠안게 되었다.


하루 12시간씩 일했고 미국 본사의 생판 모르는 개발자 등과 이야기하느라 매일 밤 콜, 챗으로 제대로 잠도 못 잤다. 그렇게 8개월 이상 마이그레이션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 지사장님에게 요청했다. '제휴 연동 매니저' 타이틀을 달고 본사 개발팀이나 여러 팀들이랑 프로덕트 관련 일하기 힘드니, 'APAC product manager' 혹은 'KR product manager'타이틀을 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K사'의 KR product manager라는 타이틀을 공식적으로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게 해외로 이직할 때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앞으로 이야기할 것들

이제 앞으로 쓸 글들에서는 내가 어떻게 실제로 베를린에 이직 활동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하나씩 풀어보려고 한다.

채용 정보를 찾고, 준비하고,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과제를 하고, 발표를 하고, 오퍼를 받고, 또 그 오퍼를 카운터 오퍼 하고... 계약서를 쓰기까지의 과정, 그 안에서 배운 것, 필요한 정보 공유 등을 하겠다. 그래서 나는 디자이너, 개발자들 처럼 유럽으로 좋은 조건의 오퍼를 받고 넘어오는 한국의 PM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참고로 아래는 2021년 1월 25일부터 2021년 4월 5일까지 (첫 오퍼 받은 날) 지원한 회사, 진행했던 단계, 그리고 합격 현황이다. 총 1월부터 4개월이 걸렸다.

총 50개 회사 지원을 하였고 결과는 아래와 같다.

1차 면접 11개(22%),

2차 실무 면접 8개(16%),

3차 과제 4개(8%),

4차 과제 피티 면접 4개(8%),

5차 최종 면접 3개(6%),

최종 합격 3개(6%)


시트 보기

다음 글에서는 Job search에 대해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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