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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윤 Mar 07. 2022

독일 글로벌 회사 PM의 육 개월 수습기간 회고

독일에서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느낀 점을 아주 간간히 공유합니다. 

독일은 대부분의 회사의 수습기간이 육 개월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육 개월이 지나면 해고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해고하기 힘든 만큼 수습기간을 길게 잡는 것 같다. 그렇다고 수습 기간 중에 해고가 미국처럼 쉬운 것도 아니라고 들었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수습 기간 중 해고를 할 수 있다. 


직원 입장에서도 수습 기간이 긴 것이 좋을 수도 있다. 6개월은 다녀봐야 회사가 맞는지 안 맞는지 알 수가 있고 (3개월 안에 어떤 문제의 근원이나 고질적인 문제인지를 파악하긴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무엇보다, 6개월의 수습기간 내에 퇴사할 경우 의무 '3개월 전 퇴사 통보'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정규직이 되면 퇴사 시 3개월 전 통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퇴사 통보 후 다니는 기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다. 


지금은 2022년 3월이니 벌써 2021년 7월 입사로부터 9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정신없고 바빠서 글을 쓸 틈이 없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해본다. (그렇지만 일상 유튜브는 열심히 올렸다....) 

여하튼, 수습기간은 무사히 끝났고 지금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약 8개월간 처음으로 독일 베를린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며 경험했던 부분, 느꼈던 것들을 업데이트해보려 한다.


회사 본사 빌딩에서 혼자 점심...(재택이 기본이며 원하면 책상을 예약하고 나올 수 있는 도서관 같은 존재가 되었다)

부족했던 온보딩 경험

온보딩은 안타깝게도 알아야 하는 정보에 비해 굉장히 부족했다. 당시에는 지금의 매니저(사수)를 아직 채용 중이었고, Head of Product에게 리포팅을 했는데. 그분은 너무나 바빴고 시간이 거의 없었다. 기본적으로 하는 온보딩 프레젠테이션 세션이 4번 정도 있었는데, 겨우 한 시간짜리 세션 4번으로는 물류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대강 겉만 훑는 온보딩이 끝나고 내가 알아서 나머지를 배워나가야 했다. 어떤 프로덕트나 프로젝트를 서포트하면서 다른 연관 팀 사람들도 만나고 하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다른 피엠들 프로덕트를 서포트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현재 진행 중인 것들의 경우 복잡도가 너무 높고 지금 상당히 진전이 된 상태라 내가 서포트 하기 애매한 상황이라고 매니저가 말했다. 결국 3개월 정도 나는 어영부영 뭔 말인지 모르겠는 문서들만 주야장천 읽다가 졸다가, 나중엔 예라 모르겠다. 하고 놀아버렸(...)다. 

(그리고 중간에 코로나도 걸리고 이사도 3번이나 다니고... 독일에 정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더 바빴다.)


그러다가 3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첫 토픽(문제)을 맡게 되었다. 

참고로, 회사에서는 어느 정도 이 분야에 대해, 이 조직에 대해 잘 알게 되면 어떤 토픽(문제)들이 있는지를 알게 되고, 그걸 통해 내가 스스로 '난 이문제를 한번 맡아서 솔루션을 만들어 보겠다'라고 스스로 토픽을 정하는 것을 장려하고 있는데, 일단 처음이니까 주어진 토픽을 맡아서 해보기로 했다. 


*참고로 온보딩이 너무 잘 안된다는 이슈 레이징을 신규 입사한 사람마다 해서, 현재 그룹 차원에서 온보딩 개선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이래서 PM들이 MBA를 하나? 처음 경험해보는 4D 개발 프레임워크 그리고 비즈니스 임팩트 계산

잘란도는 4D 프로덕 개발 프레임워크를 따르고 있다. 

Discover, Define, Design, Deliver라는 네 개의 D를 우리는 4D라고 부르고 있다. (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따로 한번 다루도록 하겠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의 개발 방식도 경험해보고, 덕분에 거의 4-5개월이란 시간을 Discovery 문제 발견 / Define 문제 정의에만 매진해 볼 수 있었다.

The 4D Framework


한국에서는 어떤 문제를 풀 것인지에 대한 발견 과정, 그리고 그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것에 4-5개월의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어쩌면 그렇게 까지 시간이 필요해?라고 질문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과정을 제대로 하려면 이 시간도 상당히 타이트하다.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고객 리서치, 유저 리서치/인터뷰, 마켓&경쟁사(주로 아마존) 리서치, 데이터 분석, 타 연관 부서/이해관계자와의 워크숍이나 인터뷰, 비즈니스 스터디, 묵혀뒀던 Idea 다시 리뷰 등등... 결국 '왜' 내가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스스로 충분히 납득을 넘어 그 문제 이후의 상황까지 고려한 '이상적인 비전'을 세우는 단계가 바로 '문제 발견' 과정이다.


또한 '문제 정의' 과정은 어떤 솔루션을 풀어야 정확히 어떤 임팩트를 얼마니 낼지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고, 정의하고, 계산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 + 그것을 여러 이해 관계자들에게 모두 납득시키는 과정이 이 안에 포함되어 있다. 결국 high level의 비즈니스 관리자들은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숫자'를 원하는데 이 문제를 풀어서 얼마니 비즈니스에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한 '숫자'를 도출해 내는 것이 나한텐 생소한 작업이었고 힘들었다. 그래서 왜 PM들이 자꾸 MBA를 하는지 알겠다는 생각도 이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은, 이렇게 긴 시간을 투자해서 Discovery를 다 했는데 '이 문제는 지금 풀지 않는 것이 좋겠다'라는 결정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얼마나 큰 개발 리소스와 디자인 리소스를 들여서 이 문제의 어디까지 풀어야 맞는지에 대한 범위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아예 우선순위를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 토픽으로 옮겨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빌드 트랩'에 빠져 제품 개발만 미친 듯이 하기에 바빴던 나로서는 4-5개월을 투자해놓고 '이건 개발하지 맙시다'라는 것을 허용하는 이 독일 글로벌 회사의 문화가 아직도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진다. 


또, 역시, 아직도? 영어는 문제 

영어가 안 편하지도 편하지도 않은 애매한 실력. 

이 실력으로 한국에서 외국계 회사에 1년 반 다니며 하루에 길면 1시간 정도 영어 회의에 '참석'하는 것과 영어가 100프로인 외국 본사에서 영어로 회의를 '주최'하며 이끄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나 달랐다. 

내가 생각한 만큼 말이 안 나오고, 조리 있게 설득력 있게 말하지 못하고, 어떤 부분에선 확 말이 막히기도 하고, 답답했다. 


이런 부분은 점차 나아질 수 있겠지만, 영어의 관용적 표현을 잘못 이해해서 오해가 생긴다던가 (말 그대로 현지에서 쓰는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약간 다르게 해석) 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이 피드백은, 아주 솔직하게 나에게 피드백을 정성 들여해 주는 새로 온 매니저가 해주었다. 이런 부분은 아직도 어떻게 발전을 시켜야 할지 애매하다. 그냥 정말 최대한 영어를 쓰는 문화에, 그리고 콘텐츠에 많이 노출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또한, 약간 민감한 사안에 대해 비즈니스 영어의 세련된 표현이 떨어진다던가, 하는 부분 때문에 오히려 회의를 하면 할수록, 사람들과 더 많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도 조금씩 떨어져 갔다.


그랬더니 또 바로 매니저가 나에게 피드백을 주었다. 말할 때 자신감이 떨어지면 듣는 사람도 불안하니 절대 자신감 떨어지면 안 된다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면서 주며 내가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여러모로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높은 포지션의 사람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미리 한번 내용 검수를 해주고, 회의 시 질문이 들어왔을 때 내가 충분히 답변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더 내용을 보충해서 말해주는 등...


경력이 있는 나로서는 이런 도움받는 것이 약간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어차피 영원히 이러진 않을 거고, 아직 1년도 외국에서 일 안 해봤는데 뭐 어때.'라는 생각으로 자꾸 자신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잡았다. 


영어는 앞으로도 계속 나를 괴롭히겠지만, 공부하고, 더 노력하고, 짬이 쌓이고, 문화에 스며들다 보면 조금씩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있다. 


그래서 회사가 좋다는 거야 안 좋다는 거야?

아직까진 좋다고 말하고 싶다. 

유일한 down side는 PM만 400명이 넘는 회사로, 조직이 너무 크고, 무엇 하나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타 팀에 걸쳐 있어 그 팀과 논의하고 로드맵에 그 프로덕 개발 계획을 넣게끔 하는 과정이 너무 길어 내 성격에 비해 프로덕 개발 속도가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업무량이 많은데도 개발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 가장 싫은 점이다.


그렇지만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아있기에 나는 아직은 나에게 가치 있는 회사라고 말하고 싶다. 


첫 번째로  '공평함'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 문화가 나에겐 상당히 큰 점수를 차지한다. 

한국에서 아무리 평등하다고 하지만 젊은 꼰대가 넘쳐나는, 분위기 봐서 발언해야 하는 기업 문화는 조그마한 문제도 이슈 레이징을 해서 해결점을 찾으려는 나에게 맞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그런 보수적인 문화가 심하지 않은 곳에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여기 독일 회사와 비교할 바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사람들과 업무 문화는 존중이 넘치고 공평함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리더들이 철저히 아래 팀원들로부터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작은 이슈도 항상 들으려고 하고 '어떤 부분'은 자신이 해결 가능하고 '어떤 부분'은 한계가 있는지도 공유해준다. 


두 번째로 새로 온 내 매니저는 배울 것이 많은 상당히 유능한 프로덕트 매니저다. 나로선 처음으로 PM의 커리어 성장을 신경 써주면서 나를 가이드해주는 그룹 프로덕트 매니저는 처음이므로, 리더십/피엠 스킬/지식과 경험 적으로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

또한, 이 사람만이 아니더라도 자국에서 꽤 유명하다는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입사를 하거나, 탑티어 회사의 사람들이 입사를 하므로 그만큼 주변 동료들에게 배울 점도 상당히 많다. 더 빨리 더 많이 성장하고 싶은 자극을 주는 동료들이다.



다음 회고는 아마도 내가 맡은 첫 토픽을 Deliver 즉, 릴리즈를 시키고 나서 하게 될 것 같다. 항상 변수와 사고는 넘쳐나지만, 잘 대처해서 무사히 첫 프로덕트가 잘 릴리즈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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