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2004년 4월, 어학연수를 위해 런던으로 떠나 던 날>
고작 1년, 유학도 아니고 그저 어학연수지만 1년간 새로운 도시에서의 삶을 선택한 것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런던, 그곳에는 내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유럽이라는 나라는 가 본 적이 없던 나였다. grammar in use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영어 공부를 했었지만, 외국인만 보면 얼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1년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는 건 당시 내 인생에 있어서 큰 결심이고, 변화였다. 가끔 미국도 아니고 호주도 아니고 왜 영국을 택했냐고 사람들이 물어보곤 한다. 나도 사실 왜 그때 내가 왜 영국을 택했는지는 정확히 기억 나진 않는다. 아마 유학원 직원이 영국으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했고, 나도 모르게 뭔가에 홀리듯 그렇게 런던으로의 어학연수를 선택했던 듯하다.
그 변화라는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아니다. 고작 1년 가지고 무슨 변화가 있겠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고, 내가 바라보는 세계에 대한 변화는 어학연수 전과 후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나를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외국인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는 건, 한국인만이 아닌 다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게 해주었다. 즉, 내가 보는 세상만의 다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여행을 좋아하게 된 이유도 아마 다른 세상을 보고 경험하는 것에 대한 매력을 어학연수를 통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면, 결국 내가 속한 세상에서 규정된 그 무언가가 당연한 룰처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정해진 규칙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저 지구 반대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꼭 떠나야 하고 반드시 외국의 그 무언가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 떠나지 않아도 행복하면 됐고 경험하지 않아도 만족하면 그만이기에.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1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벌써 어느 옛날 옛적이라 할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때이지만 여전히 엊그제 추억처럼 생생하고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될 값진 경험으로 기억된다.
<2016년 6월, 지금은 출장차 다시 영국에 와 있다>
출장 오기 전 영국 담당자들과 참 많이도 다퉜다. 나름 오픈 마인드라고 자부했던 나였지만, 그들의 일하는 방식과 사고를 이해하기는 어려 웠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팀만 억울하고 보상도 못 받고 일하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왜 이런 걸 요구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정해진 기간 내에 그저 프로젝트가 끝나길 바랄 뿐이었다. 현지에 와서 그들과 부딪혀 일하다 보니 몇 가지 의문점이 풀렸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서 영국 내에 연관된 담당자들은 굉장히 많았다. 한국에서는 man/month라는 기준 하에 고객사와 수행 사간 계약을 맺는다. 한 달에 한 명이 20일 간 투입되면 1mm으로, 한달 함께 일하기로 계약을 한것이기에 한 달간 몇 시간 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영국에서는 man/hour를 기준으로 계약을 맺는 다고 한다. 단 한 번도 1mh를 기준으로 계약을 맺는다는 것에 대해서 고려해 본 적이 없다. 고객사의 에이전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대학교 때 프로젝트 관리론을 배울 때 mm계약은 rubbish (그의 표현을 빌려)라고 배웠다고 한다. 정말 계약에 정해진 시간만큼 일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방법인 것다. 할당된 시간만큼만 체결된 업무를 수행하면 그만인 것이기에..
우리에게는 그 timeline을 지키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몇시간을 일했던, 밤을 새서 라도 약속한 기간 내에 끝내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timeline 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한국 팀에서 a 업무를 끝내야 영국팀에서 b 라는 업무를 할 수 있는 흐름이다. 즉, 우리가 날짜를 정해서 주면 그 b라는 업무를 수행할 제 3 업체에게 알려주고 인력 할당 요청 후 b 업무를 끝낼 수 있는 기간을 전달받는단다. 우리가 하루라도 지연을 시키면 또 그 제3업체들에게 하루에 시간을 더 줘야 하거나 혹은 인력이 그 기간 내에 활용 가능 한지 찾아봐야 한다고 한다. 하루가 늦어지면 하루가 밀릴 수도 이지만 일주일이 밀리수도 있단다.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그 생각의 기준을 바꾸지 못한다면 결론을 찾지 못하게 된다. 나도 여기 와서 보기 전까지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함부로 100% 답을 그 자리에서 내서는 안됨을 알았다. 모든 게 나만의 상황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상황이란 게 있기 때문에 확인을 거쳐야 하고 내 생각이 전부 맞을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뭐든 상대방에 대한 이해 하려는 태도와 노력이 필요하다.
출장 오기 전 영국 담당자와 많은 싸움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에 나는 내 방식대로만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만 업무를 했었기 때문이다. 현지에 와 있는 지금 담당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영국 상황과 업무 시스템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서, 나 또한 한국 프로젝트 상황과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우리는 여전히 논쟁[argument]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곳의 상황을 알기에 내 고집만 피우지 않게 되었다. 한국팀에게도 가끔은 영국의 입장이 되어 현지 상황을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들도 그들 고집만 피우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퇴근 전 이슈리스크[ issue & risk]라는 보고서를 함께 작성한다. 어느 한쪽의 상황에만 치우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다투지만 좋은 친구가 되었다.
떠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때론 떠나 보고 경험해 보고 느껴 봄으로써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