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그 길을 걷고 또 걷다.
2016년 10월, 가을
대부분 직장인이 그렇듯 휴가는 언제나 급작스럽게 찾아온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3-4개월 전에만이라도 미리 언제 휴가를 갈 수 있을지 알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2주 전 갑자기 휴가를 받게 되었다. 아무 하릴없이 휴가를 흘려 보내기가 아쉬워 급하게 도쿄 가는 비행기표를 끊게 되었다. 그렇게 이번 여행도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이 생소한 도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여행 가기 전 그래도 나름 이번 여행을 어찌 보낼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다.
여행 가기 전 가졌던 마음은,
- 정신 없이 돌아가는 일상에 작은 쉼표가 되어보자.
- 벌써 10월, 올 한 해를 돌아보고 되새겨보는 여행이 되어 보자.
- 욕심부릴 것 없이 도쿄 어느 카페에 앉아 그렇게 온전하게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 보자.
- 힘들게 하루 종일 쫓기듯 이곳 저곳 걸을 필요 없이 힐링여행을 만들어 보자.
였다.
사람 인생이 생각한 대로만 흘러가면 좋으련만 이 작은 계획조차도 뜻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인가 보다. 막상 도쿄에 도착해 짐을 풀고 거리로 나서니 오롯이 나만을 생각해야지 하는 생각 따위는 우습게도 들지 않았다.
선선한 가을 날씨와 쓰레기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정갈하고 단정한(도쿄의 길은 뭔가 단정 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듯하다) 거리 때문에 쉬지 않고 발이 끊어져라 걷고 또 걸었다. 저 길 위에는 뭐가 있을까, 저 가게는 대체 뭘까, 하는 호기심 때문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도쿄 그 거리들은 닮은 듯 다른 모습을 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숙소 역시 Air BnB를 통해서 예약했다. 숙소가 위치한 곳은 시모키타자와 역에 걸어서 5분 정도 위치한 곳이었다. 도쿄를 가보지 않았어도 한 번쯤 들어 본직 한 신주쿠며, 시부야며 하는 곳들이 지하철로 약 15분 내외면 갈 수 있다는 설명에 ‘위치가 나쁘지 않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만약 숙소로 이 곳을 오지 않았다면 아마 와보지 않을 곳이었고, 또 만약 와보지 않았다면 참 아쉬웠을 곳이다. 그만큼 아기자기한 이 동네는 참 귀엽고, 예뻤다. 이곳에는 작은 소극장들이 많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배우를 꿈꾸는 젊은 일본 친구들이 몰려드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한 가게보다는 오밀조밀한 귀여운 가게들이 참 많았다. 골목골목 사이로 작은 가게들이 마치 미로처럼 펼쳐져 있다. 커피숍들이며 레스토랑들이며 틈새마다 그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옷 가게들은 대부분 빈티지샵 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동네 대부분의 친구들은 빈티지 패션으로 자신만의 멋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그들과 그 거리는 마치 하나의 작품 마냥 어우러진 채 이곳의 정체성[Identity]를 만들어 주는 느낌이었다.
걷다 보면 보이는 것들,
어떤 거리의 모이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을 형성하는 분위기
이는 마치 하나의 작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사람들과 그곳에 들어와 있는 많은 가게들은 마치 연출이라도 한 듯 모여 모두가 서로가 서로에게 어우러지는 느낌을 주었다. 이 골목이 끝인가 하면 다시 다른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러다 보며 아까 왔던 골목이 다시 보이는, 끝날 것 같지 않은 골목들이 계속 이어진 이곳을 걷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숨겨진 보물을 찾은 마냥 이방 도시, 그리고 그 길거리를 걷고 있다.
나는 서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책벌레는 아니다. 우습지만 책이 정말 좋아서 서점을 간다기보다는 그냥 서점에서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좋아 서점을 자주 간다. 여행을 할 때마다 각 나라의 서점을 방문하는 것은 늘 나의 여정에 포함시킨다. 서점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책을 사기 전 각자의 방식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 그리고 서점에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 상품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의 삶에 잠시나마 흡수되어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요즘 이 곳의 사람들은 이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 ‘이들은 책을 이렇게 진열해 놓는구나’, 등을 생각하며 서점을 산책하듯 구경하다 보면 어떤 곳의 아주 작은 단편의 삶을 엿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다이칸야마를 가게 된 것은 바로 츠타야 서점을 가기 위해서였다. 다이칸야마는 시모키타자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도쿄 자체가 주는 특유의 단정함 역시나 느껴졌지만, 좀 더 세련된 단정함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한 가게가 눈에 띈다. 커피숍 같아 보이는 이 곳에서 사람들이 요가를 하고 있다. 서점으로 가는 길목은 마치 어느 멀티숍에 온 느낌이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명품들 보다는 왠지 나만 알고 있는 중고가의 하이브랜드들이, 누군가가 잘 셀렉[select] 하여 자리 잡힌 느낌이었다.
구글맵이 도착지점을 가리킨다. 츠타야 서점을 찬찬히 둘러본다. 다양한 종류의 책들이 구색 별로 잘 구비되어 있고, 각 그룹에 맞는 곳곳의 구즈[Goods] 들도 눈에 띈다. 서점을 방문한 고객들이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구석구석의 공간들은 이 서점을 지은 사람이 얼마나 고객의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하고 고심을 했을까가 느껴진다. 혼자 와서 심각하게 책에 빠져 있는 사람들, 친구들과 함께 서점을 거니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나도 자리를 잡아 책을 읽어 보기도 하고 1층과 2층 구석구석을 둘러보기도 했다.
다이칸야마를 갈 때도 오모테산도에서부터 걸어갔었다. 구글맵에 찾아보니 30분이 걸린다기에 그 정도면 뭐 많이 걷는 것도 아니겠거니 하고 걸어서 가게 되었다. 결국 30분이 아닌 1시간 반이 걸려 그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이 보인다.
커피숍 같은 헤어숍이 눈에 띄었다.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있는 헤어드레서가 보인다. 커피숍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떠는 누군가도 보인다. 무슨 이야기를 저리도 즐겁게 하고 있는 걸까. 지나가다 너무 예쁜 주얼리샵이 보여 들어가 보았다. 딱히 무언가를 산 것은 아니지만 주얼리 샵에 진열되어 있는 주얼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그 샵 주인의 취향이 한눈에 보인다.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앞을 보니 한껏 꾸민 세 명의 청년(?)이 보인다. 무엇이 그리도 재미가 있는 건지, 어디를 저리도 바쁘게 가는 건지 궁금해진다. 한참을 걷다 보니 시부야역이 나온다. 지상으로 지나가는 기차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 일까. 주택들이 모여 있는 한적한 동네도 보인다. 가지런히 모여 있는 조용한 주택가를 보니 나도 모르게 엄마가 그리워지는 건 왜일까.
그렇게 나는 한참을 걸었다.
걷다 보니 소소한 일상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소박한 듯, 잘 정리된, 그러나 전혀 촌스럽지 않은, 매우 세련된 도쿄 거리가 주는 안정감 때문 인지 도쿄에서 나는 더 걷고 또 걸었다.
일상을 살다 보면 주변에 소소한 일상을 바라보지 못하게 된다. 9시까지 출근하기 위해서 바삐 걸음을 재촉한다. 꽉 찬 지하철 내에서 불편한 부대낌을 느끼며 회사로 출근한다. 회사에서 전쟁 같은 업무가 끝나고 나면 그저 집으로 얼른 돌아가 쉬고 싶을 뿐이다.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오늘 하루도 잘 이겨내었다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일상의 소소함을 보고 느끼기 것은 아마 사치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그렇게 주변을 돌보는 여유 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도쿄,,, 그리고 여행,
한 번쯤 느리게 걷고 싶을 때,
일상의 소소함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