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에서의 새로운 추억, 그로 인해 다시 나는 부자가 되었다
멍하게 되는 어떠한 순간과 무언가가 있다. 말로 딱 부러지게 설명 하기는 힘들지만, 어떠한 여운 때문인지 그냥 멍하게 되는 찰나가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음악을 듣고 난 후일 수도 있고,
어떤 그림과 마주하는 순간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가에게 쓴소리를 듣고 난 후가 될 수도 있고,
첫눈에 반하는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일수도 있으며,
그리고 어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일 수도 있다.
최근 나를 멍하게 만드는 몇 가지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영화 "라라랜드 [La La Land]"를 본 이후였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그저 로맨스 영화이겠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그저 사랑만 이야기하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 안에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그리고 꿈에 대한 스토리가 있었다. 여러 베스트 장면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씬[Scene]이자, 영화 속에서 나에게 가장 큰 울림을 준 노래는 여자 주인공인 미아가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보는 장면이다. 그녀는 배우가 꿈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수많은 오디션을 보지만 계속해서 낙방하게 된다. 남자 주인공인 세바스찬을 만나면서 그녀는 직접 자기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극장을 빌려 사람들을 초대하여 혼자 연기하는 1인극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쓰디쓴 비판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고 모든 걸 포기했을 때 누군가는 저게 무슨 연기 냐며 비아냥거렸지만, 한편 그녀의 도전을 아름답게 지켜본 누군가도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얻게 된,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오디션에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바로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My aunt used to live in Paris.
저희 이모가 파리에 산 적이 있어요
I remember, 기억하기론
she used to come home and tell us stories about being abroad and ,
이모가 집에 오면 저희에게 외국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곤 했죠.
I remember that she told us she jumped in the river once,
한번은, 강에 뛰어든 얘기도 해줬어요.
Barefoot 맨발로 말이죠.
She smiled...
그녀는 미소를 짓고는
Leapt, without looking
주저하지도 않고 뛰어올라
And tumbled into the Seine
세느 강으로 빠져들었대요
The water was freezing
물은 얼 듯이 차가웠고
She spent a month sneezing
그녀는 한 달 동안이나 재채기를 해댔지만
But said she would do it again
돌아간대도 다시 할 거랬어요
Here's to the ones who dream
꿈꾸는 자들을 위하여
Foolish as they may seem
비록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Here's to the hearts that ache
상처받는 마음들을 위하여
Here's to the mess we make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를 위하여
She captured a feeling
그녀는 자신의 감정과
Sky with no ceiling
무한한 하늘과
The sunset inside her frame
노을빛을 액자 속에 가둬 넣었죠
She lived in her liquor
그녀는 비록 술에 취해
And died with a flicker
혼미하게 죽어갔지만
I'll always remember the flame
그 열정을 저는 항상 기억해요
She told me: 이모는 제게 말했어요
"A bit of madness is key", To give us new colors to see
약간의 광기는 우리가 새로운 빛깔로 세상을 볼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단다
Who knows where it will lead us?
우리를 어디로 이끌어 갈지 누가 알겠니?
And that's why they need us.
그래서 그들에겐 우리가 필요한 거란다.
So bring on the rebels
그러니 반란을 일으키렴
The ripples from pebbles
작은 조약돌이 만드는 큰 물결처럼
The painters, and poets, and plays
화가들과 시인들과 광대들로 하여금 말이지
I trace it all back to then
전 그 모든 걸 떠올려요
Her, and the snow, and the Seine
이모, 눈 그리고 세느 강.
Smiling through it
미소 지으며 견디던,
She said she'd do it, again
되돌아가도 다시 하겠다던, 그녀를요
- 영화 라라랜드, ost "Audition" 가사
파리 여행을 하자고 결심 하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 결제 하는 그 순간에, 나에게도 "A bit of madness" 가 필요했다. 고작 1주일짜리 여행이지만, 참 그게 무슨 별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버는 것 없이 쓰기만 하는 백수인 지금 이 상황에서 여행을 간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저 일주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던 여행, 소득 없이 소비만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행을 시작 했다. 그러나 무모한 미아의 도전이 뜻밖에 결과를 가져다 준 것처럼, 무모하게 시작 한 나의 여행에서도 뜻밖의 추억을 갖게 되었다.
오디션 장에서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가짜 연기를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진짜 자신의 연기를 하는 미아가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겠다. 그녀의 고모가 세느강에 맨발로 뛰어 들어 한달 간 감기로 고생했지만 그 일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어쩜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서나 혹은 어떠한 결과를 바라고 하는 행동보다는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앞뒤 따지지 않고 해 보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의 가사처럼, "A bit of madness is key" 가 아닐까.
<2017년, 3월 끝자락>
파리 여행을 하는 친구와는 그저 여행 일시와 가려고 하는 장소가 같아서 결성된 조합이었다. 갑자기 떠나는 여행에 동행을 구하기 어려웠던 찰나에 친하지 않아도 함께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숙소는 각자 알아서 해결하기로 했다. . 각자의 취향대로 말이다.
하루는 함께 여행을 마치고 저녁 8시쯤 숙소로 돌아 온 날이었다. 저녁을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걸었던 탓인지 호텔에 도착하니 배가 고팠다. 숙소 근처식당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혼자 분위기 좀 잡아 볼까 하는 마음에 다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어느 한 레스토랑 노천에 자리를 잡았다. 내 옆에는 잭니콜슨을 닮은 듯한 중년의 신사가 혼자 와서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밤이 되니 날씨가 조금 추워졌다. 파리에 왔다고 노천 자리를 고집했는데, 추워지니 안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던 찰나에 테이블 위에 있던 히터가 켜졌다.
다행이다 하고 안심하는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옆에 있던 그 신사분이 갑자기 쌀쌀해져 본인이 가게 주인에게 히터를 틀어 달라고 했다면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그렇게 시작 된 인연, 또다시 낯선 곳에서 낯선 누군가와, 평생 살면서 마주칠 수나 있을까 하는 그 누군가와의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다.
스웨덴 사람이지만 파리에 산지는 20년이 되었다는 그는 프랑스 여자와 결혼하면서 파리와 인연이 시작 되었다고 한다. 여행을 왔다는 나에게, 자신도 젊었을 때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해서 스위스에서 요리 학원을 다녔었고, 호주에서도 일을 했으면, 한동안은 일을 그만두고 6개월간 세계여행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일이 끝나면 가끔 집 근처에 나와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단다. 파리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에펠탑을 보면 마음이 두근거린다고, 파리에 오면 꼭 가봐야 할 레스토랑들을 추천해 주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사실 음식을 거의 다 먹었던 터라 호텔로 돌아가던 차였는데 내리는 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가 그칠 때까지 식당에서 기다려야 했다. 대화는 이어졌다. 그가 사는 파리에서의 삶, 그가 젊었을 때 했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비는 그쳤고, 이메일 주소를 주고 받으며 시간이 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이야기와 함께 헤어졌다.
다음날, 친구가 배탈이 났다는 카톡이 왔다. 오전과 오후에는 돌아다니기가 힘들 거 같다며 저녁 늦게나 만나자고 한다.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나, 무얼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어제 만났던 잭니콜슨을 닮은 그분 이 생각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연락해서 같이 점심을 먹자는 용기가 어디서 났는지, 여행 중이기 때문에 괜찮단 생각이 들었는지 먼저 이메일을 써서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시간이 된다면 점심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토요일인 터라 시간이 남으니 같이 점심을 먹자고.. 그가 알려준 식당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여행자가 아닌 것처럼, 마치 내가 이곳에 살고 있는 것처럼, 점심시간을 보냈다.
점심을 먹고 마르모탕 미술관 [Musée Marmottan] 을 갈 참이었다. 그 역시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미술관도 동행을 하였다. 모네와 피사로 그리고 모리조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 마르모탕 미술관. 오길 참 잘했다 생각하며 미술관을 둘러보았다. 그림에 대한 감상평, 그리고 그 당시 화가들에 대한 뒷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여행에서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혼자만의 어떠한 인생의 토막을 다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전혀 기대치 못한 누군가와 인연을 만들고 친구가 된다는 것은 어쩜 이상해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사는 세상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다 보면
알 수 없는 설렘에 마음이 사로 잡히게 된다.
마치 어느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거처럼, 마치 시공간을 뛰어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여행에 돌아온 후 며칠이 지났다. 다시 일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메일이 한통 왔다.
발신자: Phillp
제목: Week end
내용
Hi,
...
(중략)
You remember when we went to the museum.
The paintings showed another time in history, a world so much smaller.
Where people, lived with their expressions and feelings by painting.
It's true, that they had their proplems.
It's true, for anyone alive, and more important for those who would love to have a rich life.
A rich life?
A rich life for me, is not money.
"Richness",
a person can take, a reason can take (sickness) and an accident can take.
"The only thing" no one can steal is:
- your memories
- if you know playing an instrument
...
(중략)
그의 이메일을 받고 다시 멍하게 되는 순간이 왔다.
미술관을 데려가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느 시대나 어떤 곳에서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제을 갖고, 그들의 방법대로 표현하며 살아간다고, 어쩜 세상은 참 작을지도 모른다는 그의 이야기.
부자라는 게 돈도 중요 하지만, 어느 누군가가와 대체할 수 없는,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나만의 추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있다면 그게 부자가 아닐까 하는 그의 이야기.
"그래, 나도 어쩜 부자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추억들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풀어낼 수 없는 파리에서의 우연한 만남을 포함해서..
때론 앞뒤 안재고, 어떠한 결과 생각 없이 해 보는 행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라라랜드에서 주인공 인 미아의 고모가 세느강에 맨발로 뛰어들었던 그 행동처럼,
그런 행동이 뜻밖에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그로 인해 다시 나는 부자가 되었다. 생각하면 마음 설레는 낯선 도시에서의 낯선 경험을 가지게 된, 그 누구도 가지지 못하는 추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기억을 갖고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