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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 Oct 24. 2024

덕질은 진행 중

좋아하는 걸 아무 눈치 보지 않고 즐겼던 때가 언제였나 싶다. 아무 목적 없이, 그 어떠한 것에 대한 파생물을 기대하지 않는 그 마음으로 무언가를 좋아하는 일조차도 매우 드물다.


올해 시작한 아이돌 덕질. 이것이 그것이다.


몇 달 전

좋아하는 아이돌이 일본에 공연을 한다기에 콘서트 신청을 했다. 일본은 콘서트 좌석을 예매하는 것이 한국처럼 선착순이 아니라 우선 신청해 놓으면 추첨제로 티켓을 살 수 있다. 이번엔 꼭 콘서트를 가보고자 하는 결심으로 인생처음으로 팬클럽도 가입했다. 팬클럽에 가입되어 있으면 우선제로 티켓을 미리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추첨제라고 하는데 그 시스템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다. 당연히 팬클럽에게 먼저 티켓을 살 수 있는 창구를 연다는 의미는 더 당첨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렇게 팬클럽을 가입하고 세장의 티켓을 신청했는데, 결과는 하나가 당첨이 되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아이돌 콘서트가 되었다.


대망의 콘서트날

몇 달 전 사두었던 콘서트가 당일이 되었다. 콘서트 날짜가 목요일이고 오후 5시이며 요코하마라는 곳, 한국으로 치자면 분당정도가 제일 적당해 보인다, 에서 열리기도 해서 하루 휴가까지 써가며 콘서트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지금까지 이 아이돌 콘서트를 가기 위해서 내가 쓴 비용이, 팬클럽 가입비 + 콘서트 티켓값 + 연차 + 그리고 무려 앨범까지 샀다. 고등학교 때 HOT 열광적으로 좋아했을 때가 있었다. 그때도 앨범이 나올 때면 일등으로 가서 레코드점에서 cd를 사곤 했다. 그 이후로 내가 cd를 사본적이 있나. 그렇게 몇십 년 만에 앨범이란 걸 구매했다. 우리 때와는 많이 다른 모양새였다. 물론 집에 cd 플레이어는 없다. 플레이어가 없는지 한세월이다. 이 앨범은 마치 멤버들의 사진집과 같았다. 앨범을 사니 두꺼운 잡지처럼 사진집이 왔고, 나도 최근에야 안단어, 포카라는 일명 포토카드란 게 왔다. 이건 그냥 복불복이란다. 지갑에 딱 끼어 넣을 수 있는 크기에 포카 한 장, 그리고 멤버들을 캐릭터화한 스티커까지. cd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멤버들 사진 때문에 앨범을 사는 것이란 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구성이었다. 다시 라테로 돌아가서 말하면, 앨범에는 지금처럼 멤버들의 사진이 동일하게 들어가 있었다. 지금은 앨범이 잡지책처럼 구성되었지만, 당시의 사진은 Cd 케이스에 들어 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포토카드란 걸 내가 수작업으로 만들었었다. 일전에 집에 내려갔을 때 고등학교 시절 사용하던 다이어리(버리지 않고 부모님 집에 간직 중이다)를 보니 요즘 유행하는 다이어리 꾸미기는 우리 때도 엄청난 유행이었고 다이어리에 내가 잡지에서 오려낸 멤버의 얼굴을 코팅해서 넣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로 책갈피도 만들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면 매번 문방구에 가서 멤버들 사진이 있는 엽서를 사기도 했다. 그때는 잡지가 정말 유행이었는데 아이돌 가수들 사진이 잔뜩 실려있는 잡지들인데 서점에 가서 잡지를 보며 가장 맘에 든 잡지를 사기도 했다.


이런 걸 보다 보면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 인간의 코어에 자리 잡힌 그 감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간직하고 싶어 포토카드와 앨범을 여러 개 사는 일(요즘은 앨범 버전이 4-5개가 된다. 앨범마다 사진이랑 그 구성이 다르다고 한다)이나 문방구 가서 좋아하는 연예인 얼굴이 들어간 엽서를 사고 서점에서 잡지책을 사는 것은, 그 본질에 있어서 전혀 달라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서 이야기해 보면, 내가 앨범을 구매한 이유는 앨범을 구매하면 거기에 코드 번호가 적혀있고 그 코드번호를 입력하면 콘서트가 끝나고 멤버들에게 배웅을 받는 이벤트가 있다고 한다. 이걸 이해하는데 한참이나 걸렸다. 호구는 결국 이걸 신청하고자 앨범을 구매했다. 결과는 탈락. 주변에 물어보니 그것 때문에 앨범을 몇십 개씩 사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아이돌 팬사인회에 당첨되어서 가는 친구들은 정말 드는 비용이 어마무시하다고. 결국 나도 이 콘서트를 위해서 쓴 돈은, 그만 이야기하자.


대망의 콘서트날이 왔다. 처음 가보고는 아이돌 콘서트라 엄청 긴장이 되었다. 한 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했다. 콘서트 장 앞에 가니 이미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콘서트 장 입구에는 굿즈들도 팔고 있었다. 응원봉이 없어 결국 응원봉까지 샀다. 다시 계산해 보면, 팬클럽 비용 + 콘서트티켓 + 하루 연차 + 앨범 + 응원봉, 그러하다. 콘서트 장 문화는 참 재미있어 보였다. 멤버들이 무대에서 입었던 듯 한 티셔츠를 입고 온 친구들도 있었고, 틱톡을 찍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으며, 다양한 굿즈 키링으로 옷이며 가방에 달아 놓은 게 참 귀엽고 예뻐 보였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사실 소녀들 틈 사이에서 덩그러니 혼자 거기서 주책맞은 팬이 되면 어쩌나 했는데 의외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팬들도 참 많았다. 중년의 여성 친구들이랑 온 분들도 있었고, 딸이랑 함께 온 엄마도 보였다. 엄마도 누가 봐도 팬이었다. 딸을 데리고 온 느낌보다는 함께 좋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제야 나도 안심이 들었다.



그리고 콘서트 시작. 우선 내가 매일 듣는 노래들을 라이브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있자니 첫 무대에서는 감동이 밀려왔다. 내 귀로만 흘러들어 가던 음악이, 티비로만 보던 무대를 눈앞에서(사실 3층석이라 무지하게 작게 보이기는 하지만) 보고 있자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내게 찾아왔다. 처음 느껴보는 셀럼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내가 티비를 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내 눈앞에서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더 잘 무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기도 했다. 그랬다.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고 동시에 이래서 가수 덕질을 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잡생각 집어치우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같이 떼창을 하고 최대한 눈에 한순간 한순간을 담으려고 했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지르는 함성과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 공간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된듯한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대망의 나의 첫 아이돌 콘서트 관람이 끝이 났다. 아마 나는 앞으로 몇 년간은 호구의 삶을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보상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해 보던 게 언제였던가.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면서도 나는 가끔 이 글들을 이렇게 블로그에 올린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많이 읽고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늘 간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결국 나도 모르게 욕심이란 것이 지배하며 잘하고자 하는 욕구, 이걸 통해서 어떠한 결과물을 파생해 내게 이익이 가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그 욕심의 마음이 결국에는 늘 따라온다.


덕질은, (그 대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과 상관없이), 덕질은 그런 매력이 있나 보다. 조건 없이 좋아하게 되는, 내가 쓰는 시간과 돈에 대해서 콘서트를 봤으면 됐지로 퉁치게 되는.


아참, 요코하마에 온 김에 여기 있는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결심했다. 이번 여름은 별다른 휴가도 가지 않은 상태라 호캉스 하루 하면서 혼자만의 여름휴가를 즐겨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요코하마의 호텔들은 도쿄에 비해서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았다. 꽤나 좋은 4성급의 호텔들도 20만의 선에서 예약할 수 있었다. 도쿄에서 4성급 호텔은 아마도 그에 2배가 되지 않나. 콘서트 끝나고 집이 아닌 호텔로 갔다. 하룻밤 요코하마 시내가 보이는 호텔에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고 돌아와 있으니 기분이 무척 좋았다. 자꾸 돈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쓴 돈이 많아 소소한 행복이라고 칭하기는 어렵지만, 하루정도 온통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니 행복이 별거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든 생각.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는 방법을 발견하기라는 올해 내가 40대의 성장에 하나의 목표로 잡았던 것이 실현된 느낌이라 괜스레 뿌듯해졌다.


나는 덕질을 하며 인생을 배웠고 조금은 성장하게 되었다. 오늘 나의 특별한 외출은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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