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다섯 있었다.
새로 온 여자가 하나, 서로 알고 지내던 여자가 1,2,3,4.
여자 1이 새로 온 여자에게 다른 여자들을 소개했다.
여자 1이 옆에 앉아있는 여자 2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며 새로운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집에서 놀고 있고,”
여자 2가 그 말을 듣자마자 웃었다. 큰 웃음이었다.
여자 1은 말을 잘못했구나.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웃음이었다.
여자 1은 멋쩍게 따라 웃으며 다시 시작했다.
“저랑 여자 2는 전업주부고, 여자 3과 여자 4는 일을 나가요.”
집에 돌아온 여자 1은 불편했다.
자꾸만 여자들이 생각나고, 여자들의 웃음이 생각나고, 자신의 말이 생각났다.
놀고 있고, 놀고 있고, 집에서 놀고 있고.
여자 1은 다음날 샤워를 하면서도 그 생각을 했다.
여자 2를 생각하고, 여자 2의 웃음을 생각하고, 자신의 말을 생각했다.
놀고 있고, 집에서 놀고 있고, 우리는 집에서 놀고 있고.
여자 1은 샤워부스 안에서 얼굴을 찡그린 채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았다.
물인지, 눈물인지 분간할 수도 없을 테지만, 그녀는 참았다. 여자 1은 참고, 참으면서 생각했다.
여전히 자존감이 바닥이구나. 나는.
놀고 있다고 표현하다니. 가정주부로 사는 일이 노는 일이라고 생각하다니.
나의 무의식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얼떨결에 내 무의식에 발을 얹게 된 여자 2가 황당했겠구나. 불쾌했겠구나.
불쾌한 웃음이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니라 저는 집에서 놀고 있고,라고 말했더라면...
적어도 이해의 여지가 있었을 텐데. 나는 제 멋대로인 사람.
나는 직업을 갖고 싶은가?
아니다. 다시 묻겠다.
나는 돈을 벌고 싶은가?
그렇다.
돈은 벌고 싶고, 그러면서 일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모순덩어리.
가정주부로 사는 일이 노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정주부가 하는 일에 대해 같이 사는 남자에게 매일 생색내는.
그러니까 나는 겁쟁이.
나는 모순을 칭칭 둘러 감은 겁쟁이.
그러나 울지 않겠다. 자존감이 바닥이면서 동시에 높은 자존감을 동경하니까.
오늘 바닥을 보았으니, 우는 대신 열심히 올라가겠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멋진 사람.
좋고 멋진 사람이란 자신의 민낯을 조우해도 끄떡없는 사람.
언젠가, 누군가 말했었지.
자신의 바닥을 만난 것을 스스로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좋고 멋진 사람이 되는 첫걸음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여자 1은 누군가의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여자 1은 샤워 부스 안에서 뜨거운 물을 맞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겁쟁이.
청춘의 비겁함은 You로부터 듣게되고.
불혹즈음의 비겁함은 I로부터 알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