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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Mar 05. 2019

익숙해지면 안 되고 말고.

난나 씨는 도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도덕성이란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이라고, 난나 씨는 그렇게 생각했어. 도덕성의 중요성에 대해 교육받으며 자랐고,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고, 난나 씨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교육했지.


난나 씨는 자라면서 도덕성의 상대성에 대해 인식했어. 그래도 상대적인 것 안에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성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왔단 말이야. 난나 씨에게 도덕성의 상대적인 범주란 크게 두 종류였어. 하나는 그럴 수도 있구나의 범주와 다른 하나는 감옥에 가야 하는 행위의 범주.  


난나 씨는 넌너 씨를 알게 되었어. 그리고 곧 넌너 씨의 가족을 만나게 되었지. 

그런데 난나 씨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거야.

넌너 씨는 난나 씨가 알던 절대적 도덕성 범주에 속해 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

그러면 상대적 범주의 도덕성을 갖고 있겠지? 

그래, 그럴 테지, 그래야 하는데…… 

넌너 씨 가족들은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범주에 속해있지 않았어. 

그래? 그럼 교도소에 가야지 범주겠는데? 

그래, 그래야 하는데, 또 교도소에 가야 하는 범주는 아니더란 말이야. 

난나 씨는 머리가 지끈거렸어. 이건 뭐지, 이건 뭘까. 이건 어떤 범주일까.   


자, 정리를 해보자.

난나 씨는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어. 3개의 동심원을 그렸지. 가장 안쪽이 범주 1, 절대적 도덕성. 두 번째 동심원이 범주 2, ‘그럴 수도 있구나’의 상대적 도덕성. 가장 바깥 동심원이 범주 3, ‘감옥에 가겠군’의 도덕성.


동심원을 바라보며  난나 씨는 생각했어.

넌너 씨는 원래 절대적 범주에 있던 사람일까? 그래. 그랬을 거야. 난 성선설을 믿는 사람이라 치고, 넌너 씨는 도덕성의 절대적 범주에 머무르던 때가 있었을 거야. 그런데 어쩌다 범주 2에 넘어가 본 거지. 넘어가 보니까?  이런 것도 있네, 재미가 있네, 감옥은 안가네, 했을까? 자꾸 거기에 있다 보니, 익숙해진 걸까? 그래, 절대적 도덕성밖에 사는 삶이 익숙해진 거야. 


난나 씨는 지금까지 제3의 범주에 있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어. 그 범주에 있는 사람들은 TV나 뉴스 기사로만 접해봤지.  사실 난나 씨는 제2의 범주가 얼마나 큰 지도 알지 못해. 난나씨는 넌너 씨가 제2와 제3의 범주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아니야. 

난나 씨는 다시 동심원을 그렸어.

난나 씨의 동심원, 넌너 씨의 동심원. 

난나 씨의 동심원은 3개짜리 동심원. 

넌너 씨의 동심원은… 몇 개 일까?


'사람들은 저마다 다 다른 도덕성의 동심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각자 절대적 도덕성이라는 것이 다 다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난나 씨는 생각했어. 난나 씨에게는 상대적 범주의 도덕성이 넌너 씨에게는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범주인지도 몰라.  




이랬거나, 저랬거나.  

그래서. 난나 씨에게 넌너 씨는 이상한 사람. 

그리고 난나 씨는 생각을 하는 거지. 


익숙해지면 안 되지, 안되고 말고.  익숙해지면 안 되는 것이 있는 거지.    





불혹 즈음.

점차로 넓어지는 도덕성의 상대적 범주

동시에

확고해지는 도덕성의 절대적 범주

겉으로는 다 이해하는 척하면서,  안으로는 하나 바뀌지 않는 고집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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