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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Feb 16. 2023

파이프오르간 독주회? 처음 볼 결심!

<최수영 파이프오르간 귀국독주회> 횃불선교센터 사랑성전

인생 첫 파이프오르간 리사이틀을 보기로 결심했다.


횃불선교센터에 설치된 오스트리아 리거(Rieger)사의 파이프오르간


막연함에서 오는 불안과 새로움에서 오는 기대가 공존하는 '처음'은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는 순백의 상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실제로 '처음'이라는 순간을 경험하기 위해선 이를 겪는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하며, 이에 부담을 느껴 '처음'이라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도 그랬다.


오르간 연습하는 킴벨을 관리감독하는 컨셉

그랬던 내가 양재 횃불선교센터로 발걸음을 옮긴 데에는 얇지만 겹겹이 쌓인 간접 경험에 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어느 교향악단과의 협연, 또 다른 어느 날 합창단과 오르간이 함께하는 공연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킴벨이 오르간 클래스를 수강하던 시절 매주 갔던 연습실에서의 추억도 있었다. 간접 경험의 순간들을 거슬러 올라갈 때 가장 먼저 마주하는 감정은 호기심이다. 오르간이란 악기 자체를 쉽게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것이라 흥미를 느낀 듯했다.


오늘의 공연 포스터


국내 유일무이 파이프오르간을 보유한 개신교 교회에서 국내 유일무이 오르가니스트이자 가톨릭 신자의 공연이 열렸다. 객석은 비지정석으로 운영되었고 오늘(월요일)의 공연장이자 어제(일요일)의 예배당이었던 2층 공간으로 들어가니 수십 년 전에나 보았던 장의자 수백 개가 펼쳐져 있었다. 비지정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깨우치며 시야 좋은 자리 몇 군데를 비교해 앉는데 의자 폭이 다르더라?!


객석 이곳저곳을 둘러본 결과 정면보단 연주하는 모습이 보이면서 다소 한산한 객석 우측면에서 보기로 결정


공연이 시작되었다. 객석 조명 암전 없이 진행되었는데 중간 입장 시 관객들이 계단을 헛디디지 말라는 이유인가 추측해 보았다. 공연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다. 프로그램은 슈미트, 바흐, 레거, 뒤프레 곡의 종교음악과 무팟의 토카타(toccata)로 구성되었다. 토카타라는 용어가 낯설어 찾아보니 이탈리아어 ‘건반에 손을 대다’라는 뜻으로 특정한 구성 법칙 없이 화려한 테크닉을 과시하도록 만든 곡이라고 한다.


악기 하나 또는 악기와 반주로 구성되는 기존 리사이틀 공연은 악기 고유의 소리를 오롯이 들을 수 있어 흥미롭다가도 어느 지점이 넘어가면 음색의 한계로 지루해지곤 한다. 오르간은 수십 개 스탑의 조합을 토대로 다양한 음색 구현이 가능한 탓인지 그런 느낌은 덜했다. 오르간 경험자 킴벨은 인터미션에 악보를 찾아보았다는데 이 음표들을 어떻게 다 연주했는지 살짝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랐다고 했다. 간단히 말해, 말도 안 되는 연주 테크닉이라는 거다.


휘몰아치는 연주와 여유 넘치는 인사가 대조를 이루었다


수난교향곡은 예수의 탄생부터 죽음, 부활까지의 내용을 담은 곡이란 설명에 나름 곡의 분위기를 예측해 보았는데 서사가 있다기 보단 각 주제를 다양한 주법과 음색으로 표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종교음악 외 프로그램은 어떻게 연주할지 궁금했다. 공연이 끝낸 연주자가 무대로 나오는데 페달을 밟을 수 없으니 두 다리를 들어 의자를 넘나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연주를 마치고 의자를 뛰어넘어 관객을 바라보니 들리는 박수갈채


나의 첫 오르간 직관이 끝났다. '처음'이라는 경험은 나도 모르는 새 나름의 기준을 형성했다. 오르간 리사이틀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 앞으로의 오르간 공연이 이 기준만큼은 도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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