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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Apr 15. 2023

불편한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다, 연극 <회란기>

<회란기>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이 공연 봐야만 할까?', 불편한 첫인상

극공작소 마방진의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자주 들어본 단체였다. 왠지 모를 익숙함과 기대감에 유입되어 공연 정보를 보던 참에 예상치 못한 관람 유의사항을 보게 되었다.  

   

유의사항을 이만큼 여러번 읽어본 적도 처음이다


일터에서 바쁜 한 주를 보내고 금요일 저녁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으려던 계획이었는데 기대와 다른 공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던 어느 날, 알람설정 해놓은 한 공연 블로거의 후기가 올라왔다. 출연 배우들에 연기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었다. 동행하게 될 킴벨의 의견도 물었다. 마음이 조금씩 가는 쪽으로 기울었다.     

   


석회로 그린 원, 불편함에 가려진 진짜 이야기와 마주하다    

공연이 시작하기 전 배우 두 명이 극 중 사용될 몽둥이를 들고 무대로 나왔다. 사이좋게 몽둥이를 휘두르며 전혀 아프지 않음을 증명했고 희망하는 관객에게 맞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관객이 불편해할 수 있는 지점을 사전에 해결하고 멍에 바르는 연고까지 선물하는 센스에 공연 전부터 마음이 활짝 열렸다.     


사전 몽둥이 시연을 보였던 두 배우(중앙)


공연은 전반적으로 대사가 많고 빨랐으며 TV에서 보던 만담처럼 톤이 높았다. 다뤄야 할 내용이 방대해서일까 아니면 신파극으로 빠지지 않게 일부러 몰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일까? 자칫 과할 수 있는 대사와 행동들은 무리수로 느껴지지 않았고 중간중간 관객들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듯한 대사가 위트 있게 다가왔다.  

 

오늘 공연의 출연진

  

장해당 역의 여배우(이서현)는 열연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대사가 가장 많았고 몽둥이도 가장 많이 맞았다. 목과 몸이 괜찮을는지 다음 공연이 걱정될 만큼 모든 걸 쏟아냈다. 가끔 대사가 씹히는 구간이 있었는데, 뇌에서 보내는 출력신호의 양이 너무 방대해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끊김 현상과 같았다. 벅찬 감동을 꾹 눌러놓았다가 커튼콜에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이서현 배우에게 일동 박수


이외에도 인상 깊었던 점으로는 인터미션 간 재생된 바람소리 효과음이었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 장해당이 재판을 받기 위해 끌려가는 장면으로 1막이 끝났는데 객석과 로비에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미션 중에도 몰입감을 이어가기 위한 장치였고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또, 2부 중반 아이 엄마를 가리기 위한 재판 장면에선 천장에서 대형 거울이 내려왔다. 무대 바닥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였는데 반동 때문에 흔들리다가 대형붓으로 바닥에 흰 원을 그리는 시점에 정확히 멈추더라.     


공연중에는 거울이 기울어지면서 흰 원이 객석에 비치게 된다


숨은 공신, 두산아트센터의 편안함에 대해

두산아트센터에 들어서면 내가 문화생활을 하러 왔구나란 마음이 절로 들게 한다. 다양한 조형물과 함께 관객을 배려한 공간, 이를테면 사방이 착석 가능했고 생수를 구매할 수 있는 자판기가 비치되어 있었다. 대화의 장벽이 있는 관객을 위한 패드와 키보드가 비치된 것도 인상적이었다.    


독창적과 기괴함 사이 어딘가에 있는 조형물(좌측)과 로비 중앙에 위치한 문자 제공 서비스(우측)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앉을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하우스 매니저의 세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 있었다. 오락가락한 날씨에 몸살기가 난 킴벨을 위해 담요가 있는지 문의했더니 뽀송뽀송하고 향긋한 냄새가 나는 담요를 빌려주셨다. 또한, 혹시라도 중간 퇴장하셔야 할 상황에 대비해 출구 쪽으로 자리를 옮기시겠냐고 물어봐주셨다. 관객과 객석 운영을 모두 고려한 대처에서 배려를 느꼈다.


공연을 끝까지 볼 수 있게 해준 소중한 담요
불편한 것이 불편하지 않기 위함이었고 불편할 수 있던 상황이 편안하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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