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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May 06. 2023

소년합창단 공연에서 클래식 음악 너머를 보다

<영국 소년합창단 리베라 내한공연 Forever>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신년음악회나 송년음악회 단골 기획 공연 중 하나가 해외 소년합창단의 내한이다. 프랑스의 파리나무십자가 소년합창단이나 오스트리아의 빈소년합창단 공연을 가보면 매진에 가까울 때가 많다. 국내에선 보기 드문 소년들의 합창에다가 변성기 전의 목소리로 남녀 파트를 만들어내는 게 신기해서일지 모르겠다.


코로나 이후 참 오랜만의 소년합창단 내한 공연이었다. 리베라 소년합창단은 앞서 말한 소년합창단 공연을 다녀온 후 검색하다가 알게 된 합창단이었다. 유튜브 채널 로고가 인상적이었고 예능 프로그램 BGM으로 종종 듣던 Sanctus의 주인공이라는 게 내가 가진 정보의 전부였다. 당연히 앞서 말한 두 합창단의 공연처럼 무대 가운데 놓인 피아노를 지휘자가 연주하고 단원들이 양 옆으로 도열하여 노래 부르겠거니 예상했다.


정체성과 심미성을 모두 사로잡은 리베라 유튜브 채널 로고 ⓒLibera Youtube


콘서트홀에 들어선 순간 전혀 다른 그림이 무대 위에 펼쳐져 있었다. 중앙에 넓은 단상이 설치되어 있었고 무대 양 끝엔 조명이 두 대씩 설치되어 있었다. 악기 구성을 보니 스트링부터 플롯, 호른, 퍼커션까지 다양했다. 피아노 뒤엔 신시사이저도 2대나 설치되어 있었다.


단상 위 꽤 많은 연주자 의자(좌측)와 그랜드 피아노 뒤로 보이는 두 대의 신시사이저(우측)


공연이 시작되고 스무 명 남짓한 소년들이 등장했다. 1부는 리베라의 대표곡 Sanctus를 비롯해 성가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천장고가 높은 성당에서 부르는 것처럼 리버브 효과를 주었고 데스칸토로 특유의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음향적으로 비교적 건조한 공연장에서 인위적인 마이크 효과를 계속 듣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화음이나 곡 진행도 비슷한 느낌이어서 지루한 느낌도 없잖아 있었지만 어찌 보면 리베라의 음악적 콘셉트가 무엇인지 오롯이 보여주기 위한 곡의 구성으로 해석되었다.


무대 앞 4대의 컨덴서 마이크(좌측)과 곡별 다양한 동선을 선보인 리베라(우측)


2부는 대중적인 The Prayer를 비롯한 성가 레퍼토리였다. 공연 당시 프로그램지가 없어 의식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모든 곡이 성가로 이루어져 있더라. 앙코르로 부른 아리랑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1부와 동일한 성가 레퍼토리임에도 그렇게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악기의 구성 때문이었다. 특히 퍼커션과 신시사이저를 굉장히 맛깔나게 활용하였다.


성가로 가득 찬 당일 공연 프로그램


퍼커션은 젬배 유형의 타악기와 심벌즈, 그리고 전자드럼으로 구성되었다. 일정한 비트와 적정한 음량, 그리고 타이밍 맞게 바뀌는 음색에 MR이 아닌가 한참을 의심했다. 신시사이저 또한 프로그램이 풍성하고 다채롭게 들리는데 상당히 일조하였다. 조명이 무대 연출의 8할이었는데 그때마다 어울리는 음색으로 연주하더라. 어느 곡에선 피아노와 신시사이저 소리가 같이 들렸는데 내가 본 건반 연주자는 한 명뿐이라 동시에 치는 건지 아니면 백스테이지서 누군가 연주하는 건지 꽤나 혼란스러웠다.


단상 중앙 타악기 연주자 주변으로 다양한 악기가 보인다


이 모든 광경이 애초에 생각했던 소년합창단의 공연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모든 상황의 장본인, 지휘자를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공연 내내 무대 아래 객석 1열 앞에 보면대와 의자를 놓고 지휘하고 있었다. 단원들이 계속 동선을 가져가기에 악기 연주자와의 눈빛 교환이 어려울 텐데도 무리 없이 지휘하였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 들어가기 전 지휘자가 귀에 무언가를 끼는 걸 보았는데 별도 소통장치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거지? 뭔가 방법이 있으니 가능하겠지!'라는 의문과 가정으로 겨우 현상을 해석하고 있었다.


객석 1열 중앙 3석을 비워두고 지휘자가 위치했다(좌측). 지휘자와 연주자 사이 합창단(우측)


한편, 공연은 3~4곡을 부르고 단원멘트 후 다시 공연을 진행하는 형식을 취했다. 직전 한국 투어에서 8살이었던 꼬마가 7년 만의 한국 투어에서 가장 맏형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어느 단원이 태권도를 배운다는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공연 중 눈에 띄는 단원 하나가 있었다. 가장 작고 앳되어 보이는 게 막내인 듯했는데 매번 바뀌는 연주 대형을 따라가지 못해 슬금슬금 움직이거나 한데 뭉쳐 가만히 노래 부르는 장면에선 꼼지락거리더라. 귀여우면서도 괜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바로 그 단원이 관객들에게 연주자들을 소개하고(좌측) 지휘자를 소개한다(우측)


2부 중반을 지나며 낯익은 단원 몇몇을 발견할 수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 2020년 중순, 전 세계적으로 버츄얼 콰이어 영상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리베라 합창단의 버츄얼 콰이어 영상은 그중에서도 눈에 뜨일 만큼 완성도가 높았다. 그중 두 소년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었는데 무대 위에 있는 걸 보니 내적 친밀감이 발동해 괜스레 더 반갑더라.


그중 가장 많이 들었던 리베라의 Total Praise ⓒLibera Youtube


개인적으로 성악 공연은 들으면 들을수록 듣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음색이나 창법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정도가 기악 공연에 비교해 분명하기 때문이다. 출연진의 명성과는 별개로 온몸이 어려워하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색이 있음을, 또 그것에 민감히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렇게 뜸하게 된 성악 공연을 보게 되었는데 좋은 기분을 갖고 나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공연 30분 전부터 객석 대부분이 찬 콘서트홀


쇼콰이어라는 표현이 헤리티지 메스콰이어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겠으나 소년합창 장르만으로 얼마든지 웅장하고 다채로운 연출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었다. 정통 클래식이라 불리는 성가 합창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를 보여준 실제 사례이자 열렬한 관객의 환호로 다수에 의해 증명되었으니 하나의 근사한 쇼를 선보인 콰이어라고 소개할 수 있겠다.


성악 공연에선 보기 드문 꽉 찬 객석과 환호하는 관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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