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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랑망고 Mar 28. 2022

앙상블은 듣지 않고 보는 것이다

<트리오: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롯데콘서트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음.. 이번 기회에 좀 알아보려고요"


오늘의 무대 배치. 피아노 의자 3 & 넘순이 의자 1


콘서트홀에 도착하기 전까지 내가 이 공연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이라곤,


1) 동명의 드라마가 있었다는 것

2) 클라라-슈만-브람스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가 미묘한 관계였다는 것


이 전부였다.


그래서 공연의 기획의도가 궁금했다. 왠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음악들을 연주할 것 같은 공연명이지만 프로그램은 클라라-슈만-브람스가 각각 작곡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어 마냥 행복한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지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꼼꼼히 읽어보았지만 언급된 내용은 없었다. 해석은 청중의 몫으로 남겨두려는 의도가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클라라 슈만│피아노 삼중주 G단조 작품번호 17 

로베르트 슈만│피아노 삼중주 제 1번 D단조 작품번호 63

슈만의 음악 스승이자 클라라의 아버지는 둘의 결혼을 극구 반대에도 맞불 작전을 펴며 마침내 결혼한 클라라와 슈만. 하지만 다사다난한 날들은 결혼 후에도 계속되었다. 넷째 아이의 유산과 정신질환을 겪는 남편을 곁에 둔 상황에서 작곡한 클라라의 피아노 삼중주는, 고요했지만 숨이 턱 막혔다. 옆에 있는 남편을 바라봐도, 현실 속 자신을 바라봐도 마음 둘 곳 하나 없는 심정이 곡에 안 묻어났을 리 없었다. 그에 반에 슈만의 삼중주는 피아노-바이올린-첼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안정적으로 받쳐주며 듣기 좋은 하모니를 만들었다.


두 작품의 차이는 스케르초 악장에서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었다. 보통 익살스럽고 극적인 분위기를 띄는 스케르초에서 클라라는 우아함을 애써 잃지 않으려 했다면 슈만은 해맑고 즐거운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현의 짧은 피치카토 소리는 롯데콘서트홀 천장을 박차고 사방으로 퍼지며 밝고 활발한 멜로디가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같은 듯 다른 클라라와 슈만 작품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브람스│피아노 삼중주 제 1번 B장조 작품번호 8

무대에 서있는 세 명의 연주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브람스의 음악이 편안하기도 했지만 실물을 처음 본 관객으로서 조재혁, 김지연, 송영훈 님과 이제 좀 친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때마다 아쉬운 마음과 함께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나와 같은 클래식에 문외한 사람들을 위해 공연 직전 연주자와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평일 일과를 마치고 공연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저녁 식사를 마친 관객들에게 단 몇 마디라도 건네는 인사와 공연 소개는 청중의 집중력을 몇 배는 끌어올릴 것이다. 프로그램지에 실린 형용사와 부사 조합의 연주자의 프로필로만은, 작곡 배경과 악장별 주요 특징을 설명하는 프로그램 노트만으로는 마음이 금방 열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아쉬워서 하는 말이다. 인터미션 전후로 연주자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높아짐에 따라 공연에 대한 몰입도도 상승하는 상관관계 때문이다.


지근거리에 무대가 있다. 왜 앞에 앉아야 하는지 깨달았다


트리오인(Trio In) 세 사람의 호흡은 정말 편안했다. 연주는 말할 것도 없을 뿐더러 내가 주목한 건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롯데콘서트홀 1층 6열에 앉아 표정 하나하나를 세세히 볼 수 있었는데 숨소리와 고갯짓으로 합을 맞추는 앙상블만 보다가 눈빛과 미소로 교감하는 연주자들을 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연주복에도 시선이 머물렀다.


왼쪽부터 피아노 조재혁, 바이올린 김지연, 첼로 송영훈

바이올린 김지연 님의 1부 초록색 드레스와 2부 검은색 드레스는 과감했지만 과하지 않았다. 바이올린의 화려한 주법은 한 끝 차이로 시끄럽게 들리는데 날렵한 칼을 다루는 무사처럼 날이 선 활을 능수능란하게 연주했다. 여성 연주자의 특권일 수 있는 의상을 의상 정도로만 여기지 않고 연주자 본인과 오늘의 연주를 표현하고 격을 올리는 선택이었다.


피아노 조재혁 님은 노타이에 셔츠 목 단추를 열어 두었는데 활동적이면서도 편안한 느낌이 피아노에서도 느껴졌다. 바쁘게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로 오르간의 짱짱한 소리, 오케스트라의 풍성한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곡의 스케치를 그리며 두 현악기를 빈틈없이 받쳐주었다.


첼리스트 송영훈 님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셔츠 색깔과 비슷해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독주 부분에서 청중과 눈을 맞추며 연주하는 모습 사이로 발견했다. 1악장을 마치고 땀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느라 10초가량 정적이 있었다. 잘 드러나지 않지만 묵묵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열정적인 첼로의 이미지가 셔츠 위 하얀 넥타이와 겹쳐 보여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없었다.


옆에 앉은 킴벨도 비슷한 걸 느꼈다고 했다. 2악장 중 첼로의 음 하나가 귀에 박히더니 눈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더란다. 바이올린의 주제 멜로디를 낮은 음으로 받쳐주는 부분이었는데 울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단다. 타고난 운명이 누군가를 빛나게 해 주는, 그럴 때 자기가 빛나는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데 누군가가 연상이 된 듯 하다.


휴지가 없어 물티슈로 닦았다


앞서가고 받쳐주고, 뭉치고 흩어지고, 크게 말하고 잠잠히 듣고..


앙상블의 진수를 보여준 고수 트리오인(Trio In) 세 사람이 무대 하수로 사라질 때까지 힘찬 박수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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