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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이봉희 Oct 20. 2024

[ 제로의 시대 ]

Z-26 상심하지 말고



혜원은 깊은 혼란 속에 있었다. 인류와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실망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그동안 혜원은 항상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쓰고, 상처받지 않으려 자신을 내려놓으며 살아왔지만, 더 이상은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인간들 사이에서 느끼는 환멸감은 점점 커져갔고, 그녀의 내면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혜원은 자신의 내면에서 싸우고 있는 두 늑대를 인식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는 분노와 질투, 슬픔에 물든 어두운 감정을, 다른 하나는 믿음과 선의를 상징하는 늑대였다.

“이제 정말로 선택해야 해,” 혜원은 속삭였다. 그녀는 지치고 상처받았지만, 그 상처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줄 답을 찾으려 했다. 사람들에게서 등을 돌리고 싶었지만, 여전히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카이와의 대화

혜원은 어느 날 카이와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카이는 그녀와는 다른 방식으로 내면의 싸움을 겪고 있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고 있던 카이는 혜원이 겪는 고민을 공감할 수 있었다.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 카이가 털어놓았다. "난 신인류로 태어났지만, 진짜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이 세상에서 내 역할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싶지만, 나에게 그런 감정은 자연스럽게 오지 않아."

혜원은 카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마찬가지야.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상처받게 돼. 하지만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 여정인 것 같아."

혜원의 말에 카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너는 여전히 인간을 믿는 거야?"

"그래, " 혜원이 대답했다. "믿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내 안에 선한 늑대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 나는 그 늑대에게 계속해서 먹이를 주어야 해. 나쁜 늑대는 계속 나를 좌절시키려 하겠지만, 그 싸움에서 내가 이길 수 있다고 믿어."

카이는 혜원의 결의에 감명을 받았다. 혜원의 믿음은 단순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제로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닿을 수 있는 희망이었다. 자연과 기술의 조화를 이루려는 이 여정에서, 혜원의 믿음은 그 자체로 커다란 변화를 이끌 수 있었다.

미래를 향한 선택

혜원은 그날 이후로도 자신의 내면에서 계속 싸웠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싸움의 결과가 무엇인지 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카이와 함께 엠마와 대립하더라도,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연과 기술이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굳건히 했다.

카이 역시 자신이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넘어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 깨달았다. 그는 혜원의 결의를 보고 자신도 선한 선택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함께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혜원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의 믿음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은, 점차 분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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