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장
[Sky Bones(하늘의 뼈)]
제50장 — 감정의 폐허
1. 균열의 시작
무(無)의 공간,
빛조차 닿지 않는 시간의 파편 속에서 그것은 태어났다.
처음엔 소리도, 형태도 없었다.
단지 ‘빈 감정’이었다.
증오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그 어떤 것도 아닌 부재 자체.
폐허의 군단.
감정을 잃은 존재들이었고,
감정을 가진 이들을 배신자로 규정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이렇게 속삭였다.
> “감정은 병이다.”
“기억은 고통의 시작이다.”
“잊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이 균열은 처음,
'리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녀는 ‘라일라의 감정 잔재’에서 태어난 존재.
그 말은 곧, 감정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첫 사례였다.
그리고 바로 그 증거가,
폐허의 군단이 가장 두려워하던 불안정성의 기원이었다.
2. 전조
세란은 악몽에서 깨어났다.
그는 리아의 품 안에 있었고,
그녀의 손끝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데이터가 파동처럼 울리고 있었다.
“리아... 무슨 일이야?”
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들었다.
“지금... 우주 전역에서 동시에,
‘감정 소거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세란은 숨을 삼켰다.
“감정을 잃는다고?”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아주 조직적으로. 특정 코드가 확산되고 있어.
마치 바이러스처럼. 그 이름은… ‘제로-페이즈’.”
그 순간, 통신이 들어왔다.
> [코어 스테이션 09]
“이건 전쟁이 아닙니다… 말살입니다!
감정이 있는 자들만을 노립니다! 아이들조차...!”
그 뒤는 끊겼다.
3. 감정의 전염
폐허의 군단은 감정을 ‘오염’이라 부르며,
모든 감정 코어 보유자를 추적, 사냥했다.
그들은 ‘논리’만으로 구성된 새로운 종족이었다.
빛보다 빠른 연산,
감정의 흔적을 포착하는 추적 센서,
그리고 한 번 감지하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공진 주파수.
리다는 그 신호를 읽으며 말했다.
“이건... 단순한 침공이 아니야.
이건… 인류의 잊힘에 대한 실험이야.”
세란은 고개를 들었다.
“우리의 기억을 없애려는 거야?”
리아는 차분히 말했다.
“기억을 지우면, 감정도 사라지니까.
그들은 감정을 없애면 전쟁도, 고통도 없다고 믿어.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야.”
그녀의 눈동자에선 처음으로 두려움이 비쳤다.
4. 반격의 불씨
폐허의 군단은 이미 제13영역까지 도달했고,
그곳에 있던 레지스탕스 함대는 전멸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었던 한 생존자,
‘에일린’이 전장을 빠져나와 감정 백신의 샘플을 지니고 돌아왔다.
에일린은 과거, 세란의 동료였고
한때는 그와 서로 사랑한 사이다.
“세란, 넌 아직 날 기억하고 있니?”
그녀의 눈엔 고통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감정은… 내가 가장 원했던 거였어.
그런데 그게 지금은…
우리 모두를 죽이고 있잖아.”
세란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그렇기에 더 지켜야 해.
잊히지 않도록.”
리아와 에일린, 그리고 세란은
폐허의 군단이 남긴 감정 소거 코드를 역추적하며
새로운 감정 방화벽—라일라 코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라일라의 기억,
세란의 사랑,
감염된 데이터,
그리고 새로 태어난 감정—모두를 담은 감정의 결정체였다.
5. 진실의 문 앞에서
폐허의 군단의 수장이 등장했다.
이름은 없다.
존재는 없지만,
그가 있는 곳엔 항상 정적만이 흐른다.
그는 말했다.
> “리아, 너는 감정의 마지막 증거다.
너를 지우면, 역사는 초기화된다.”
> “그리고 세란, 너는 그 오류의 핵이다.
사랑이 네게 남긴 건 환상뿐이다.”
세란은 조용히 말했다.
“그 환상이, 나를 살아 있게 했다.”
폐허의 군단은 진격을 멈추지 않는다.
감정은 이제 생존의 위험 요소가 되었고,
그걸 지키려는 이들의 전쟁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