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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Nov 21. 2022

노르망디의 빛 사냥꾼, 클로드 모네

나는 비행기에 오를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만들어내는데 재능이 있다. 인상파 화가들이 사랑한 노르망디로 향할 구실을 만들었다. 서른 중반인데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일상에 닻을 단단하게 내리느라 분주한데 나는 부둣가에서 정박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렇다고 부두를 떠나지도 못한 채 나아갈 방향만 잃었다. 다만 인상파 화가들이 좇았던 빛처럼 여러 가지 스펙트럼이 내 안에서 퍼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노르망디에 가면 내면에서 충돌하는 나와 결별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흔들리는 이유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구실이었지만, 나를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첫 목적지는 ‘모네의 절벽’이 있는 에트르타였다. 파리에서 노르망디로 가는 길에는 생생한 초록 목초지가 펼쳐졌다. 안개가 옅게 대기 전체를 감싸고, 가는 비가 흩뿌렸다. 내 마음 같은 날씨였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그림에서 보고 또 본 절벽을 보러 서둘러 나갔다. 9월이었지만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 거리는 쓸쓸한 갯벌 같았다. 바람에 섞인 안개비를 맞으며 절벽 위로 올라갔다.      


사물은 하나의 모습으로 고정되지 않는다. 날씨, 햇빛, 시간, 심지어 기분 등에 따라 다른 모습이 된다. 다만 우리가 하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할 뿐이다. 모네는 이 사실을 알고,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잠시도 멈추지 않는 빛을 사냥했다. 소설가 모파상은 에트르타에서 모네를 ‘사냥꾼’이라고 묘사했다.    

  

“모네는 화가가 아니라 사냥꾼이었다. (…)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상태에 따라 캔버스들을 가지고 거거나 두고 다녔다. 태양과 그림자를 주시하면서 기다렸다. 몇 차례의 붓질로 수직으로 쏟아지는 햇살이나 떠가는 구름을 포착했고 그것을 재빨리 캔버스에 옮겼다.”(라영환, 《모네, 일상을 기적으로》, 133)    

 

모네에게 색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빛이 망막에 들어오면 보이는 것이었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절벽도 마찬가지였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절벽은 움직이지 않는 확고한 지형지물이라면, 올라가서 두 발로 딛자 절벽의 웅장함은 해체되었다. 위에서 굽어보면 절벽 전체가 보이지 않아서 만만하게 다가왔다. 올려다볼 때만큼 압도적이지 않아서 시시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에트르타 절벽 이미지를 머릿속에 단단히 새기고, 상상을 덧대어 신비로운 세계로 입장하는 문으로 생각했던 건 아닐까?    

절벽에서 내려와서 해변을 걸었다. 안개비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해가 수평선으로 숨을 준비를 했다. 습하고 눅눅했던 공기가 물러나고 분홍빛 노을이 해변에 내려와서 절벽을 쓰다듬었다. 모네에게 성큼 다가가는 순간이었다. 같은 장소와 사물도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을 포착하길 갈망했던 모네처럼 나는 에트르타 해변에서 춤추는 빛을 맹렬하게 좇았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 있던 절벽이 다른 시간, 다른 날씨에서는 전혀 다른 절벽이 되었다.      


어떤 상황으로 뛰어 들어갈 때 품었던 기개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고 믿는 것은, 어쩌면 옳지 않았다. 내가 뛰어든 일과 상황에서 일관성은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에트르타 절벽처럼 확고한 지형지물도 같은 날에조차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절벽의 본질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에트르타 절벽은 ‘우리가 부정하고 싶은 모습도 나’라고 알려주었다. 나의 본질은 긍정적 모습과 부정적 모습의 파편이 모여서 이루어졌다고. 


1890년 10월 7일 모네는 자신의 전기를 쓴 구스타프 제프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하나의 대상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해가 짧아서 그것을 다 화폭에 담아낼 수가 없습니다. 내 작업 속도가 그 변화하는 속도를 담아내지 못한다는 것이 나를 좌절케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뜁니다.” (라영환, 《모네, 일상을 기적으로》, 29)


좌절 앞에서 노력을 쏟고 발전을 찾아내서 가슴이 뛰는 모네의 기운을 받고, 루앙으로 향했다. 루앙에는 <대성당 연작> 시리즈의 주인공인 대성당이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높은 첨탑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고개를 하늘로 한껏 치켜들어야 첨탑 끝을 볼 수 있었다. 성당 가까이서 웅장함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헛된 욕심에 허덕였다. 이 각도 저 각도에서 대성당 전체를 찍으려고 발버둥 치다 내 능력 밖인 것을 깨닫고,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눈과 마음에 오롯이 담는 것이 최선이었다.     

 

대성당 앞에서 모네가 끌렸을 모습을 상상했다. 1892년 성당 맞은편에 있는 상가 2층에 석 달간 머무르면서 하루에 12시간 가까이 작업했다. 9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작업했다고 한다. 성당이 아니라 빛의 변화를 담으려는 시도였다. 회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모네가 본 대성당을 볼 수 없었다. 대신 나만의 성당을 보았다. 천천히 걸어서 성당을 한 바퀴 돌았다. 몇백 년 동안 같은 자리에 버틴 성당도 날씨에 따라, 어디에서 보는지에 따라,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확실함이 나에게만 없다고 믿은 건 착각이 아닐까? 확실함은 어디에도 없는데 나는 없는 것을 굳게 믿고, 휘둘리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모네가 말년을 보냈던 지베르니에 갔다. 정원에 발을 들여놓자 살아있는 수련 밭이 반갑게 맞이했다. 여기저기에 버드나무 잎이 늘어져 있었고, 수련과 이름 모를 식물들이 활기찬 교향곡을 연주했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머물 때는 시력이 많이 나빠졌던 시기였다. 안경의 도움을 받아도 사물을 희미하게만 볼 수 있었다. 이 시기 그림을 보면, 그의 시력 탓인지 붓질이 달라졌다. 색과 선이 경계 없이 넘나들었다. 마치 뿌연 시야처럼 그림에서도 피사체의 구체적 모습이 사라졌다. 구체성이 사라진 사물이야말로 사물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모네는 뿌옇게 보이는 시야에 마음을 더해 수련을 그렸다. 마음의 눈으로 보고 그린 수련 연작 앞에 섰을 때 오만가지 상념이 떠오르는 이유는 ‘희미함’ 때문이 아닐까. 계절에 따라, 기후에 따라, 관리하는 방법에 따라 수련은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 수련이라는 이름 하나로 불리지만 개체 자체는 모두 다른 모습이다. 사람이란 같은 카테고리로 분류되지만, 같은 인생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누구나 계절과 기후의 변화에 노출되고, 그 파장을 겪는다.      


노르망디로 떠날 구실을 만들었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계절과 날씨에 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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