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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Aug 23. 2023

로망을 대하는 태도

영화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

로망은 ‘실현하고 싶은 소망이나 이상’이다. 로망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사춘기 시절 내 로망은 요트에서 사는 것이었다. 욕망은 매개를 통해 이루어지고, 맥가이버는 내 로망의 매개자였다. 주말이면 TV 미니 시리즈 <맥가이버>가 내 심장을 쥐고 흔들었다. 경쾌한 음악이 흐르며 맥가이버의 손만 닿으면 고장 난 물건은 깔끔하게 다시 작동했다. 만물박사이자 해결사 맥가이버는 요트에서 살았다. 성인이 되어서 내 로망의 실체를 알고 접었다. 일단 요트값이 무척 비싸다. 요트를 사더라도 항구에 정박시키면 여러 가지 행정적 절차도 복잡하다. 게다가 요트 관리 비용도 한 달 치 월급을 훌쩍 잡아먹는다. 월급쟁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로망이었다. 로망은 변형되어 여행만 가면 유람선이란 유람선은 일단 다 타고 본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로망의 타협점을 찾은 셈이다.      


반사회적 꿈만 아니라면 어떤 꿈이라도 환영받을 만하다. 꿈꾸는 것 자체로 엔도르핀이 방출되니까. 꿈꾸는 시간 동안 누구라도 조르바가 된다. 하지만 로망을 진짜 실행하겠다고 나서면 터무니없이 맹목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미시즈 해리스 파리에 가다>의 미시즈 해리스의 로망이 그렇다. 해리스는 전 재산을 다 털어서 디올 드레스를 ‘사겠다’는 로망으로 파리에 간다.  


“해리스 씨 여기 온 이유가 뭐죠? 부자와 귀족들이야 보이기 위한 삶이 중요하다지만 댁이 그토록 원하는 디올 드레스를 입고 어디 갈 생각이에요? 그걸 입고 마루를 닦거나 옷장 속에 모셔 둘 생각인가요?”    

 

해리스는 드레스를 ‘사겠다’고 하지 입겠다고 하지 않는다. 해리스는 왜 디올 드레스를 소유할 꿈을 꾸게 되었을까? 영화 배경은 1957년이다. 21세기 언어로 번역하면 최저 시급을 받으며 이 집 저 집에서 청소하고 10평 원룸 월세에 산다. 그런데 전 재산을 긁어모아서 파리 오뜨 꾸뛰르에 가서 디올 드레스를 사겠다는 말이다.      


“디올 드레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줘야 해요. 그게 가능하시겠어요? 이런 말씀드려서 죄송하지만 그쪽은 아무것도 아니시잖아요. 이 드레스에 걸맞은 삶을 살 수 있겠어요?”

“내 꿈이고 내 돈도 남의 돈과 똑같아요.”     


예전의 나라면 해리스의 꿈을 영화 속 다른 인물들처럼 비웃었을지 모르겠다. 지금은 고객 맞춤 제작으로 세상에 단 한 벌만 있는 드레스를 갖고 싶은 해리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 누구나 꿈을 꿀 자유가 있다. 설령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꿈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왜 꿈을 꾸나? 현실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극적 해피엔딩이 아니다. 시작과 결말도 불분명하고 현실을 바꿀 기회도 드물다. 어떤 날에는 일상에서 멀찌감치 달아나서 ‘다른’ 내가 되고 싶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더라도 말이다.

     

해리스는 2차 세계전쟁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며 청소부로 일한다. 언젠가 남편이 꼭 돌아올 거라는 믿음으로 시간을 견뎌냈다. 하지만 어느 날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해리스에게 남편은 ‘지금과는 다른 미래’였다. 내가 ‘이 일만 끝나면 적금을 깨서라도 방콕에 다녀와야겠어. 호텔 수영장 선베드에 누워 느긋하게 오후를 보내야지.’하면서 버티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현재 마음에 안 들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일을 참을 수 있는 것은 이 오르막만 넘으면 다른 시간이 펼쳐질 거라는 상상 덕분이다. 상상 속의 다른 시간, 다른 미래가 현재로 성큼 들어오면 어떨까?


해리스는 우여곡절 끝에 디올의 오뜨 꾸뛰르에서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샀다. 해리스의 몸에 맞추는 피팅 작업이 어쩌면 디올 드레스의 본질이다. 해리스는 피팅을 위해 일주일 내내 디올 매장으로 출근(?)해서 디올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늘을 본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드레스의 품위 뒤에는 부자들의 변덕과 갑질이 꿰매져 있다. 디올의 명성에는 모든 직원의 강도 높은 감정 노동이 스며있다.     

 

“우린 동화와 비슷해요. 아름답지만 허상이죠.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디올 같은 곳에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그 드레스를 보고 꿈과 동화를 떠올렸거든요.”      


어릴 때 결말이 궁금해서 동화책을 손에 잡으면 후딱 읽어치우는 편이었는데 책을 덮고 나면 허무했다. ‘행복하게 오래 살았습니다.’였다. 실컷 꿈을 꾸게 하던 인물이 갑자기 사라졌다. 어린 나에게 ‘행복’은 추상적이었다. 고작 십여 년을 살았는데 ‘오래’도 추상적이었다. 어린 눈에는 스물일곱 살도 오래 사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꼬마인 내게 행복은 새로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나는 것이었다. 규율 많은 학교에서는 하기 싫은 것 투성이었다. 잡곡밥 도시락도 싫었고, 우유 급식도 싫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말도 못 할 고통이었다. 동화 속에는 일상이 생략된 채 모험만 가득했다. 나도 일상이 제거된 모험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해리스도 일상이 제거된 무언가가 필요했을 것이다. 남편의 죽음으로 꿈꾸었던 미래는 끝났다. 남은 것은 흘려보낸 세월이다. 해리스는 전 재산을 바친 사연(?) 가득한 디올 드레스를 가지고 집에 돌아온다. 꿈을 이루었다. 이제 인생의 반전을 만들어줄 기다림도 없고, 보상도 없다. 오히려 정체 모를 무기력이 일상을 덮는다. 똑같은 집에 살고 똑같은 일을 한다. 드레스는 해리스의 일상에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해리스는 시간과 돈만 탕진한 어리석은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꿈을 꾸고 실행한 후 깨어난 사람은 꿈을 꾸기만 한 사람과는 다르다. 꿈에서 깨어난 사람은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서서 두려울 게 없다. 해리스는 비인격적으로 대하는 고객에게 파업을 선언한다. 더는 먼지 같은 존재로 취급하는 것을 참지 않기로 결심한다. 과거에는 없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로망을 이루었기 때문이 아닐까?


드레스에 걸맞은 삶을 살 수 없는 것, 다시 말해 내 좌표를 아는 것도 삶을 이끄는 힘이다. 모든 변화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부당한 고용인에게 쩔쩔매는 대신 권리를 소리 내어 말하는 당당함이야말로 ‘다른’ 해리스가 아닐까?     


“우리에겐 꿈이 필요해요. 그 어느 때 보다요.”     


황보름 작가의 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승우는 직장인이고 블로거 5년 차로 시인이다. 그에게 행복은 ‘시간을 잘 쓰는 삶’이다. 행복이란 말 자체는 디올 드레스 같은 구석이 있다. 자기 언어로 행복을 정의할 수 있을 때 행복은 실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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