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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알 Mar 21. 2023

자기 긍정이 중요한 이유

영화 <더 웨일> 리뷰

내게는 스스로 자신의 기준이 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엘레나 페란테, 『나폴리 4부작』     


<더 웨일>의 찰리는 272kg의 초고도 비만으로 죽어가고 있다. 즐겁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기조차 버겁다. 울고 웃는 무의식적 행동에도 기도가 막힐 정도로 살이 쪘다. 그럼에도 그는 병원에 가기를 거부하고, 죽음에 하루하루 다가간다. 그는 왜 삶을 포기했나?    

 

-왜 그렇게 살이 찐 거예요?

-나와 가까운 사람이 죽었기 때문이야. 

-남자친구.

-파트너.     


찰리는 게이이고, 8년 전에 딸까지 포기하고, 사랑하는 파트너를 선택했다. 자신의 사랑은 절망에 빠진 파트너를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새생명종교에 빠진 파트너는 실종된 지 며칠 만에 호숫가에서 발견된다. 찰리는, 사랑하는 파트너가 죽음을 생각한 것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신의 사랑도 마음이 지옥을 헤매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찰리를 자기부정으로 이끈다. 찰리는 딸과 아내의 삶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한 선택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했다.      


스위스 작가이자 철학자인 페터 비에리는 『삶의 품격』에서 개인이 주체로서 갖는 존엄에 대해 말한다. 주체는 경험의 중심체이고, 경험을 통해 우리는 특정한 방식으로 인간이라고 실감한다. 경험은 욕구와 맞물리고, 욕구는 내면 깊은 곳에 있는 나침반이다. 감정은 욕구와 상관관계가 있다. 현재 모습과 되고 싶은 모습 사이에 갈등을 겪고, 되고 싶은 대로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도 주체의 본질이다. 주체로서 우리는 이용당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 안에 목적이 있는 존재로 받아들이길 원한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수단이 되기도 하고, 우리의 권리를 기대하기도 한다.      


페터 비에리의 말을 빌리면, 찰리는 자신의 가치를 잃었다. 그 결과 폭식하고, 생명을 위협하는 초고도 비만에 이르렀다. 인생의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 딸 엘리를 만난다. 8년 만이다. 엘리는 학교와 부모는 물론 세상을 향한 분노로 가득하다. 찰리 집에서 처음 만난 새생명 선교사 토마스에게도 욕설을 쏟아낸다.    

  

-시는 과장되고, 멍청하고, 반복적이야. 나에 대한 은유가 깊을지라도 실제로는 쓰레기일 뿐이야. 현실에서 그는 19세기의 가치 없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종교가 좋은 점은 모든 사람이 멍청하다고 가정하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점이야. 싫은 점은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면 갑자기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들이 멍청한 죄인이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들은 더 낫게 되고, 재수 없는 사람이 되지.      


엘리와 찰리는 겉보기에 다르지만, 두 사람은 자기 긍정을 버린 세계에서 허우적댄다. 자기 긍정을 잃어버려 살아갈 목적을 찾지 못한다. 엘리는 버림받은 경험 탓에 세상을 부정할 뿐 아니라 자신의 존재 자체도 부정한다. 찰리는 자신이 버린 가족에 대한 죄의식으로 타인의 삶,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찰리는 무조건적 사랑이 연인을, 사랑하는 딸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엘리가 존재 자체로 얼마나 빛나는지 알려주려고 한다.      


-너는 멋지고, 아름다워. 

-엘 리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있었을까 봐 걱정이야.     


이 말은 찰리 자신에게도 유효한 말이다. 하지만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는다. 타인의 절대적 지지와 긍정이 타인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타인의 인정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쓸모없는 것처럼 보인다. 찰리는 스스로를 하찮고 지루한 존재라고 여기지만, 엘리는 다르기를 바란다. 자신을 긍정하고, 빛나게 세상을 보기를 간절히 원한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찰리를 돌보는 간호사 리즈가 한 말이다. 


엘 리가 지적했듯이 신도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구원은 신의 존재가 아니라 ‘신을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자기 긍정에서 나온다. 자기 긍정은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  자신의 쓸모의 한계를 인정해도 무력감에 빠지지지 말아야 한다. 찰리는 최선을 다했지만, 엘리도 연인도 구하지 못했다. 찰리는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한 사람이지 실패자가 아니다. 찰리는 이 사실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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