⁸우리는 말을 많이 하지만 '대화'는 별로 안 하는 거 아시나요? '말talk'은 내 감정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단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화conversation'은 두 사람이나 작은 그룹이 바로 말talk를 하는 것이죠. 다시 말해 대화는 청자가 있을 때 완성됩니다.
하루에도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합니다. 가까이에는 가족부터 바깥에서 동료, 친구, 지인 등등. 하지만 오늘 좋은 대화를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시간을 보냈을 때 우리는 그 어떤 비싼 음식을 먹었을 때보다 배부르다고 느낍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배가 부를 때 짜증이 난 적이 있을 겁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후에는 기분 좋게 배가 부르죠.
대화도 이와 비슷합니다. 상대 혼자 떠드는 '말'을 들으면 기가 빨린 적이 있을 거예요. 내 입장에서는 대화가 아니었는데 헤어질 때 상대는 "오늘 정말 즐거웠어." 하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었을 거고요.
저는 글쓰기 강의에서 각자 살아온 이야기,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느낀 점 등을 말하고 듣는 시간을 반드시 할애합니다. 글쓰기는 주변을 관찰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만 마구잡이로 써 내려간 글은 대화할 때 마치 상대와 호흡을 맞추지 않고 혼자 실컷 떠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글을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느껴져 읽을 때 몹시 힘듭니다.
혼자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글이 아니라 내 감정이나 생각을 잘 전달하는 글은 듣기에서 출발합니다. 특히 글쓰기 강의는 일방향의 지식 전달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공적으로 발언하는 시간입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수업 회차가 쌓일수록 내적 친밀감이 생기곤 합니다. 더불어 타인이 사는 방식을 알게 되고 내 삶을 돌아보면서 타인의 삶도 내 삶도 존중하는 법을 알게 되고요. 저는 이 또한 나를 돌보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나를 돌보는 법>은 1인가구나 홀로 사는 사람에게만 필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모두는 자신을 돌보아야 합니다. 돌봄은 타인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셀프니까요. 저는 한국인의 일반적 생애 주기에서 벗어나서 살고 있지만, 일하면서 운이 좋게도 다양한 연령층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제가 가 보지 않은 길, 겪지 않은 경험을 간접적으로 겪습니다.
지난 토요일 강의에 수강생 한 분이 7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수업에 오셨습니다. 저에게 양해를 구하셨는데 저는 오히려 결석하지 않고 나와주셔서 너무 고맙더라고요. 토요일을 육아 휴무일로 지정해서 남편이 아이를 보는 날이라 강의에 참석을 하는데 이날은 사정이 있었겠죠. MZ들의 양육 풍속이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을 눈으로 목격합니다. (몇 분 더 육아 휴일로 참여하는 분이 있습니다)
아무튼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대체적인 선택은 수업에 결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Y 님은 결석 대신 아이를 안고 왔습니다. 그러고는 두 시간 가까이 서서 수업을 들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얼르면서 수업을 듣는 Y 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제 수업이 명강의여서 놓치고 싶지 않아서, 라면 좋겠지만!^^ 그건 작은 부분일 거예요. Y 님의 마음을 움직인 큰 부분은 정체성 혼란 탓입니다. 현재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느라 자기 삶이 낯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고등학교의 지시적 삶에 익숙하다 대학에 가면 자율이 갑자기 일상을 습격하듯이요.
Y 님은 출산 전에 직장에서 큰 프로젝트를 담당하다 출산 후에 아이와 시간을 대부분 보내고 있습니다. 출산을 경험한 분들은 모두 겪는 낯섦이죠. 그 낯섦 속에서도 '나'에 대한 의식이 두 눈을 반짝거리고 있어서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결심이 보였습니다.
Y 님이 보여주었듯이, 나를 돌보는 일은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각자만의 방식으로 나를 돌볼 텐데 '내가 즐겁고, 관심 있는 것'을 하기 위해 시간을 정해놓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단단하게 홀로 설 수 있어야 더불어 살기도 잘 할 수 있으니까요.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나를 돌보고 있나요? 저는 제가 가 보지 않은 육아, 결혼 생활, 은퇴와 노년 등을 구체적으로 다각도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어요.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면서요. 이것이 꼰대가 되지 않도록 저를 돌보는 법인 것도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