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손 꼭잡고, 새로운 '시간'을 시작합니다.
2020년 4월 봄날, 1년 후에 있을 '21년 4월 10일' 결혼식 계약을 했다.
결혼식을 안 하는 결혼을 늘 꿈꾸었지만, 문뜩 당시에 최근 결혼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신기한 기분을 느꼈다.
오랜 세월 동안 만나왔던 다양하고 소중한 인연들이 한 자리에 모여, 그 순간을 신랑 신부의 행복을 한 마음으로 축하하고 응원해주는 그 특별하고 낭만적인 순간.
나는 그 모습이 잠깐 부러웠던 것 같다.
식장을 예약하고, 쿵쾅 거리는 심장소리와 함께 몇 날 며칠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평소 좋아하던 '어바웃 타임'영화를 몇 번이고 돌려보았고, 비 오는 날의 화려한 결혼식이 꿈속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처음이었다.
결혼을 하기 위해서 뭘 준비해야 하는지, 두 사람의 삶이 합쳐지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나는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도 몰랐다. 결혼은 참 복잡하고, 어려운 프로젝트 었다.
엑셀로 정리를 시도하다가도 몇 번이고 포기했던 굉장히 난도 높은 녀석이었고, 결혼식 전 날 까지도 나는 예상 불가한 시나리오가 반복되고 수많은 예외 케이스들로 멘붕의 연속이었다.
모든 것이 다 처음이었던 새로운 일상의 1년 '시간'들이었다.
대학시절 유럽여행으로 피렌체를 갔을 때,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꼭 이곳을 같이 다시 방문해야지.라고 다짐했었다. 그리고 늘 신혼여행지로 그곳을 꿈꾸었다.
내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속상했던 것은 피렌체를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꿈이 언제쯤 이룰 수 있을지도 예상할 수 없음이 가장 속이 상하고 슬펐다.
결국 신혼여행은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흔한 신혼여행지 었지만 일상과 분리가 되어 금방 돌아갈 수 없는 낯선 땅 위에서 기분을 느껴보고 싶었고, 오랜 버킷리스트 었던 한라산 정상 등반을 평생의 배우자와 함께 이뤄내고 싶었다.
평소의 기억과 분리될 수 있는 조금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으면 했다.
결혼식에 대한 거창한 로망은 없었다. 나는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보다는, 그 무대를 환하게 비춰주는 조명을 쏘는 것이 더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었을까, 나는 짧은 몇 시간의 결혼식보다는 직접 만든 청첩장을 소중한 공간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그 순간들이 더 즐겁고 설레었다.
코로나로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오랜 시간 꾸며온 석준과 나의 공간에서 직접 만든 요리와 함께 가슴 떨리는 소식을 전하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순간들이 다 좋았고, 그때 나눴던 많은 대화들이 마음에 남았다. 내 주변, 그리고 석준 오빠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음에 감사하고 행복했다.
결혼할 사람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당시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딱 10%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수많은 현실과 마주하면서 평소에 몰랐던 수많은 모습들과 마주하였다. 나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마 석준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평소 나는 되도록이면 상대에서 맞춰주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랬던 내가, 앞으로 평생 함께 살 배우자와의 가치를 맞춰가는 과정은 어렵고 낯설었다. 순간의 생각과 판단을 맞춰주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것이 곧 나의 삶의 방향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평소와 달리 신중하고 싶었고 충분한 대화로 생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나는 내 생각을 전하고, 중간지점을 찾기 위해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참 서툴렀던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많이 느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일부 지나고 보니 참 어려운 시간들이기도 했었지만, 그 시간들로 인해 우리의 거리가 더 가까워지고 '가족'이 됨을 체감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결혼식 5일 전부터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평생 느껴보지 못한 감정과 기분이었던 것 같다.
친구들한테 참 많은 연락이 왔다. 누구보다 나를 잘 알기에,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일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 걱정하는 마음이 한가득 담겨있었다.
나는 수면유도제를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고, 결국 결혼식 전 날에도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메이크업샵으로 이동했다.
나의 결혼식은 체감 30분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 생각나는 장면은,
신부대기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촌언니를 처음 마주했을 때 첫 번째 울컥.
신부대기실에서 계단을 타고 무대로 내려가기 직전, 회사 사수님의 응원을 듣고 두 번째 울컥.
신부 입장을 앞두고, 계단 아래서 나를 올려다보고 계시는 아빠의 모습에 세 번째 울컥.
신부 입장 전, 신부 측 하객석을 내려다보며 내가 좋아하고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있다는 사실에 네 번째 울컥.
친구가 읽어주는 편지 내용과 떨리는 목소리에서 다섯 번째 울컥.
그리고 엄마의 온기가 느껴진 그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울컥울컥.
정신없음과 울컥의 연속이었지만 '행복'했다. 이 기분을 느낄 수 있음에 참 감사한 하루 었다.
오랜만에 참 10대 같았던 느리고 길었던 시간들이었다.
늘 새로운 것의 연속이었고, 멈춰있거나 익숙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참 빠르게 다른 사람이 되었다. 성장의 속도가 참 빨랐고,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버겁기도 했다.
늘 그리던 5년 후, 10년 후의 삶의 모습이 이토록 구체화된 것도 처음이었고,
엄마 아빠가 살아온 지난 삶들에 대해 공감이 되기도 한순간들이었다.
또 다른 가족이 생긴다는 것. 다른 두 개의 삶이 합쳐진다는 것.
참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앞으로 더 많은 새로운 '시간'들이 나의 삶을 채워져 가겠지만, 이번 1년의 시간은 최근 10년간 경험한 수많은 시간들 중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특별한 '시간'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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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4월의 '작작'은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