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를 줄 알았다.
2년 만에 미용실 거울 앞에 앉았다.
가는 모발, 엄청난 숯, 악곱슬, 가는 모발로 늘 상해있는 머릿결.. 미용실 기피대상 1호는 바로 나이지 않을까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인지 미용실은 많이 가야 1년에 2번.. 정말 최악의 상황에 가는 편이었고, 소소한 손재주 기술을 살려 집에서 하는 셀프미용의 달인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미용실에서 욕먹을 바엔 그냥 혼자 하자가 되었다.)
그러다가 임신을 했다. 임신을 하고서 미용실 출입을 멈췄고, 출산을 하고서는 아이 옆에 떨어지지 못해 부스스한 곱슬머리를 질끈 묶고는 버텼다. 셀프로 무언갈 하겠다는 생각 또한 출산과 동시에 멈춰버렸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 맞는 걸까 의심을 하게 되는 나의 머리 상태를 보고는 미용사 또한 몹시 놀랐다. 데스크에서 회원검색을 하시는 것인지 키보드를 몇 번 두들기더니
“마지막 오셨던 게 3월이네요?”
“제가요? 저 3월에 안 왔는데…”
“아.. 작년 3.. 아니 재작년 3월이네요?!”
“네.. 애 낳고 왔네요.”
거울 앞 내 모습이 참으로 자연인이었다.
언제부턴가 화장 안 한 내 얼굴이 더 익숙해졌다. 생얼 자신감을 높여주던 반영구시술도 안 한 지 오래되어 자국만 남았다. 부스스한 머리와 대충 입고 나온 티셔츠와 운동복바지.. 옛날엔 이런 차림으로는 집 밖에는 나가지고 못했는데, 이젠 이 정도면 나름 꾸민 축에 속하다니.. 이렇게 변해버린 내 모습이 참으로 놀랍다.
미용실에 가면 늘 듣곤 하는 단골 멘트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머리카락이 너무 얇아서 매직이 잘 안 될 수 있어요.”
“와 숯이 진짜 많네요.”
“너무 상해서 다 자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제는 너무 익숙한 멘트들인데, 나는 그 속에서 평소와 다른 생각이 시작되었다.
‘서아도 곱슬머리일까? 곱슬이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
‘서아는 왜 숯이 없을까? 나중에 크면 좀 많아지려나.’
‘약품 냄새가 서아한테 안 좋을 것 같은데.. 미용실에 괜히 왔나?’
‘나중에 내가 직접 매직해주겠다고 하면 서아가 좋아할까?’
‘서아는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아빠랑 밥 먹고 있으려나’
서아와 떨어진 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나는 또 나의 아가 생각에 빠져 끝없는 꼬리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3시간 넘게 미용실에 갇혀있다가, 2년 만에 겨우 찰랑거림을 되찾은 머리카락과 함께 밖으로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서아의 안부를 묻는다.
그렇다. 나는 나의 아가와 떨어지지 못하는 불리불안을 겪고 있다.
내가 아기를 낳을지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아기를 너무 사랑해서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나의 엄마가 그러했기에, 나는 그 모습이 좋지 않았다. 엄마의 세상에서 어느 순간 엄마보다 내 존재가 커져버렸다는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슬펐다. 그리고 엄마가 안쓰러웠다. 내 아기가 나와 같은 기분을 느끼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 무서웠다. 그런데 결국은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모습과는 다르게 처음 임신을 했을 땐 ‘와, 나는 모성애라는 게 없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나만 생각하는 쿨한 엄마가 되겠구나’ 생각하며 지냈다. 넷플릭스 좀비 영화를 보며 태교를 했고, 매일 과자와 빵을 입에 달고 살았다. 임신을 방패 삼아 원 없이 먹고, 뒹굴고, 놀고, 쉬면서 나태함의 끝을 경험했다. 그 결과는 20kg이 넘게 쪄버린 몸뚱이와, 몸속 깊숙하게 곳곳이 스며들어버린 ‘게으름’ 습관들이었다. 이 상태로 내가 애를 낳아도 되는 것일까 의심을 했고, 이런 내 모습을 아기도 느꼈던 것일까.. 예정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결국엔 촉진제로 유도 분만을 했다. 자궁문이 다 열렸는데도 아가는 나올 생각을 안 했고, 정말 온 힘을 다해 세상밖으로 밀어내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 아가도, 내가 엄마라는 게 살짝 무서웠던 것 같다.
산후우울증이 정말 크게 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맨날 뒹굴고 놀고먹던 베짱이에게 갑자기 신비의 포켓몬을 가져와서 사람이 될 수 있게 진화시키라고 했으니.. 그 엄청난 책임감과 공포를 겪고도 우울증이 안 왔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같다. 신비의 포켓몬은 어떤 것을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도 몰랐고, 만지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이 작고 연약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산부인과 병실과 산후조리원에 있는 내내 그 신비의 포켓몬 발바닥에는 내 이름 석자가 적혀있었다. 남편이름도 아니다. 내 이름 석자다. 나는 분명 여기 있는데, 신생아 실에도 내 이름을 달고 있는 생명이 누워있다. 제2의 나일까, 나의 분신일까, 아니면 앞으로 내가 끌어안아야 할 우주일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벅차고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산후조리원에서 매일 밤을 울었다. 그 와중에 남편이 코로나에 걸려 면회를 오지 못했고, 나는 그 짧은 2주 동안 내 인생 통틀어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 눈물에는 ‘후회’의 감정은 단 1%도 담기지 않았었다. 두부(서아의 태명이다)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존재였고, 두부가 내 품에 안길 땐 정말 이렇게 예쁜 아기를 내 아기라고 말해도 되는 걸까 싶었다. 모자동실시간 내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숨소리하나까지 눈과 마음에 담았다. 이런 벅찬 사랑스러움은 처음 경험하는 것이었다. 나의 눈물에는 게으름에 대한 자책과 내 안에 남아있는 어린 마음들과의 이별이 담겨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조리원에서 하염없이 울면도. 맘마주기, 트림시키기, 기저귀갈기, 목욕시키기 등 신비 포켓몬을 다루는 도감을 탈탈 털어 익히면서, 진짜 엄마가 되어 조리원을 출소했다.
조리원에서 서아와 함께 처음 집으로 오던 날, 남편이 내비게이션을 잘못 봐서 1시간가량을 길거리에서 떠돌았다. 바깥세상은 바이러스 투성이고 그 무서운 세상에 서아를 1시간 동안이나 노출시키다니… 나는 나의 아가를 힘들게 하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처단하겠다는 마음으로 남편을 노려봤던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