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도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증발해 버렸다.
2주간의 조리원 생활이 끝이 났고, 서아가 드디어 집에 왔다. 카시트바구니에서 서아를 꺼내고, 아기 침대에 눕히는 그 짧은 순간동안에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조리원에서 나름 많은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전은 처참했다. 코로나 격리생활로 아가 근처에도 오지 못했던 남편은 오죽했을까. 내가 엄마가 맞는 걸까 싶을 정도로, 아기가 낯설고 무서웠다. 언제 울지 모른다는 공포가 온몸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남편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써 태연한 척 오빠 노릇을 해보려 하지만, 이내 실패하고 눈알을 여기저기 쉼 없이 움직이며 결국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다. 적당하게 난감한 상황엔 웃음이 나지만, 진지하게 난감한 상황이 닥치면 웃음이 안 난다. 그냥 모든 순간이 새하얀 백지장이 되어버린다.
서아가 집에 오고 이틀간 남편과 단 둘이서 연구하듯 아기를 봤다. 무한반복되는 맘마와 트림시키기는 어느 정도 적응해 갔지만, 응가타임과 목욕 시간은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머릿속에 아기 말고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는지, 내가 언제 머리를 감았고 양치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이 아기가 지금 잘 자고 있는 게 맞는 것인지, 혹시 불편한 곳은 없는지, 이렇게 자도 되는 것인지... 그냥 모든 것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초 긴장상태의 이틀이 지났다. 그리고 월요일이 되자 구세주 ‘산후 도우미’ 이모님이 초인종을 누르셨다.
모든 것이 술술 풀릴 것이라 기대했다. 이틀간 쪽잠으로 겨우 버텨냈던 나의 체력도, 이틀간 어설프게 씻겨놔서 무언가 불안하고 찜찜했던 아가도 다 괜찮아질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 기나긴 이틀의 시간 동안, 나는 서아와 한 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모님의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고, 괜히 뉴스에 나오는 신생아 학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기를 내버려두고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내가 직접 해야 안심이 되었고, 이모님께는 그저 내 밥 한 끼 잘 차려주시기만을 바랬다. 그러나 그 마저도 밥이 넘어가지 않아 내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는 육아로 인한 피로와 함께 남 눈치로 인한 또 다른 피로를 얻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중도에 산후도우미 지원을 취소했다.
힘들긴 엄청 힘들었다. 나는 출산을 하고 식욕을 잃어 며칠 동안 이온음료만 먹고살 때도 있었다. 매일매일 몸무게가 달라지고, 온몸 근육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불면증도 깊어져 겨우 잘 수 있는 때가 되었을 때도 뜬 눈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계가 왔을 때 친정에 도움을 청하러 갔지만, 결국 내 불안함에 못 이겨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다. 모두가 나서서 이 작은 포켓몬 위해 노력했지만, 나는 늘 똑같은 무게를 견디며 버텼다.
서아의 신생아시절 그 시간을 함께 보냈던 새벽의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피곤함에 꿈 속인지 현실인지 애매한 경계 속에서, 작디작은 아가를 품에 안고 아가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트림을 시키기 위해 품에 안고 속으로 노래 한 곡을 불렀다. 숫자도 세어보았고, 가끔 눈앞에 달력을 외워서 혼자 문제도 내보았다. ‘4월 3일이 무슨 요일이었더라..?’
깊고 복잡한 생각보다는 명료하고 단순한 생각들로 머리를 채웠고, 그 외 나머지 감각들은 온전히 나의 작은 아가를 느끼고 품었다. 늘 수만 가지의 생각을 품고 살던 내가, 한 존재에 몰두해 깊게 빠져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아가를 낳기 전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경험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던 사람인지 다 잊었다. 나는 그저 지금 눈앞에 아가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사랑스러운 서아에 푹 빠져 하루 한 시간을 자며 버티던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급 속도로 빠르게 우울증이 찾아왔다.
출산 전, 늘 점심시간이면 남편에게 카톡이 왔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 뭐 먹었어?’
부모님과의 통화에서도 나는 늘 사랑받는 예쁜 딸이었다.
‘우리 딸 밥 먹었어? 요즘 힘든 일은 없어?’
그러나 서아가 태어나고는 완전히 달라졌다.
‘서아 밥 먹었어?’
‘서아 뭐 해?’
나는 며칠째 한 끼도 못 먹었고, 며칠 째 씻지도 못했고.. 온몸에 올라온 두드러기(호르몬 때문인지 피부병이 심하게 왔다.)로 괴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았다. 나는 분명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나의 존재가 아가에 흡수된 기분이었다. 아기를 낳기 전 내 모습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에서,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는 상황이 닥치니 정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장례식도 없었다. 그냥 처음부터 없던 사람처럼 증발해 버린 것이었다. 내 이름이 김하림인지, 안서아인지 헷갈리는 것 같은 상태. 그냥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 정의할 수 없는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급 속도로 빠르게 찾아온 우울증은 나의 온몸, 온 정신을 빠르게 망쳐버리고 있었다.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불안함이 몰려왔고, 뭔가 모든 것이 끝이난 것 같은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 마음은 내 곁을 지켜주던 남편과 부모님에게 돌아갔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내 상처가 더 크다 느껴 내 말과 행동에 떳떳했다.
남편이 야근을 한다길래 고민하다가 며칠 때 씻지 못한 내 모습이 안쓰러워 서아가 깊게 잠든 타이밍에 맞춰 빠르게 씻어보기로 했다. 서아의 울음소리가 들려 후다닥 밖으로 나와보니 환청이었다. 그 상황이 두 번 정도를 반복되었다. 그리곤 다시 씻어보겠다며 빠르게 화장실로 들어갔다. 또 들려오는 울음소리에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샤워를 했다. 길지 않았다. 고작 5분? 정도의 시간이었다. 마음이 불안했던지라 나도 그냥 물만 뿌리고 나가자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밖으로 나와보니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진짜 서아의 울음소리였던 것이었다. 서아에게 달려가니 배를 덮어놨던 작은 담요가 올라가 서아의 입을 가리고 있었다. 다행히 서아는 괜찮았지만, 결론적으로는 괜찮았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서아 앞에서 소리 내며 울었다. 서아가 위급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자책의 감정이 올라왔고, 자책의 감정 속에서 내 존재가 느껴졌다. 나는 서아가 아닌, 서아와 다른 존재로서 서아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 그런 또 다른 존재였다. 이렇게 내 존재를 인지했다는 것이 슬펐다. 그러면서도 나의 존재를 찾아준 이 작은 아기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의 존재를 일깨워준 것은 작디작은 서아였다. 이 작은 아기가 나를 살게 해 주었다. 나의 존재가 꼭 있어야 함을 느끼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