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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Aug 01. 2021

"자, 이제 당신의 꿈에 대해 말해보세요"

누구냐, 내 인생과 꿈을 판단하려 드는 자가.

"자, 이제 당신의 꿈에 대해 말해보세요."


차갑디 차가운 시멘트로 둘러싸인 작은 방 안에, 금속 재질의 책상 앞에 앉아서 조금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면접관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시퍼런 칼날과 같아 목 뒷덜미에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나는 입을 열었다.


사천에 갔을 때의, 그 아름다웠던 풍경

"저는 베짱이가 되고 싶어요.  SUV를 몰고. 종류는 상관없어요. 저는 차를 잘 모르거든요. 무튼, SUV를 몰고 보조석에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놓고, 뒤쪽에는 통기타를 놓고 여행을 다니며 살아가는 게 제 꿈이죠. 이리저리 세상을 다니면서 좋은 장소에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글도 쓰고 아름다운 장소에 멈춰서는 통기타를 치며 살고 싶은 거예요. 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좋겠죠."

"낭만만 갖고는 살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는 거 알고 계실 텐데요."

"저는 프로그래머이기 때문에, 그렇게 돌아다니면서 디지털 노마드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미니멀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수익을 창출하면서, 사진 생활을 통해 조금씩 책을 만들어서 제가 바라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거든요."


내 앞의 상대의 눈빛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이 녀석은 정말로 대책 없이 답이 없는 녀석이군?'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그때 다른 사람이 몸을 앞으로 숙이며 이야기를 꺼낸다.


"세상이 그렇게 당신 뜻대로만 된다면 좋을 텐데 말이죠."

"세상이 바라는대로만 살려고 하면 그건 또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닌걸요."

"제가 보기에는 뭐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의 생각은 굉장히 이기적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어떤 점이 그럴까요?"

"이력서를 보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으셨고 사회적으로 볼 때에도 뭐 남들만큼 열심히 살아오신 거 같은데 이제 슬슬 가정을 이루시고 이 사회의 일원으로써의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뭐, 제가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열심히 살아온 건 아닌걸요."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 불편한 기색이 감돈다. '저거 생각보다 더한 머저리군.' 그들의 생각이 들리는 것만 같지만 나는 의기소침해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말을 잇는다.


"저는 그렇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인생을 사회의 톱니바퀴의 한 부품으로 살아가느니, 튕겨나가 바닥을 구르는 망가진 부품이 되고 싶습니다. 닳고 닳은 부품이 되어서, 무감각해진 채로 밀면 미는 대로 밀려가며 살아가느니 조금이라도 모난 부분을 유지한 채 바람 불어오면 밀려가기도 하고, 때론 땅에 박혀서 가끔 저항해보기도 하는 그런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전주 한옥마을, 코로나 이전의 풍경.

"타성에 젖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말씀이시군요."

"아뇨, 뭐 그렇게까지 표현하시면 제가 거창한 사람 같게 느껴져서 말이죠. 그냥 제가 행복한 삶을 살고 싶어요."

"지금은 행복하지 않으신가 봅니다?"

"네 맞습니다. 솔직히 이런 자리도 불편하거든요."


그들의 표정에 당혹감이 맴돈다. 면전에서 불편하다고 이야기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에 그들에게 이러한 반응은 생소한 것일 거다. 나는 그들이 스스로 당연하다 여겨 깨닫지 못한 그들의 특권의식을 건드려 볼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사회라는 게 뭐 그렇습니다. 제가 교육을 받거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회적 역할,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은 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실행해야 한다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것이 이런저런 가르침에 대해서 반면교사로 삼을 예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죠. 뭐, 성경에 나와있듯이 자기 눈에 들보도 못 보면서 상대방에게서 티를 빼주겠다느니 마느냐 하느냐 말이죠. 여기 앞에 계신 분들도 저마다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있으시겠지만은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그 일을 수행하고 계시냔 말입니다."


그들의 표정에서 불쾌감이 점차 짙어진다.


"뭐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서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서도, 이 자리는 그런 주제를 위한 자리가 아니기에 넘어가겠습니다만 지금 앞에 계신 분들이 한 사람의 인생을 이래라저래라 할 정도의 권한도 없으시고, 제 인생은 잘못 살고 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는 분들은 아닌 거 같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들이 행복하신가요?"

"저희는 당신에 대해 평가하고자 모인 사람들입니다만"

"명목상은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평가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라고요. 뭐 평가하셔서 제가 그 가이드라인대로 살아간다면 어떤 보상이라도 주실 생각인가요?  열심히 그쪽에서 가이드해주신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계획대로 제가 그 사회적 역할에 올라갈 수 있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사회도 아닌 거 같습니다만은."


잠시 동안 대화는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불편한 침묵 가운데 벽에 걸린 시계에서 초침 소리만 요란하고, 면접은 이렇게 끝나나 싶은 생각이 들 적에 다시금 질문이 이어진다.


"뭐 사회적 역할이나 기능에 대한 이야기는 넘어가 보죠. 그럼 과거사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요?"

"과거사요?"

"꽤나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계셨군요.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유가 있을까요?"

"이유 말씀이신가요?"


서류를 훑어보던 면접관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흠이라도 발견하려는 듯이 집요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부담스럽다.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는가 해서 말이죠. 뭐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저희에게도 낯선 건 아니니 편하게 말씀해주시죠."

"어, 그 말씀은 뭔가 저에 대해서 선입관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말이죠."

"아, 그런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제 입장에서는 피해의식이라도 있으신 게 아닌가 싶은데요."


한방 먹었다. 냉철함을 유지하는 전략을 고수했어야 했는데 잠시 틈을 내주고야 말았군. 상대방의 입가에 승리의 미소가 깃드는 걸 놓치지 않았다. 이제 반격을 할 시간이다.


"피해의식이라니요. 다양한 사람만큼 다양한 기준이 있을 테고 저는 세상에는 사람만큼의 사랑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어떤 형태나 구조로 정립을 해서 분류하는 게 학자들의 취미이자 역할이긴 하지만 세상을 꼭 그렇게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한 구분과 편 나누기가 세상을 더 삭막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

"너무 이상주의 같은데요. "

"뭐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네요. 그렇지만 측정할 수 없는걸 굳이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상적인 생각 아닐까요. "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사람을 만나지 않는 이유라도 따로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세상이 살기 팍팍해져만 가는데,  사람들은 그에 반발하듯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갔다. SNS의 태동과 함께 서로를 향한 인류의 호기심은 정점을 찍었고 이제는 서로를 향한 끝없는 관심은 이제 관심을 넘어 관음으로 변할 정도였고. 사람들은 점점 자기를 드러내는데 과몰입이 되어만 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운데에도 아직도 이웃과의 벽은 높아만 진다. 지독한 패러독스.

"뭐 이유랄께 따로 있을까요. 저는 아직 소울메이트를 찾지 못한 것이라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가수 중에 로켓트리라는 가수가 있어요. 그 가수 노래 중에 '나는 너네 옆집에 살고 싶다'라는 노래가 있는데요. 제목만 들으면 뭔가 오싹할 수도 있는데 가사가 참 좋아요. 아침에 커피 두 잔 내려서 한잔 가져다주고 저녁도 나눠먹고, 음식이 잘 되면 좋은 영화 같이 보면서 나눠먹게 맥주 좀 사 오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가사가 매력적인 노래인데요.  아까 꿈이 뭐냐고 물으셨죠?  아직은 제 꿈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일 뿐이에요.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좋아하는 것을 같이하고 둘의 사랑의 온도를 맞춰가는 것이 제 꿈인 것이죠."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의 아름다움

"상대가 그런 삶을 원하지 않는다면?"

"뭐 그럼 그런 상대가 소울메이트라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랑은 서로를 변화시키려 들지 않는 게 사랑이라 생각하는데요.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사랑해야 한다 생각하거든요. 나로 인해서 상대가 변화하는 걸 원하진 않아요. 하지만 내가 상대를 위해 변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주체의 차이겠죠. 내가 상대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내가 상대를 위해 변화하는 것. 그렇기에 내가 상대를 사랑한다면 맞춰가며 가야겠지요. 하루는 여행을, 하루는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그렇게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거 아닐까 싶네요. 그런 삶을 사는 게 제 꿈이에요."

"그렇게 사시려면 열심히 사셔야겠네요."

"그래 볼까 합니다."


답변을 모두 마친 가운데 면접관들의 표정이 볼만하다. 이런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인 표정으로 서로 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힐끔힐끔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서 좋은 결과가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자리를 떠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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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바른 인생 채용담당자입니다. '21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 면접 결과 안내 드립니다.  30~39 연령대  600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면접에서 아쉽게도 귀하는 선정되지 못했습니다.  () 바른 인생은 맞춤화된 최적의 인생설계를 제시하는 전문화된 기업으로,  사회의 가장 중추의 인력을 양성하는 기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진행된 면접은, 아쉽게도 귀하가 저희 (주) 바른 인생의 채용기준과는 맞지 않았음을 알려드리며, 다음에는 더욱 노력하여 기회가 된다면 (주) 바른 인생 채용기준에 맞는 인재가 되어, 다음 면접에는 우수한 인재로써 함께 미래를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저희가 제시한 삶은 아닐지라도 원하시는 삶을 달성하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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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q373dthX-wI   로켓트리- 나는 너네 옆집에 살고싶다
항상 좋은노래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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