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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희 Jul 20. 2021

바람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바람

골목을 휩쓸고 떠난 바람 뒤에는 누군가의 희미해진 바람만이 남는다.


스산한 소리와 함께 골목을 훑는 바람이 제법 세차다. 그 투박한 손길이 삐걱거리는 가로등을 움켜쥐고 뒤흔든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색 바랜 골목을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회색 고양이가 슬그머니 담벼락을 넘다가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불빛에 잠시 멈춰 선다. 


색 바랜 골목 안에서도 유독 더 바랜 낡고 쇠락하는 장소이자 깊은 수렁과도 같은 무게감을 발산하는 그 지하 단칸방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흐려지는 불빛이 고양이의 관심을 끌었다. 종종 지나가는 길이지만 희미한 불빛과 함께 인기척 같은 게 느껴진 것 같아서 고양이 특유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그 짙은 어둠 속에서, 오직 고양이만 볼 수 있는 형체가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자리를 떠나라고 경고하는 듯하였으나 고양이는 못내 궁금했다.  요즘 들어 견디기 힘들 정도로 한낮이 뜨겁기도 하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기도 하여 종종 얻어먹던 음식도 줄었기 때문에 한동안 머물 곳이 필요했다. 그러던 참에 자신의 구역에서 인기척을 발견했으니 뭔가 얻을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있었다.


살짝 열린 반지하의 창문 사이로 슬쩍 고개를 내밀었을 때 고독과 외로움의 경계에 오랜 시간 젖어있는 생명의 찌꺼기 같은 짙은 상실의 냄새가 가득했다.  그 냄새의 근원은 아무런 미동 없이 누워있고,  바닥에 떨어진 스마트폰이 간헐적으로 희미한 빛을 토해내고 있었을 뿐이다. 


고양이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빛의 근원을 바라보다 이내 흥미를 잃고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사방은 무수히 많은 고지서와 우편봉투로 가득하였고 조금만 발을 잘못 딛어도 당장이라도 무너질 기세로 쌓여있었다. 저것들을 죄다 무너트리고 싶은 충동을 살짝 느꼈지만 아직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기에 조금 더 탐색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주변을 돌아본다.



눅눅한 습기가 흥미를 끌어 그 방향으로 걸어본다. 가까이 다가가자마자 살짝 열린 화장실 문틈 사이로 왈칵 느껴지는 짙은 습기, 그리고 미묘하게 느껴지는 악취. 헛구역질이 나올뻔한 것을 참아내고 뒷걸음질 쳐서 황급히 거리를 벌린다. 그러다 부딪쳤다. 


전신을 타고 도는 소름,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에 있는 존재 특유의 질감, 그것은 딱딱한 형체를 지녔지만 한편으로는 무르고 푸석푸석한 요소도 갖고 있었다.  생보다는 죽음에 더 닿아있는 삶이기에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던 그 감각이었다.   이 존재는 자신을 무생물로 변화시키는 단계에 곧 돌입할 예정이었다.


올해는 유독 치열한 해였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에서 이런 꼴이 되는 건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고, 그날이 멀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발견한 이 생명의 사그라드는 모습은 애써 외면해야 했던 공포를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울었다. 목놓아 울고 할퀴며 울었고, 겁에 질려서 울었다.

울다 지쳐 기진맥진이 되어도 울었고, 밤을 새며 울었고, 누군가의 구둣발에 치여 내장을 토하면서도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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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한복판에서 일어난 슬픈 사건입니다. 어제 오후 8시쯤, 홀로 살던 20대 청년이 지하 단칸방에서 숨진 지 40여 일 만에 발견됐습니다. 고양이가 하루 종일 우는 것이 이상해서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에 의해 발견된 이 청년은 코로나로 인해 장기화된 취업난에 깊은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요즘 들어서 청년들의 고독사가 증가되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책은 매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기에 이와 같은 청년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 조금 더 관심과 대책이 필요해 보입니다. '


'청년의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된 유서에는, 깊은 현실의 수렁 속에서도 작은 희망을 꿈꾸는 바람이 적혀있어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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