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찍는 사람의 영혼까지도 담고 싶다 생각 했었지.
"너 가을 좋아하냐?"
꽃들로 만개한 양묘장에 여기저기 잔뜩 피어난 코스모스가 곧 다가올 가을의 방문을 위해 자신을 물들이고 있다. 바닥에 주저앉아 흔들리는 꽃들을 파인더에 담으려 애쓰던 그 아이를 한참 바라보다가 바람이 잠시 잔잔해진 사이를 틈타 무심코 질문을 던졌다.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점의 잠시 잠깐의 남겨진 공간 가운데,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그녀와 나는 꽃들 가운데 유일한 두 사람이었으며, 바람의 손길이 스치는 곳마다 알록달록한 빛이 물감이 번지듯 피어올랐고 나는 약간은 취한듯한 몽롱한 기분에 무심코 질문을 던지고 말았던 것이다.
"좋아, 선선하고 하늘이 높아. 며칠 전만 해도 무지 더웠는데 지금 이 정도가 딱 좋은 것 같아."
"그러네, 정말 며칠 전만 해도 이런 바람은 꿈도 못 꿨는데."
"응, 매일 이런 날씨면 좋겠어!"
바람이 한차례 휘돌아 부드러운 소리를 만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가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햇살을 나에게 쏘아 될 때, 괜한 질문을 한 거 같아서 얼굴이 코스모스 빛으로 물들 때쯤 그녀가 나를 향해 돌아보며 이야기한다.
"나 좀 찍어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카메라를 들어 올린다. 뷰파인더에 그녀가 맺힌다. 초점 링을 움직여 그녀에게 시선을 맞춘다. 그녀를 제외한 주변이 흐려지면서 세상은 오로지 그녀를 위한 배경이 된다. 수만 번 찍어본 익숙한 구도를 찾아 그녀를 그려내고 셔터에 올라간 검지 손가락, 올린 건 손가락인데 내 검지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카메라와 내가 하나 되는 순간의 완벽한 일치감. 파인더에 그려진 그녀의 표정이 어색함에서 자연스러움으로 변화하는 그 찰나의 순간. 나는 셔터를 눌러 그 순간을 담았다.
카메라가 시간을 멈추어 담아내는 동안, 그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올 때마다 코스모스들이 흔들린다. 아니,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일까. 눈을 깜박여 뭔가 눈가에 맺힌 거 같은 느낌을 지우려고 애쓰는 가운데 그녀가 다가왔다.
"어때, 잘 나왔어?"
미처 사진을 확인하기도 전에 카메라를 가져가 사진을 들여다보는 그녀와,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보는 나. 셔터를 눌렀을 때의 그 감정이 사진에서 흘러나와 그녀가 알아차릴까 조마조마하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사진을 바라보던 그녀는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사진기를 돌려준다.
"배경이 이쁘네."
"배경이 일 다했네, 너도 좀 분발하지 그랬어!"
"사진사가 문제가 아닐까?"
"아니지, 모델이 노오오력이 부족했어 좀 더 노력하도록 해봐!"
"칫"
'이 배경은 네가 있기에 완성될 수 있었어.'라는 말을 꺼내려다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조금은 가볍게 대화를 완성한다. 파인더로 보이는 그 순간의 모든 장면과 구성이 내 마음을 움직였고, 그 움직임에 이끌려 셔터를 눌렀음을 고백하지 못함은 그녀와 나의 마음의 온도가 같음을 확신하지 못함이었다. 또한, 이 관계가 깨지지 않아서 조금 더 그녀의 지금 같은 모습을 담아내고 싶었음이라.
"어, 비 오는 거 아니야? 한 방울 떨어진 거 같은데."
아차, 너무 상념에 빠져있었나.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으려나. 갑작스러운 그녀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빠져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어느새 하늘은 검은 낯빛을 띄며 당장이라도 성질을 낼 듯하다.
"방금 전까지도 괜찮았던 거 같은데 무슨 일 이래."
"그러니까, 얼른 차로 돌아가자. "
"그래그래, 잠시만 카메라 좀 넣고."
부산하게 짐을 정리하고 차로 이동하는 가운데, 빗방울 하나가 카메라 가방에 얹혀있던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후에 쏟아지는 수많은 빗방울들. 빗방울에 취해있는 코스모스들을 뒤로한 채 걷는 듯 뛰는 듯 차량으로 돌아온 우리는 이미 흠뻑 젖어있었고, 시트에 앉아 습기로 차창에 서린 김을 바라본다.
잠시 동안의 정적, 어떤 말을 꺼낼까 고민하고 있던 참에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오랜만에 날씨도 좋고, 사진도 잘 나온 성공적인 데이트였는데 말이지. 마무리가 안 좋네!"
"그러게 말이야. 비 때문에 망쳤네, 뭐 다음에 또 만회할 기회를 주겠지?"
"그럼, 언제든!"
그녀가 나와의 온도가 같았음을 확인해주는 그 순간, 괜한 비 탓을 하면서 나는 당황한 내색을 하지 않고 자연스레 반응하러 애쓴다. 맑은 하늘, 청명했던 그 순간에 명확하지 않았던 우리의 관계는 갑작스레 내린 소나기로 인해 명확해졌다. 그리고 나는 한걸음 내딛는다.
"아까, 그 사진. 주인공은 바로 너였어. "
"나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