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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더하기 Nov 14. 2020

꼭 맞는 위로

  오늘도 사소한 일로 남편과 다퉜다. 안방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이번엔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씩씩대고 있었다. ‘똑똑’ 안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저 들어가도 돼요?” 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잠시 망설이다가 들어오라 했다. 딸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더니 옆으로 쏙 들어와 눕는다. 나를 향해 옆으로 누우며 두 손을 모아 베개와 얼굴 사이에 낀다. “엄마 무엇 때문에 화난 건지 얘기해줄 수 있어요?” 흠칫 놀랐다. 이건 내가 딸에게 자주 하는 대사이다. 부끄럽기도 했다. 딸 앞에서 시시한 일로 토라진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할 것인가. 아니면 두루뭉술하게 변명하여 엄마의 체면을 지킬 것인가. 어차피 옥신각신하는 모습을 다 보인 바에야 솔직하기로 했다. 딸은 이야기를 다 듣고는 아빠는 맨날 그런다며 편을 들어주었다. ‘이 맛에 딸을 키우는구나!’ 흐뭇한 마음이 들려는 순간 딸은 말을 보탰다. 사실 엄마한테 오기 전에 아빠랑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아빠의 입장을 전한다. 묘하게 심술이 나서 반박했다. 딸은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음은 뭐라고 이야기하지?’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속으로 피식 웃었다.     


  “미소는 엄마한테 도움이 되는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보네” 살짝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자 갑자기 딸이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를 속상하지 않게 해주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훌쩍인다. 우는 아이를 꼭 안아주고 등을 토닥였다. 엄마를 걱정해주어 고맙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꼭 상대방에게 보탬이 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 응원이 된다고 하였다. 이미 방문을 두드리고 옆에 와 누워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때 충분히 위로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가끔 아픈 경험을 하는 지인을 만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마음이 분주하다. 무슨 말로 아픔을 달래야 하나 적합한 말들을 고르기 바쁘다. 상담한다는 사람이라 더 세련되게 위안하려는 욕심도 있었다. 모든 사연은 결이 다르고 깊이가 다르다. 매번 꼭 맞는 위로를 하는 것은 어렵다. 섣부른 위로는 상처를 주기도 한다. 도움이 되려는 나, 썩 괜찮은 나를 앞장 세우지 말자. 아픈 경험, 슬픈 사람이 주인공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방문을 두드리고 가만히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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