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수업] 상대가 바뀌길 기다리는 동안, 내 배는 표류하고 있었다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분들의 이야기 속에는 공통적인 '간절함'이 배어 있습니다. 그 간절함의 끝은 대개 하나의 문장으로 수렴되곤 하죠.
그 사람만 바뀌면 제 인생이 정말 괜찮아질 것 같아요.
배우자가 조금만 더 다정해진다면, 직장 상사가 비난을 멈춘다면, 혹은 부모님이 이제라도 나를 인정해 준다면 내 삶의 지독한 안개가 걷힐 것 같다는 믿음. 그 간절한 기대를 마주할 때마다 저는 내담자의 눈 속에 비친 흔들리는 조종키를 봅니다.
비행기든 배든,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것은 조종키를 잡은 사람의 몫입니다. 어느 타이밍에 방향을 틀지, 속도는 얼마나 높일지,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를지. 그 모든 항로의 결정권은 결국 조종키를 쥔 손끝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가장 소중한 내 삶의 조종키를 내가 가장 미워하거나, 혹은 가장 갈구하는 그 '상대방'에게 덜컥 넘겨주곤 합니다.
심리학자 줄리안 로터는 이를 통제위(Locus of Control)라는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삶의 결과가 내 선택에 달렸다고 믿으면 내적 통제위, 외부 요인에 달렸다고 믿으면 외적 통제위를 가진다는 것이죠. 조종키가 내 손에 있다고 느끼느냐, 남의 손에 있다고 느끼느냐. 그 차이가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꿉니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관계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고통의 원인은 명확히 상대방에게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저 사람이 이렇게만 해주면, 저 사람이 저것만 안 하면 내가 이토록 괴롭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은 일종의 생존 본능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이런 심리를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자유에는 불안이 따르고, 그 불안을 견디지 못할 때 인간은 스스로 선택권을 타인에게 넘긴다고요. 내가 결정하면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그 무게가 두려워서 상대가 먼저 바뀌기를 기다리게 되는 겁니다.
내 행복의 조건을 상대방의 변화에 두는 순간, 나의 평온함은 '상대방의 처분'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그 사람이 변하면 나도 괜찮아지겠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괜찮아질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그렇게 조종키를 넘겨준 채 우리는 '기다림의 늪'에 빠집니다. '언제쯤 내 마음을 알아줄까?', '먼저 다가와 사과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타인의 레이더를 살피느라 정작 내가 탄 배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는 보지 못합니다. 그렇게 1년, 5년, 혹은 10년.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본래 내가 어디로 가고 싶었는지, 어떤 풍경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고 맙니다.
상담 중에 "관계가 회복되려면 선생님(나)부터 괜찮아져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때로 억울한 표정을 짓는 분들이 계십니다. "문제를 일으킨 건 저 사람인데, 왜 아픈 내가 먼저 노력해야 하나요?"라는 소리 없는 항변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존엄의 문제입니다.
아들러는 인간의 행동을 과거의 원인이 아닌 현재의 목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랬느냐'에 매달리는 한 조종키는 계속 상대 손에 남습니다. 핵심은 '나는 지금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에 있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파도에 휩쓸려 흔들리고 있는데, 어떻게 관계라는 배가 평온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상대방은 내 항해의 동반자가 되어줄 수도,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내 조종키를 대신 잡아줄 수는 없습니다. 사르트르는 말했습니다.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고. 자유는 축복인 동시에 무거운 책임입니다. 하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표류를 멈추고 항해를 시작합니다.
이제 타인을 향해 있던 레이더를 나 자신에게로 돌려야 합니다. "그 사람이 왜 그럴까?"라는 질문 대신, 아주 낯설고도 핵심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세요.
"나는 지금, 어떤 상태이고 싶은가?"
"나는 이 삶을 통해 어디로 나아가고 싶은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찾는 일이 독립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것. 그것이 녹슬었던 조종키를 다시 움켜쥐는 첫 번째 동작입니다.
상대방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조종키를 놓고 표류하는 일입니다. 반면, 내가 먼저 나의 방향을 정하고 작게나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은 녹슬었던 조종키를 다시 움켜쥐는 일입니다.
기억하세요. 관계의 주체는 결국 나 자신입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사람 또한 나뿐이지요. 하지만 내가 바뀌어 조종키를 똑바로 잡기 시작할 때, 신기하게도 우리를 둘러싼 관계의 기류도 함께 변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선명해질 때, 비로소 상대방도 그 항로에 함께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되니까요.
오늘 당신의 손은 어디에 있나요? 남의 손을 빌려 길을 잃기보다, 조금 서툴더라도 당신의 조종키를 꽉 쥐어보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배를 원하는 곳에 닿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